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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높은 풀 속에서

by 똥이아빠 2019. 10. 10.

넷플릭스. 높은 풀 속에서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이 쓴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출산을 앞둔 베키와 그의 오빠는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선 곳에서 소년의 목소리를 듣는다. 키 큰 풀이 무성한 풀밭의 안쪽이었고, 소년은 절박하게 도와달라고 외친다. 베키와 오빠는 소년을 찾으러 들어가고,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악령이 깃든 풀숲에서 이들은 생을 거듭하며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길 반복한다. 베키와 오빠가 풀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소년의 가족이 들어오고, 소년은 베키의 남자친구 목소리를 듣는다. 베키의 남자친구는 실종된 베키를 찾으러 왔다 베키의 차를 발견하고, 베키의 목소리를 듣고 들어오는데, 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시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죽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풀속 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검은 바위를 만진 다음부터 알 수 없는 힘을 갖게 되고, 가족을 살해하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살해하려는 행동을 거침없이 한다. 거대한 검은 바위 주변의 땅이 꺼지고, 그 아래로 뒤엉켜 울부짖는 인간 군상이 처참하게 드러나는 것을 본 사람은 베키 뿐이다. 

바위는 악령의 상징이며, 지옥으로 가는 문이다. 바위를 만지는 순간, 악령이 씌여 자신도 살아 있는 악령으로 변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풀숲은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우리는 자유롭다고, 행복하다고,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풀숲을 돌아다니는 정도의 자유가 아닐까.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삶이 있을까. 근원적인 자유는? 어딘가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믿는 것은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고픈 인간의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현실의 고통과 고단함을 어떻게든 회피하고픈 나약한 인간의 상상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고, 그것이 윤회, 부활, 천국, 지옥 등으로 창작되어 온 것이다.

삶과 죽음은 단순하다. 진리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단순, 명료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스럽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인간도 그렇다. 다만, 풀속에서 살해당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은 윤회가 아니라 시간의 뒤틀림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시간은 이론적으로 뒤틀릴 수 있다. 과학에서는 다차원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론적으로 차원을 뛰어넘으면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풀속은 뒤틀린 시공간에 우연히 들어간 사람들이 차원을 이동하면서 겪는 해프닝이다. 풀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방향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차원의 문이 있고, 자신이 어떤 차원으로 들어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순간 차원이 바뀌기 때문이다. 차원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고, 이미 죽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수 많은 차원을 이동하고, 시공간이 바뀌어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 건,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삶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오로지 죽음만이 영원할 뿐이다. 악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그 자체가 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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