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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by 똥이아빠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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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오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로 놀라운 연기를 보였던 최민식 배우가 1년 뒤에 출연한 영화. 50만 명이 봤으니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따뜻하고 뭉클한 웰 메이드 영화인데, 나도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 
현우는 관악기(트럼펫)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오디션을 봐도 합격하지 않는데, 심사위원들은 그의 외모(옷차림)도 트집을 잡는다. 오디션을 보는 현우의 마음은 어떨까. 그는 진심으로 합격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오디션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현우는 함께 음악공부를 한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하면서, 밤에는 유흥업소에 출연해 악기를 연주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낸다. 현우가 배운 음악은 술집에서 싸구려로 굴러다니는 음악이 아니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도 안 되는, '이상'으로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을 마음에 품고 사는 현우의 삶은 비루하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도, 뿌리 내리지도 못한 채 불만스러운 현실에서 도망하고픈 마음 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희와도 헤어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는 연희와 결혼하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관악기 연주자의 삶은 가난하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그는 어머니만 모시고 사는 가난한 사람으로, 어렵게 음악 공부를 했으나 일류 대학을 나오지도, 연주 실력이 최고도 아니어서 자격지심이 있다.
현우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선택한 곳은 강원도 삼척군 도계중학교 관악부 선생이다. 그가 학생을 가르치고픈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하고픈 마음으로 어떤 시골이든 시골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그래서 우연히 간 곳이 도계중학교일 뿐이다. 그가 평생 시골 학교 선생으로 살려는 마음은 아닌 것이 뒷부분에 살짝 드러난다.
 
현우는 세상에 불만이 많지만, 모질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현실과 타협한 친구에게는 화를 내지만, 노점상 할머니이자 관악부 제자의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도계읍내 있는 유흥주점에 스스로 찾아가 저녁에 트럼펫 연주를 할테니 선불을 달라고 말한다.
겉멋이 들어 학교를 가끔 결석하고, 여자 친구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앞으로 케니 G 같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제자에게 '현실을 똑바로 보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은 현우 자신이 들어야 하는 말이다. 즉, 현우는 제자의 처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본다.
도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약사 수연도 남자 친구와 원만하지 못한 상황인데, 현우와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이 끌리는 걸 두 사람 모두 느낀다. 현우는 수연에게, 여기를 떠날 생각이 있느냐고,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지만, 수연은 정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건 현우가 서울을 떠난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연희는 현우에게 전화해, 어쩌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될 지 모른다고 말하고, 현우는 진심이 아니면서도 축하한다고, 잘 살라고 말한다. 연희는 현우를 여전히 사랑하고, 현우도 연희를 사랑하는 마음이지만, 현우는 연희와의 미래에 겁 먹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당장 현실로 닥치기 때문에, 연희와 결혼하는 걸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까이 있고, 새로운 사람인 수연과의 만남에서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끼는 현우의 감정은 그래서 이중성을 갖는다. 그로 인해 수연의 남자 친구에게 오해를 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현우의 마음이 조금씩 중심을 잡아간다.
그 계기는, 현우의 친구가 서울에서 현우를 찾아 도계로 올 때, 연희가 운전하며 오지만 정작 현우에게는 연희가 도계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말하지만, 우연히 현우의 제자가 연희를 만나 현우가 작곡한 음악을 트럼펫으로 연주하고, 그 사실을 제자가 현우에게 말하면서, 현우의 마음이 바뀐다.
현우는 끝까지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연희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도계중학교 관악부는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결과는 드러나지 않는다. 상을 받았을 수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만 도계(로 상징하는 산골 학교와 마을)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지역이 소멸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과 희망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 조건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할 수 있고, 그건 고향을 잃는 상실과 함께, 자신의 삶의 뿌리와 근거가 사라지는 아픔이기도 하다.
현우가 도착한 도계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온다. 현우의 삶에서도 이 시기는 겨울처럼 춥고, 냉혹하지만, 머지 않아 봄이 온다는 희망을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그 봄이 현우의 삶에서 '꽃 피는 봄'이 될지, 여전히 쓸쓸하고 외로운 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봄이 오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눈부신 날, 현우는 연희의 집앞에서 연희에게 전화한다. 저녁에 술 사주겠다고. 연희는 아마 오래 전부터 현우의 이 전화를 기다렸을테다. 늘 피하기만 했던 현우가 이번에 먼저 전화했고, 그건 현우의 마음이 조금 달라졌음을 뜻한다.
 
현우는 제자 재일의 할머니(김영옥)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스스로 유흥업소에서 연주를 하는데, 이런 선택은 그가 예전에 경멸했던 친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고고하고 이상적인 연주자로의 삶도 좋지만, 지금 발디딘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현우는 엄마에게 젊었을 때 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는 건, 그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성장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마음에 간직한 희망이 있다. 겨울을 보내는 동안 현우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한다. 제자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고, 약사 수연에게서 첫사랑의 애틋함을 느끼고, 재일의 할머니를 통해 엄마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렇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힘들고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현우도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을 객관의 눈으로 보게 된다. 포기하고, 절망한 것이 자기연민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현우 자신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철부지처럼 투정만 부린 것은 아닐까. 겨울을 보내며 현우는 현실의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소박하지만 등장하는 인물은 엄청나다. 최민식 배우를 비롯해 김영옥, 윤여정, 김강우, 김호정, 장신영, 장현성, 오달수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현우와 연희와 수연과 등장인물 모두를 응원하고픈 마음이 드는 행복한 영화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면, 인생은 덜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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