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3
영화제작자나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들 때 기대했던 결과와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다. 대개는 흥행에 성공할 거라 예상한 영화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며 후속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분노의 질주'는 벌써 열번째 작품을 개봉하고 열한번째 작품을 준비할 정도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시리즈 영화의 특징은 첫 영화가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만들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오락성과 관객이 흥미롭게 반응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의 질주'는 3천800만 달러를 들여 2억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범죄도시'는 제작비 70억 원으로 영화관 매출만 56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올리면, 후속편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흥행 성공은 관객이 이런 종류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3'의 경우, 제작비 135억 원을 투입했는데, 손익분기점은 관객 180만 명이었다. 놀랍게도 단 사흘만에 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으니, '범죄도시'를 보러 오는 관객이 영화에 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다.
'범죄도시'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몇 가지가 있다. '범죄 영화', '실화 영화', '형사 캐릭터 영화'라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함께, 무엇보다 시나리오와 연출이 깔끔해서 영화의 수준이 평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범죄도시'는 경찰이 범죄자를 때려잡는 내용이면서, 정의를 지키는 형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범죄자들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장면에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단순하지만 명쾌한 서사와 통쾌한 액션이 관객의 마음을 끌어 들였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는 대중이 바라는 이상적인 경찰이며, 현실에서 나올 법하고, 나오길 바라는 '영웅'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기에 관객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 현실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대리자를 보고 싶어한다.
마석도는 이상화한 경찰 아이콘이며, 관객이 바라는 영웅이다. 그는 만화 캐릭터처럼 유머러스하면서 악당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졌기에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안심하고 마석도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다. 시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정의와 질서를 바로 잡는 경찰이 마석도라면, 이 영화에는 마석도와 반대되는 경찰도 등장한다.
주성철은 범죄자를 잡는 경찰이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로 흑화한 인물이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현실에서도 많고, 영화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경찰은 누구보다 범죄자와 가까이 있기에,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세속의 물욕 앞에 유혹을 받는 건 당연하다.
다만, 경찰 또는 공무원은 평범한 시민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성을 요구받는 자리에 있으며, 경찰이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사회적 임무를 띄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정부는 그런 경찰 공무원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범죄도시'와 비교할 만한 영화로 'LA컨피덴셜'이 있다. 하드보일드 스릴러인 이 영화에서는 어설픈 유머가 통하지 않는다. 세 명의 형사는 반장 더들리 스미스가 범죄 조직의 지분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알지 못한 채 동료를 잃는다. 경찰이 자기 범죄를 감추려들면 그걸 밝히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부패한 경찰을 잡는 건 결국 경찰이고, 사회를 더럽히는 범죄자를 잡는 것도 경찰이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가 '옳은 일'을 하는 건 시민이 정부에게 맡긴 권력의 일부를 행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었고, 합리적 판단에 따라 경찰은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경찰이 범죄자를 잡거나, 경찰 내부의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찰이 죄 없는 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를 때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평화 집회와 시위를 하는 시민을 향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둘러 시민을 다치게 하는 경찰의 폭력을 볼 때마다, 경찰의 존재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엊그제 농성하던 노동자를 경찰들이 곤봉으로 머리를 수십 번 내리쳐 그 노동자의 머리가 깨져 피가 줄줄 흐르는 영상이 퍼졌다. 그 노동자가 반사회적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데, 경찰은 그를 범죄자처럼 다뤘으며, 카메라가 보고 있어도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공무원으로 특수한 지위에 있지만,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다. 경찰이 노동자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외국에서는 경찰이 파업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경찰이 노동자를 때려잡는건, 자기정체성을 올바르게 알지 못한다는 증거다.
'범죄도시'는 영화이므로 창작과 상상의 영역이되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건 매우 심각하지만, 영화에서는 극적 장치의 하나로 쓰인다. 모든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영화는 특히 그렇다. SF영화, 판타지영화, 공포영화도 모두 다르게 해석할 뿐, 현실을 반영한다.
창작과 상상의 세계인 영화와 현실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면, 그건 영화보다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은 범인을 조작한다. 죄 없는 시민을 체포해 폭행과 고문으로 자백을 받지만, 결국 그 시민은 죽임을 당한다.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김영호는 군인으로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경찰이 되어 대학생을 고문한다. 영화에서 경찰이 죄 없는 시민, 학생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장면은 수 없이 많지만, 그건 단지 '상상'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실재했던 사건들의 단편을 묘사했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영화보다 경찰(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훨씬 더 많은 폭행과 폭력을 저지른다. 영화는 관객이 선택해, 안전한 장소에서 영상을 통해 '이미지'를 소비하는 형태로 보기 때문에 감정의 흔들림이 덜 하지만, 80년대 거리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력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경찰의 폭력은 오히려 순화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다.
엊그제, 경찰은 노동자 한 명을 때려잡았다. 많은 기자와 시민이 지켜보고 있어도, 경찰은 노동자 한 명을 개 때려잡듯 참혹하게 폭행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소름 끼치고, 분노가 치밀었다. 경찰이 마석도 같은 사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80년대 경찰이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권에 따라 경찰의 폭력성이 시민을 향해 드러나느냐, 아니냐를 알 수 있다. 80년대 폭력 경찰의 대명사인 '백골단'이 부활할 거라는 의심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흔히 '개'로 표현하는데, 그건 주인이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즉, 좋은 주인은 개에게 어떤 폭력도 사용할 수 없다고 훈련시킨다. 하지만, 공원에서 대형견의 목줄을 풀어 놓는 주인처럼, 시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형견을 방치하는 건 개주인의 무개념을 떠나 명백한 범죄이듯, 경찰의 폭력성을 방치하는 정권은 시민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시민은 마석도 같은 경찰을 환영하고, 응원한다. 범죄자, 범죄조직을 박살낼 정도로 힘과 의지가 있는 경찰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준다. 반면 시민(노동자)을 폭행하고, 군림하려는 경찰은 증오한다. 시민이 분노하는 경찰은 주성철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경찰보다, 시민을 폭행하는 경찰이다.
마석도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칭찬받지만, '진짜 경찰'이라면, 죄 없는 시민을 때려잡는 범죄자화 한 경찰을 때려잡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단 경찰이 대낮에 시민을 마치 개돼지를 때려잡는 것처럼 폭행해 온몸에 피칠갑을 하게 만들 정도라면, 지휘라인에서 그런 행위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즉, 경찰의 고위 간부들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민을 때려잡아도 좋다'는 승인을 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사건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은 범죄자도 함부로 폭행하지 않는다. 경찰의 행동을 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척도를 잴 수 있고, 정권의 속성을 알 수 있다. 마석도가 범죄자를 때려잡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장면이고, 나(관객)는 제3자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현실에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제3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와 관련이 있는 사건이 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행과 폭력은 시민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 분노를 일으킨다. 지금 한국에서는 마석도 같은 경찰이 필요하지만, [박하사탕]의 김영호 같은 자들이 날뛰는 건 아닌지 몹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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