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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밀수 - 2회차 관람

by 똥이아빠 2023. 8. 3.
밀수 - 2회차 관람
영화를 보고, 불과 사흘만에 다시 봤다. 오늘은 하남 스타필드 메가박스 MX에서 봤고, 처음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이 있었다.
영화를 반복해서 볼 정도라면 꽤 재미있어야 하는데, '밀수'는 그런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나는 코엔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롭다.
드물지만, 소설이나 그래픽노블(만화)도 두 번, 세 번 이상 읽거나 오래도록 기억하는 명작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미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활자보다 더 오래,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점이 있다. 이미지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인류가 훨씬 빠르게 적응하고, 활용했다. 수만 년 전에 동굴 벽화에 이미지를 남긴 것도 초기 인류의 원시적 신앙의 표현 형태이면서, 그들의 소망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영화는 이미지를 1초에 24프레임으로 나눠 보여준다. 인간의 눈은 1초에 24프레임으로 빠르게 보이는 이미지는 연속된 것으로 인식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남는 장면이 한 장의 이미지로 남는 것도 본질에서 영화 역시 이미지 예술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보면서, 인물들의 감정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진숙과 춘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오해로 인한 미움과 오해가 풀리면서 화해하는 장면은 말 없이 오가는 표정 만으로 감동을 일으킨다. 권상사는 밀수 조직의 전국구 두목이고, 돈 앞에서는 인정사정 없는 잔인한 인간이지만, 그가 춘자와 사업을 하면서, 장도리 패거리와 싸울 때, 어떻게든 춘자를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면서, 권상사에게도 일말의 인간적 모습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권상사 역의 조인성이 연기하는 액션과 표정은 류승완 감독이 왜 조인성을 새롭게 발견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특히 두 사람의 과거가 궁금했다. 장도리와 오마담. 두 사람은 주연급 조연으로, 처음에는 역할이 적었다가 점차 사건이 진행하면서 비중이 커진다. 장도리는 엄선장 배에서 막내로 일하는 선원인데, 그는 '뱃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장도리는 어리버리했던 모습에서 불과 3년만에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했다.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감독은 장도리의 과거를 밝히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읽히는데, 장도리도 야망과 욕심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의 내면이 변화하고 폭발하는 계기는 역시 금괴 사건이었다.
개인의 욕망이 개인을 어떻게 변화하는가, 개인이 욕망에 짓눌리고, 삼켜지는 과정을 장도리를 보면서 알 수 있다.
고마담 역시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고마담이 다방에서 '레지'로 일하고 있을 때도 20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금괴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흐른 뒤, 고마담은 다방을 인수해 나름 성공한다. 20대 초반에 다방 레지로 일하는 경우라면, 어릴 때부터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걸로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고마담이 일하는 다방은 '군천'으로 지방 도시다. '군천'은 주변에 많은 섬이 있고, 파시가 있는 섬에는 다방과 술집이 많아서 젊거나 늙은 여성들이 술집, 다방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고, 섬으로 들어가는 걸 그들끼리는 '막장'이라고 했다.
고마담은 아직 섬으로 들어가지 않은, 그나마 괜찮은 입지에 있었던 여성인지, 아니면 돌고 돌아서 섬을 돌고 나와 지방 도시의 다방에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고마담은 춘자, 진숙을 만나면서 나름 의리를 지키고 마침내 운명을 바꿀 행운을 낚는다.
즉, 장도리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운명을 바꾸려 했으나 잠깐 성공하고 영원히 실패한 삶을 살았다면, 고마담은 소극적으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면서 상상하지 못한 행운을 맞이하는 인물로 극적으로 대비된다.
영화에서 액션이 자주 나오지 않지만, 영화의 액센트를 찍는 액션은 두 장면이다. 여관에서 권상사와 장도리 패거리가 싸우는 장면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오마주한 걸로 보인다. 장도리가 장도리(망치)를 들고 앞장 서고, 좁은 골목을 떼거리로 몰려간다. 여관 복도에서 싸우는 장면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사설 감옥의 긴 복도에서 싸우는 장면을 떠올린다. 오대수는 장도리(망치)를 들고 싸운다.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액션은 화려한 발차기와 동선이 큰 액션이 대부분이었는데, '밀수'에서는 권상사(조인성)가 좁은 복도에서 아기자기하면서 매우 빠른 액션을 보인다. 류승완의 단짝인 정두홍 무술 감독이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액션의 형태가 바뀐 걸 알 수 있다. 특히 짧은 칼을 들고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하는건 '아저씨' 이후 많이 보이는 액션이다. 이때 조인성의 액션은 화려하지 않아도 빠르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그의 표정이 크로즈업되면서, 조인성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를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해녀 액션은 한국영화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걸로 보이는데, 물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마치 우주를 유영하면서 벌이는 액션처럼, 밀도 높은 물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인데, 수중 액션의 구도는 화려할 수 없는 건 당연한데, 해녀들이 악당을 처치할 때의 장면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신선했다.
영화음악도 다시 들으면서 더 신선하게 들렸는데, 영화에 나오는 70년대 음악은 류승완 감독이 직접 고른 걸로 알려졌고,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70년대 노래가 아닌, 영화의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장기하가 작곡했는데, 70년대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었고, 영화와 잘 어울려서 흠잡을 데 없었다.
'밀수'는 진숙과 춘자의 복수극이면서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얻는 통쾌한 영화다. 한국영화에서 그동안 '통쾌한 영화'가 의외로 드물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내용이 대부분 약자가 강자에게 복수하거나, 약자들이 힘을 모아 더 큰 상대를 상대하거나, 선한 사람들이 악한 인간을 처부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밀수'를 보면서 우정과 연대, 통쾌한 복수와 과거의 고생, 고난을 벗어날 수 있는 일확천금의 행운까지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엔딩 크래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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