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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서울의 봄

by 똥이아빠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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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전두광 일당의 폭력보다, 행주대교에 홀로 서서 반란군과 맞서는 이태신 장군의 태산같은 장엄한 모습과 동시에 외로운 뒷모습을 보며, 그 날, 그 밤에 정의롭고 올바른 군인이 이렇게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다.
12월 12일이 발생하기 18년 전, 똑같은 이유로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쿠데타가 성공하길 바라는 전두환 대위는 육사생도를 이끌고 도시를 행진했다. 그렇게 박정희 군부와 박정희가 키운 장교들은 기회만 되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고, 전두환이 일으킨 쿠데타 이후 2017년, 박근혜 정권에서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당이 군부의 비밀을 먼저 알고 공개하는 바람에 실패한 적도 있었다. 즉, 지금도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정치가 약한 상태가 되면 언제든 총칼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육군사관학교는 '육사발전기금 100억원 달성과 200억원 달성' 기념 행사에 전두환이 참석하도록 초청했고, 전두환과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일당들이 모인 사열대를 향해 경례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 이건 명백히 쿠데타를 찬양하고 지지하는 행동이며,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 전두환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사반란을 일으켜도 '같은 편'이기만 하다면 아무 문제 없다는 극도의 집단 이기주의 논리라고 본다.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피가 끓었다. 권력의 공백을 폭력으로 차지하려는 사악한 군인들의 탐욕과 욕망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서, 40년 넘은 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으로 한국 현대사가 뒤틀리고, 수 많은 시민이 학살 당했으며, 감옥에 잡혀가고, 군과 경찰의 폭력에 사람의 삶이 망가졌다.
세계사로 보면, '제3세계'에 속하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군부독재를 자행했는데, 이건 결코 우연한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군부 쿠데타의 뒷면에는 미국 CIA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고, 미국은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미국 CIA가 직접 개입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는 사실은 미국에서 미리 알고 있었다. 그건 박정희 때나 전두환 때 모두 같았고, 미국은 군부 쿠데타 발생을 조금 일찍 알았지만, 그걸 막으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볼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끌어갔다.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쿠데타에 성공한 다음 미국을 방문해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고, 미국의 개, 미국의 애완견이 되어 국민을 폭력으로 학살하면서 범죄 집단의 권력을 유지했다. 이때 미국은 군부 독재 권력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가져갔으며, 국민의 삶은 피폐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파괴,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 빈부 격차, 차별과 혐오, 경쟁 등을 부추기며 사회를 분열과 경쟁 체제로 만들어 군부 독재를 강화하고 천민자본주의를 오래도록 유지하려는 목적이 미국의 의도였으며, 군부 독재 세력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실히 따랐다.
 
영화로 돌아가서, 전두광은 소장(별 두 개)으로, 친구인 노태건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극중에서 주도적 인물이며, 자기보다 상관이자 육사 선배들에게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런 전두광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리더십이 훌륭하게 묘사되었다거나, 살인마를 미화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카리스마와 강력한 리더십>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조직폭력배를 '스타일리시하고 쿨하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진정한 신념과 정의로움이란 이태신 장군이 보여주는 것처럼, 가장 위험한 순간에 스스로 가장 앞장 서는 사람의 행동을 말한다. 이태신 장군이 행주대교에서 홀로 반란군과 맞닥뜨렸을 때,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반역인가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전두광 일당은 늘 벙커에 숨는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행위가 반역이라는 걸 알기에, 공개된 장소에 나오기를 꺼린다. 반면 이태신 장군은 반란군에 맞서 온몸으로 군사반란을 저지하려 혼자라도 큰길에 나와 반란군과 맞선다.
전두광은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이라고 말한다. 그건 이미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때 한 말을 반복한 것이다.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란이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게 당연하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고, 불법을 합법으로 기록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기록된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논리에 따라, 쿠데타 세력은 역사를 정당화,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래서, 전두광 일당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그날, 아홉 시간 동안 군사반란을 막으려는 이태신 장군과 올바른 군인들이 벌인 쿠데타 진압의 진실은 반역자들이 지워버렸다. 반역자들은 이태신 장군 같은 의인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그들을 가두고 고문했으며,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법적, 제도적으로 시민의 자격을 박탈했으며, 군인의 명예를 더럽혔다.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무시했고, 반란을 진압한 장군들은 북한의 상황, 국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 반역자들은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만 있을 뿐, 국민이 부여하는 권력의 정당성, 절차적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다. 박정희와 전두광의 군사반란은 원인무효의 반역행위이며, 이들은 법률에 따라 사형해야 하는 국가범죄자들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부인하는 자는 나치, 파시스트, 전체주의자, 독재를 찬양하는 반민주, 반역자들이다.
이런 내용은 누군가 가르친다고 아는 게 아니다. 그날, 전두광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12월 12일, 바로 그 현장에 있던 많은 장교들은 전두광 일당의 군사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걸 상식으로 알았다. 하지만 한국 군대는 해방 후 창설 과정에서 일본군에 있던 친일 매국 군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박정희, 백선엽 같은 악질 친일 매국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현대사에서 벌어진 두 건의 군사반란과 반란예비음모까지 배경에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친일 매국자들 가운데 군인들이 있었고, 이들이 해방 이후에 국방을 담당하는 주역이 된 것에 있다.
즉, 한국현대사에서 친일 매국노를 철저하게 가려내 처벌하지 못한, 미흡하고 불철저한 역사 때문에 현대사가 굴욕과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온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박정희가 독재자였음에도 그가 배고픔을 해결하고, 고도성장을 이끈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이 독재를 하던 1980년대는 세계 경제가 엄청난 활황기여서 독재 정치 상황에서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외면만 보면, 박정희나 전두환 시기에 한국 경제는 분명 발달했으니 그 독재자들의 군사반란이 용인되어야 하는가? 나라 경제가 성장한 것과 군사반란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그 둘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개돼지'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군인' 특히 장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존경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모든 전문직이 쉽지 않지만, '군인'은 국가를 방위하는 최전선에 있고, 다른 전문직과 달리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군인을 지휘하는 장군의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소위 '장군'이라는 자들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 없고 천박하며, 무능한가를 확인하면서, '대한민국 장군'의 수준을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태신 장군처럼 유능하고 정의로운 군인도 적지 않겠지만, 박정희, 전두환처럼 군인의 사명을 내팽개치고 군사반란을 획책하는 반역자들이 존재하고, 그런 반역자에게 빌붙어 개인의 욕망 - 돈과 권력 -을 충족하려는 똥별들이 그렇게 많은 걸 보면서, 지금도 한국의 장군들에 대한 자격에 대해 전면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한 장군을 알고 있는데, 내가 아는 그 어떤 군인(장군)보다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품을 가진 분이다. 이태신 장군처럼 훌륭한 군인이 군사반란에 맞서 싸웠지만, 온갖 음해와 모욕을 당하면서 역사의 그늘에서 신음한 것처럼, 충신, 올곧은 선비는 사악한 시대에서 핍박 당하고, 고난, 수난을 당하는 존재가 된다. 이 영화에서도 이태신 장군을 비롯,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들과 맞서 싸운 정의로운 군인들의 삶이 참혹한 결과로 드러났으니, 더더욱 군부에서 정치 군인을 솎아내고, 무능한 군인을 도태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만약'이라는 전제로, 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반역자들과 맞서 싸우러 거리로 달려 나가겠다. 20대 때는 죽음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똑같은 이유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있어서 실제 전쟁이 발발한다면, 나는 전쟁을 일으킨 놈들부터 죽이러 나설 것이다. 우리가 일방 침략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평화를 깨고, 악의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이 권력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그런 놈은 가장 먼저 척살해야 할 대상이다. 그건 정치가든, 군인이든 대상이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분하고 억울한 감정은 단지 일시적 감정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분함과 억울함이 곧바로 행동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을 가진 자들은 그 욕망을 성취하려 행동하기 전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평범한 시민 가운데 자기 목숨을 내던지면서 반역자를 척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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