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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1970년대

1970년대-03

by 똥이아빠 201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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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를 기록한 몇 장 안 되는 사진 가운데 하나.
누나와 둘째 조카, 막내 조카와 함께 찍었다. 청년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다. 도시의 변두리 산동네에서 살며, 나날이 노동으로 힘겨운 시기였을 때였다.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하루 19시간 정도를 일하던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에 코피가 고여 말라붙어 베개와 얼굴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날마다 세수대야가 시뻘건 피로 물들고, 편도선이 부어 침도 삼킬 수 없는 통증에 자주 시달려야 했다. 지금도 뚜렷하게 생각하는 장면은, 온몸에서 열이 펄펄나고, 목이 부어 침도 삼키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에 갔을 때, 마취도 하지 않고 편도를 메스로 찢고 피고름을 빨아내던 장면이다. 몸이 극도로 피곤해 면역력이 떨어지면 편도가 건강의 위험신호를 보낸다. 이때 쉬어야 하는데,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던 때여서 하루 18-19시간씩 몸을 굴려야 했기 때문에 늘 몸이 아프고 힘들었다.
결국 서울에서는 견딜 수 없어 지방으로 내려갔다. 지방에서는 하숙집에서 먹고, 자고, 걸어서 일을 다닐 수 있어 서울보다 오히려 편했기 때문이다. 70년대의 서울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거의 모든 교통수단은 버스였다. 그리고 버스노선은 더없이 불편해서, 버스를 서너번씩 갈아타고 일을 다녀야 했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렸고, 새벽 4시 반이면 집에서 나와야 했다.
1980년대에 전태일을 알았지만, 전태일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그의 삶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정도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전태일의 삶을 정리하는 글을 썼고, 전태일문학상도 받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막심 고리키이다. 그는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 사회를 대학으로 여기고 배웠다. 전태일도, 막심 고리키도,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온몸으로 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빈민과 노동자에 대한 애정은 크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 있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가난하고 어리석게 자랐지만, 내가 살던 삶을 불평한 적은 없었다. 내가 똑똑하고 세상을 알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었기 때문에, 삶의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탓에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은 어리석음에서 일찍 벗어나는 것이 좋다.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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