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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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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아빠 202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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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슈라이더 감독, 마틴 스콜세지 기획. '아메리칸 지골로'의 감독이기도 하면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걸작 영화 '택시 드라이버', '레이징 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자, 탁월한 영화평론가가 폴 슈라이더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내레이션과 분위기만 봐도, 이 영화가 심상한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분명 있을테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드보일드'한 영화이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주인공 윌리엄 텔(오스카 아이작)은 도박장을 돌아다니며 도박으로 돈을 벌어 생활하는 전문 도박사다. 하지만 그는 큰돈을 따려하지 않고,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도박에서 이기는 걸로 만족한다. 호텔에서 호텔로 전전하며 작은 가방 하나만 가지고 다니는 그의 삶은 떠돌이로 정처 없다.
그런 윌리엄에게 두 가지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다. 하나는 그가 다니던 도박장(호텔)에서 보안 컨퍼런스를 발견하고, 강사 가운데 '존 고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존 고도는 윌리엄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고, 그로 인해 윌리엄은 감옥에서 몇 년을 갇혀 있다 나와야 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존 고도에게 복수의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생각이 바뀌는 건 그 컨퍼런스에서 서크(타이 셰리던)를 만난 이후 달라진다. 서크는 존 고도가 있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 존 고도의 부하로 일하던 사람이고, 윌리엄의 동료이기도 했다.
서크는 윌리엄을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건넨다. 두 사람이 만나고, 서크는 윌리엄에게 존 고도를 살해할 거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서크에게 윌리엄은 '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너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윌리엄은 서크를 데리고 다니면서 용돈을 주고, 보살펴준다.
 
다른 사건은 윌리엄이 도박장을 전전하면서 알게 된 라 린다(티파니 해디시)로 인해 금액이 큰 도박판에 들어간 것이다. 라 린다는 일종의 투자 브로커로, 이길 확률이 높은 도박사에게 투자해서 돈을 따면, 돈을 댄 주인에게 일정한 수익을 돌려주고, 커미션을 받는 역할을 한다.
윌리엄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도박을 하는 건 빚더미에 앉은 사람의 심정과 같다면서도 라 린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윌리엄이 돈을 조금 빨리, 많이 벌려는 목적은 서크를 위한 거였다. 
하지만, 실제 겉으로 보이는 윌리엄의 생활, 도박사의 일상은 그의 삶에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관객은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되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윌리엄을 다시 보게 된다. 그가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니며, 이 호텔, 저 호텔로 전전하는 이유도 납득할 수 있고, '생활'이 아니라 '생존'하고 있으며, 그의 삶이 늘 불안하고, 불안정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화려한 호텔 도박장-라스베거스-을 보여주고, 환락과 쾌락, 도박이라는 궁극의 쾌락을 전시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 환락과 쾌락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오히려 강조하는 내용이다. 윌리엄은 호텔 객실에 들어오면 그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회색 시트로 객실의 모든 물건을 덮고, 끈으로 묶는다. 객실은 마치 하나의 색으로 보이며, 사물은 사라지고, 소리까지 사라지는 느낌이다. 즉, 이 풍경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나 그가 견뎠던 감옥의 독방 같은 풍경을 상징한다.
윌리엄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 거기에 존 고도 소령이 책임자로 있었고, 존 고도는 나중에 전역해서 '보안전문가'로 행세하며 보안 컨퍼런스에서 강연도 하고, 유명인사가 된다. 하지만 존 고도의 지휘 아래 복무했던 서크의 아버지나 윌리엄 같은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생활로 평생 자기를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발생하고, 서크의 아버지는 결국 자살했다.
 
윌리엄은 존 고도를 살해하겠다는 서크를 달래며, 그에게 큰돈을 마련해주고, 엄마를 찾아가 화해하고, 빚진 학자금을 갚고, 대학에 복학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윌리엄은 서크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거나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고, 자기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큰돈을 벌고자 서크를 위해 도박을 한 것이다.
서크는 윌리엄의 마음을 이해하고, 윌리엄이 준 돈을 받아 엄마를 찾아가 돈을 건네고, 화해하는 영상을 찍어 윌리엄에게 보낸다. 그렇게 윌리엄의 뜻대로 서크가 원만하게 행동했다면 영화는 좀 시시하게 끝났을텐데, 서크는 결국 윌리엄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존 고도를 살해하려다 오히려 존 고도에게 죽임을 당한다.
방송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윌리엄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행동을 한다. 서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서크가 존 고도를 살해하려 하지 않았다면, 서크가 존 고도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윌리엄 역시 지금 같은 삶을 살다, 또 다른 삶을 선택하면서 조금씩 과거에서 멀어졌겠지만, 결국 윌리엄은 과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윌리엄은 존 고도를 찾아가고, 그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한국인 병사 변진수가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를 겪으며 결국 한기주에게 권총을 주고 자기를 쏴 죽이라며 애걸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도 베트남 참전 군인 트래비스가 전쟁의 트라우마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심야 택시운전을 하면서 뉴욕의 밤거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와 타락한 현장을 보고, 그것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 어린 창녀를 구하려 포주를 살해하고 영웅이 되는 장면도 윌리엄이 겪는 트라우마와 같은 성질이라고 볼 수 있다.
윌리엄은 그동안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경험으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라고 있었고, 그것을 배출할 기회를 갖지 못했으나 서크가 나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끔찍한 기억은 자동 재생된다.
 
윌리엄이 존 고도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 가져간 총으로 한 발만 쏘면 간단하게 죽일 수 있었지만, 윌리엄은 총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마치 잔인하게 고문하듯 죽인다. 이건 그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잡혀온 포로(그들이 죄가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다)를 어떻게 고문했는가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경찰에 자수하는 장면은, 그의 내면에 있던 트라우마가 겉으로 드러나면서,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 피를 뒤집어 쓰는 건 일종의 제의에 해당한다 - 장면이다.
그렇게 윌리엄은 다시 감옥에 갇히고, 그는 감옥 생활이 자기에게 잘 맞을 줄 몰랐다고 독백한다. 윌리엄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에 대해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 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카메라와 자기 삶을 관조하는 윌리엄의 태도는 과장 없는 하드보일드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 윌리엄이 딱 한 번 서크에게 말할 때만 빼고 - 심지어 존 고도를 죽일 때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해치운다.
이런 영화가 좋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한꺼풀 아래 덮인 진짜 이야기가 있는 영화.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고픈 말이 많아지는 영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건 영화 뿐아니라 소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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