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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퍼스트 리폼드

by 똥이아빠 2022. 12. 22.
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감독 작품. 250년 역사를 지닌 '퍼스트 리폼드 교회' 목사 톨러(에단 호크)는 일기를 쓰기로 작정한다. 그것도 꼭 12개월 동안, 노트에 직접 육필로 솔직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그건 자신의 목소리이면서, 기도문이고, 하나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목사로 사역하지만 교회는 '기념품 가게'로 불리는 역사적 유물일 뿐, 진짜 교회는 가까운 곳에 있는 '풍성한 교회'이고, 이 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톨러 목사는 신도를 만날 일이 없고, 온 종일 교회를 지키며, 외부에서 이 교회를 구경하러 오는 방문객에게 교회 역사를 설명하고, 기념품 판매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가 가톨릭 신부의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개신교 목사의 이야기로 변주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톨러 목사는 '풍성한 삶의 교회' 담임 목사인 제퍼스 목사의 도움으로 사역하지 않는 '기념품 판매' 교회인 퍼스트 리폼드 교회를 맡는다. 그의 삶에서 극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톨러 목사 또한 고요하고 담담한 일상을 보내는 걸 기꺼이 받아들인다. 심할 정도로 결벽한 그의 일상은 그러나 아주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톨러 목사는 건강이 좋지 않다. 위장병이 암일 가능성도 있고, 요도나 방광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의심한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죽음이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낀다.
 
교회 신도 메리가 찾아와 남편 마이클이 상담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톨러 목사는 메리의 집을 찾아가 마이클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마이클은 2050년이 되면 지구 환경이 매우 심각하게 붕괴되어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된다면서, 임신한 메리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톨러 목사의 입장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부닥치는 딜레마에 놓였고, 지구의 환경 파괴, 기후 위기와 같은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 문제와 함께, 환경 오염과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자본'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종교인은 현실을 외면하는 비겁한 태도를 보인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과 현실이 괴리가 크다는 걸 느낀다.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 종교인이 발딛고 살아가는 사회를 향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종교(교회)가 세속의 자본과 결탁해 사회를 구원하기는커녕 사회의 기득권에 기생하며, 진짜 구원이 필요한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외면할 뿐아니라 그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현실을 보면서, 톨러 목사는 점차 비장한 마음이 된다.
 
메리와 그의 남편 마이클은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특히 마이클은 매우 급진적 환경활동가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가 지구 환경이라는 거대 담론의 중압감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은 한편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문제로 임신한 아내를 돌보지 않고,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살해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2050년이 되어 설령 지구가 멸망해 어떤 생명이 살지 못한다 해도, 마이클이 자기 자식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톨러 목사도 그렇게 말한다. '네가 신인가? 다른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가졌는가?' 그 물음에 마이클은 대답하지 못한다. 당연히 대답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물음이다.
영화는 톨러 목사를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마이클이 보여주는 행동은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급진 환경론자인 마이클은 자기 내면에 몰입해 '객관'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며, 거대 담론인 지구의 환경을 두고 괴로워하지만, 가장 사랑하고, 가까이 있으며,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내 메리를 배려하지 못한다. 
마이클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고, 사람과 감정의 교류를 할 줄 모르는 비사회적 인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굳힌 결정적 사건이 바로 마이클이 자살하는 장면이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자살한다.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를 생각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한 건데, 이런 사람이 마치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인양, 지구 환경 어쩌구 하면서 떠드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톨러 목사는 자신의 종교와 현실의 괴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마이클이 자살한 이후, 톨러 목사는 곤경에 놓인 메리를 돌보는 한편 마이클이 던진 화두, 환경 파괴로 망가지는 지구와 생명들,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이 환경을 망가뜨리는 뉴스를 보면서, '누군가는 무언가를 해야 돼'라고 생각한다.
톨러 목사가 부채감을 갖게 된 건 마이클이 자살하기 직전 톨러 목사에게 남긴 유언장의 내용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유서에서 톨러 목사에게 아내 메리를 돌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거대 자본이고, 자본의 잔인하고 무차별적 이윤 추구로 지구 생명과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자료를 첨부한다. 
마이클의 유서는 자기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급진 환경론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책임감으로 아내와 아기를 돌보지 않은 건 더욱 이해하거나 용납하기 어렵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이 남긴 유서를 보고 스스로 공부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어떤 건지 살펴본다.
 
톨러 목사가 점차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단지 마이클의 유서에서 영향을 받아서만은 아니다. 톨러 목사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이혼한 이유는 하나뿐인 아들이 이라크로 파병나가 전사했기 때문이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이라크로 가는 걸 지지한 사람이 바로 톨러 목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톨러 목사의 집안은 아버지도 군인이었고, 자신도 군종 목사였기에, 군인이 되는 걸 자연스럽고 자부심을 갖았다. 하지만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서 아내와도 이혼하고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늙어버린 톨러 목사는 미래의 희망도, 나날의 즐거움도 없는 죽음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퍼스트 리폼드' 교회 250주년을 맞아 행사를 준비하면서 톨러 목사는 본당 교회인 '풍성한 교회'가 대자본의 지원을 받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대자본은 환경 파괴를 하는 기업으로 유명하고, 톨러 목사가 마이클의 장례식을 주관했으며, 마이클의 친구들이 급진 환경론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톨러 목사는 그들에게 경고를 받는다.
 
톨러 목사에게 죽음은 두렵거나 괴로운 감정이 아니다. 그는 이미 아들 요셉이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자신의 영혼도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내가 떠나가고, 아들이 죽어 혼자 남은 톨러 목사에게 '삶'이란 허깨비같은 것이다.
게다가 마이클이 자살한 것에 톨러 목사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메리가 톨러 목사를 불러 창고에서 자살 폭탄조끼를 보여주었고, 그 자살 폭탄조끼를 가져온 것이 톨러 목사였다. 마이클은 그 사실을 알고 자살했으니, 톨러 목사는 마이클에게 죄책감과 부채감을 갖게 된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이 남긴 자살 폭탄조끼를 터뜨릴 생각을 한다. 교회 250주년 축하 행사에 주지사를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와 대자본의 임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자살 폭탄조끼를 입은 톨러 목사가 행사장에서 폭탄을 터뜨리면 엄청난 뉴스가 될 것이고, 마이클이 원했던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거라고 톨러 목사는 생각한다.
톨러 목사는 삶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그가 자살 폭탄조끼를 입고 계획을 실행하려 준비할 때, 그의 눈에 메리가 보인다. 절대 교회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나, 메리는 행사장에 참석한다. 
톨러 목사는 당황하고, 입었던 자살 폭탄조끼를 벗고, 가시 철망을 몸에 두른 채 배관청소용액을 마시고 자살하려다 메리를 만난다. 
 
메리는 남편이 자살했고, 이제 막 아이를 낳았으니 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를 동시에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톨러 목사를 찾아 도움을 구한다. 톨러 목사는 기꺼이 메리를 돌봐주고, 메리가 요구하는 건 거절하지 (못)않고 들어준다. 메리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톨러 목사의 몸 위에 업드려 코끝을 맞대고 싶다고 말한다. 톨러 목사는 당황스럽지만 메리의 요구를 들어준다.
두 사람의 몸이 밀착하고, 교회 마루바닥이 사라지면서 지구의 아름다운 자연 위로 두 사람이 몸을 밀착한 채 공중을 날아다닌다. 이런 환상은 두 사람의 감정적 유대감을 증폭하고, 톨러 목사가 자살하기 직전, 메리를 만나면서 두 사람이 격렬한 키스를 하게 되는 동력이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의 격렬한 키스 장면으로 끝나고, 톨러 목사는 자살하지 않을 걸로 본다. 세상이 무너져도 오직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는 걸 폴 슈레이더 감독은 말하고 있다. 톨러 목사는 자기의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메리가 나타나면서 그가 가진 과거의 고통과 괴로움의 자아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현재의 자아가 끊임없이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살아갈 것이다. 오욕칠정, 생로병사를 알면서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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