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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페일 블루 아이

by 똥이아빠 2023. 1. 11.
페일 블루 아이
 
넷플릭스.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영화. 원작 소설인 '페일 블루 아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는 루이스 바이어드로, 한국에서 번역 출판한 그의 작품은 '검은 계단'이 있는데, 그나마도 2011년에 출판한 이후 지금은 절판 상태다. 저자의 이름도 '루이스 베이어드'로 표기되어 있다.
'페일 블루 아이'는 2007년에 발표한 소설이고 이 소설로 '에드거상'에 후보로 올랐다. 이 소설의 구조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매우 비슷하다. 즉, 특수한 집단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외부인이 있고, 매우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가진 외부인이 특수한 집단의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며, 결국 범인을 찾아낸다는 기둥 줄거리가 흡사하다는 점에서, 과거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소설의 전형인 아가사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1830년, 웨스트포인트. 미육군 사관학교의 교장은 수사관 랜더를 초빙한다. 미육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웨스트포인트지만, 지금 이 군사학교는 의회에서 지원금을 중단하겠다는 압력을 받고 있고, 웨스트포인트를 해체하려는 권력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다. 남북전쟁이 1861년에 일어났으니,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30년 전이고, 웨스트포인트가 설립한 건 1802년이니, 이제 28년 된 신생 조직이다.
'웨스트포인트'는 뉴욕주의 지명이어서 미육군사관학교를 지칭할 때 관행적으로 부르는 별칭이다. 이 시기는 당연히 인종차별이 극심할 때여서 사관생도는 100% 백인 청년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애드거 앨런 포는 실존 인물이고, '검은 고양이'를 쓴 바로 그 작가다. 애드거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데, '페일 블루 아이'가 실제 역사와 픽션을 결합한 '팩션'이라는 점에서, 작가 루이스 바이어드의 작품 세계 거의 모두 '팩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드는 건 독자의 관심과 흥미, 집중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나도 예전에 중편 소설 하나를 조선시대 실존 인물인 정여립을 주인공으로 한 '팩션'을 쓴 적이 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도 글쓰기가 더 재미있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이 작품의 배경인 1830년에 실제 웨스트포인트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하기 전에도 이미 군인이었는데, 그때는 사병이었다. 애드거가 군인으로 입대한 것도 도박과 알콜중독으로 몹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현실의 탈출구로 군대를 생각했고, 입대하고는 상태가 좋아졌다. 그는 사병이었지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 부사관으로 진급했다. 이런 계기로 어차피 군인으로 생활할 거라면 장교가 되자고 생각해서 1830년,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한다.
수사관 랜더는 살해당한 프라이 생도를 시작으로, 프라이 생도와 가까운 동료 생도들을 탐문한다. 이때 애드거 앨런 포 생도가 나타나 랜더의 수사를 돕기 시작한다. 마치 교수형을 당한 형태로 발견된 프라이 생도는 처음에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랜더가 타살이라고 주장하면서, 근거를 하나씩 제시한다.
수사관 랜더를 연기하는 크리스천 베일은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 전체 분위기가 살아날 정도고, 애드거 앨런 포를 연기하는 해리 멜링과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그리 유명하지 않아도 이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는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준다.
해리 멜링은 영화 '해리 포터'에서 '더들리 더즐리' 역을 맡은 소년이었는데,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소년과 지금의 해리 멜링을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해리 멜링을 특별히 기억하게 된 건 코엔 형제의 최신작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옴니버스 세번째 영화인 '밥줄'에 나오는 팔과 다리가 없는, 몸통만 있는 청년의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는 마차를 끌고 다니며 유랑 극장을 하는 리암 니슨과 함께 다니며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우의 역할을 하는데, 몸통만 있는 소년의 존재가 독특하고, 여러 종류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들려주는 소년의 능력으로 돈을 버는 단장(리암 니슨)이 어느 날, 돈을 더 잘 버는 닭을 구입하면서, 이 몸통만 있는 소년이 버려지는 이야기다. 애드거 앨런 포를 연기한 해리 멜링은 실제로 애드거와 외모가 조금 닮았다. 
 
살인 사건의 수사는 랜더가 하지만 그를 돕는 애드거의 역할도 상당히 크다. 처음, 살해당한 프라이 생도의 손에 남아 있던 종이 쪽지의 일부를 랜더가 애드거에게 주면서, 쪽지의 내용을 재구성해보라고 주문한다. 애드거는 단어 몇 개만으로 프라이 생도가 받은 내용 전체를 재구성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인다.
랜더 수사관은 애드거의 실력을 확인하고, 그와 함께 사건을 보다 깊이 있게 풀어나간다. 밧줄에 목이 졸린 채 발견된 프라이 생도의 시신은 곧이어 심장이 적출당한 채 발견되는데, 살해한 범인과 심장을 적출한 범인이 한 사람인지, 둘 이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애드거는 사관생도로, 살해당한 프라이 생도와도 알았으며, 그의 주변 인물들과도 모두 아는 사이여서 랜더 수사관이 접근할 수 없는 내부의 비밀을 염탐하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즉, 작가는 외부의 수사관 랜더를 배치하는 한편, 내부에서 발생하거나, 내부의 비밀을 캐낼 내부자를 동시에 배치하는 면밀함을 보인다.
19세기 중반에도 여전히 주술과 마술, 악마숭배와 같은 은비주의가 횡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건 유럽의 중세에서 매우 활발하게 유행하던 종교적 전통이기도 하다. 유럽 중세가 가톨릭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가톨릭은 '마녀사냥'을 통해 종교적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교회 재정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마녀'를 지목해 사냥하는 수단을 동원했다.
이때 '마녀'로 지목당한 여성들은 대부분 과부이면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평민이 가장 많았지만 드물게 귀족인 여성도 있었다. '악마 숭배'는 처음부터 존재한 건 아니지만 - 드물게 그런 경우도 있었으나 - 유럽 민중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민간 신앙과 전통 의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악마 숭배'를 강조하고, 전형을 만든 건 오히려 가톨릭 교회였다.
이들은 '악마 숭배'라는 적대적 제의를 제시하면서, 마녀 사냥과 가톨릭 교회에 적대적인 인물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 소설(영화)에서도 악마 숭배 제의는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심장을 적출한 범인은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 장소에서 악마 숭배 제의를 열고, 심장과 피를 바친다. 즉, 프라이 생도 살인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악마 숭배와 결합하면서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로 확산한다.
생도들 가운데 악마 숭배에 관심 많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는 건 애드거의 역할이고, 랜더 수사관은 제의와 주술 전문가인 친구를 찾아가 악마 숭배 제의 현장에서 발견한 표식을 보여주며 그 상징의 의미를 알아낸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또 다른 생도인 밸린저가 살해당하고, 아티머스 생도는 도망한다. 
 
소설(영화) 결말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악마 숭배는 하나의 장치일 뿐,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결과를 만드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느 시기나 악한 인간은 있기 마련이고, 죄를 저지르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복수의 과정이 처절해도 죄 지은 자를 용서하거나, 연민을 느끼지 않는 건, 복수보다 죄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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