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한 액션 영화. 2012년에 개봉한 영화이고, 액션 영화로 분류하지만, 꽤 잘 만든 영화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보아즈 야킨 감독은 이 영화 전에도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출을 했는데, '황혼에서 새벽까지 2'의 시나리오를 썼고, 슬래시 영화인 '호스텔'을 기획했으니 역량은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모두 액션 영화이고, 좋은 영화가 많다. 마치 한국에서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가 마동석 액션으로 유명하듯, 제이슨 스타뎀도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액션이 있다. 이 영화는 액션도 훌륭하고, 시나리오도 좋다. 액션영화에서 시나리오는 액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러다보니 전체 서사의 짜임새가 부족한 액션 영화가 많다. 이 영화는 액션과 서사가 잘 맞물려 있고, 주인공 루크와 메이가 만나서 끝까지 함께 가게 되는 과정까지를 무리하지 않게 보여준다.
조금 과장된 해석을 하자면 이 영화가 '레옹'과 '아저씨'의 다른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순전히 우연이지만, 성인 남성과 어린 여자아이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이 같은 운명으로 묶이면서 적들과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레옹'은 훨씬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이 영화는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관객이 인물에게 몰입하는 과정은 어떤 인물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다. 즉, 주인공에게 과거는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가 놓인 처지가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서사를 설명하는 배경이다. 다만 그 서사의 배경을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 몇 마디, 짧은 한두 장면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며, 그렇게 짧게 압축해서 보여줄 때 관객은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스스로 확장한다.
루크는 불법 격투기 도박장에서 격투선수로 돈을 번다. 실력은 있지만, 불법 도박이 걸린 격투기여서 실력과 상관 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싸워야 한다. 루크는 계속 맞다 화가 나서 한 때 때렸는데 그만 그 선수가 반쯤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루크가 지는 쪽에 돈을 건 사람 가운데 러시아 마피아도 있었는데, 그들은 루크의 아내를 살해하고 루크를 살려둔다.
그 충격으로 루크는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로 살다 경찰에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그곳에는 예전 동료들이 모여 루크를 비난하며 폭행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루크는 뉴욕 경찰이었고, 꽤 유능한 경찰이었으며 그의 동료들과는 달리 부패하지 않은, 청렴한 경찰이었던 걸로 드러난다. 루크는 내부고발자가 되어 동료들의 비리, 범죄를 고발했고, 그 뒤로 루크는 경찰을 떠났고, 동료들은 여전히 비리 경찰로 살아가고 있었다.
미국 영화에서 비리 경찰을 다룬 내용은 많은데, 그 가운데 명작으로 'LA 컨피덴셜'이 있다. 미국의 하드보일드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시대 배경은 1950년대 로스엔젤레스다. 이 영화에 잭 빈센스 형사로 나오는 배우가 케빈 스페이시인데, 이 영화 '세이프'에서는 제작자의 한 명이기도 하다.
청렴한 경찰로 사는데 오히려 불행해지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다. 루크는 죽음말고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절망의 끝까지 추락한다. 내부 고발을 했다고 직장을 잃고, 동료들이 그를 죽이려 들며, 먹고 살려고 한 불법 격투기의 승부 때문에 러시아 마피아에게 임신한 아내가 살해당했다. 루크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도, 바탕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할 결심을 한다. 그렇게 전철이 다가오길 기다리던 루크는 한 동양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 소녀는 겁을 먹었고, 도망하고 있다는 걸 루크는 직감으로 안다. 소녀의 뒤를 쫓는 심상찮은 백인 남성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오고, 전철이 멈춰서고, 문이 열린다.
이렇게 소녀 메이와 만나게 된 루크는 메이를 구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행동을 시작한다. 이건 영화 '아저씨'에서 태식(원빈)이 소미(김새론)를 지켜야 한다고 마음 먹은 것과 같다. 태식 역시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인물이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소미를 알게 되면서, 고통스러운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람이 소미였기 때문이다.
태식이 전직 특수요원인 것처럼, 루크도 단순한 뉴욕 경찰이 아니라, 군에서 특수요원으로 활동했고, 그 경력으로 뉴욕 경찰에 특채된 경우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루크는 경찰 특수팀에서도 알지 못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메이의 운명도 남다르다. 초등학생 때 이미 수학 천재로 알려졌으나 삼합회에 끌려가 암호기계가 된다. 어린아이로는 겪을 수 없고, 겪어서도 안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메이의 내면도 피폐한 상태다. 삼합회의 암호기계로 일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마피아의 습격으로 메이를 데려가던 삼합회 조직원들이 살해당하면서, 메이는 혼자 도망한다.
그렇게 루크와 메이는 운명적으로 만나고, 두 사람을 둘러싼 세 개의 거대한 세력이 충돌한다. 뉴욕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삼합회, 삼합회와 시장을 갈라 먹는 러시아 마피아, 이 두 범죄 조직을 관리하는 뉴욕 경찰과 시장. 시장은 경찰서장 출신이어서 경찰과 한 몸이다.
이들은 범죄 카르텔을 결성하고, 삼합회와 러시아 마피아가 범죄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상납받는 조건으로 범죄를 눈 감아 준다. 루크는 메이를 만나서 이들 세 조직 사이에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오랜 경찰 생활과 특수부대 요원으로, 무수히 많은 범죄자를 은밀하게 살해해 묻은 경험으로 미루어, 지금 더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메이를 구하려면 이 판을 깨뜨려야 한다고 판단한다.
3천만 달러의 현금과 정치인들에게 건넨 비자금을 정리한 자료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삼합회와 뉴욕시장이 거래를 시도하는 걸 러시아 마피아가 눈치 채고 개입했고, 루크는 자연스럽게 아내를 살해한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들을 납치해 두목과 거래한다. 루크의 입장에서, 러시아 마피아는 아내를 살해한 원수이고, 삼합회는 메이를 학대한 잘못이 있으며, 뉴욕 경찰은 여전히 더러운 돈을 받는 부패한 과거 동료들이 있다.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청소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냉정하게 접근한다.
삼합회와 러시아 마피아를 정리하는 건 액션 영화에서 그렇듯, 화려한 액션과 총 싸움으로 끝내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는 과거 부패한 경찰 동료를 활용하는 장면이다. 루크는 이들을 불러 모은다. 루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이들 부패 경찰들이 루크의 말을 듣는 건 오직 돈 때문이다. 3천만 달러를 여섯 명이 나눠 갖자는 루크의 제안은 적과 악수할 수 있을 만큼 큰 돈이다.
삼합회가 운영하는 거대한 도박장의 지하 금고에 돈이 있고, 여기 접근하려면 절대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루크는 현직 경찰이자 부패한 경찰이며 과거 동료였던 다섯 명을 불러 함께 지하 금고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삼합회는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고, 루크는 현금 가방을 챙긴다.
금고 앞에서, 다섯 명 - 한 명은 부상을 당했는데, 동료 경찰, 그것도 서장이 쏴 죽인다 - 가운데 루크를 제외한 네 명이 루크를 바라본다. 금고 문을 열면 당연히 루크를 살해하고 자기끼리 돈을 나눠 갖기로 말을 맞췄을 거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루크 역시 누구보다 이들을 잘 알고 있다.
루크는 시장 집무실에 잠입해 시장이 갖고 있는 비리 정치인 자료를 뺐는다. 결국 돈과 비밀 자료 모두를 손에 넣은 루크는 여러 곳의 은행에 돈과 자료를 함께 넣어두고, 시장과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루크와 메이를 찾으려면 그들 모두가 죽게 되는 폭탄을 넣어둔 것이다.
루크는 메이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이때 메이는 루크에게 '좋은 친구'가 되자고 말한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의 나이지만, 메이는 어린 나이에 이미 너무 많은 세상을 알았고, 더 이상 어린아이일 수 없다는 걸 루크도 안다. 루크와 메이는 가족을 잃었고, 서로에게 가족이 된다. 이들은 시애틀에 있는 영재 학교로 향한다. 뉴욕에서 시애틀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이다. 게다가 바로 위에 캐나다가 있다. 루크와 메이는 이름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게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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