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오랜만에 영화에 푹 빠졌다. 소설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460페이지 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면서도 서사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주인공 카야를 보면서 떠오른 인물은 레이첼 카슨이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써서 세계환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문학을 전공했지만, 생물학자가 되어 몇 권의 책을 썼는데, 그 책들이 바다와 해양 생물을 담은 책이어서 주인공 카야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영화(소설)에서도 카야는 독학으로 그리고 쓴 습지 생물 이야기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성공한 작가가 되고, 습지 생태와 습지에서 살아가는 생물을 다룬 책을 꾸준히 출판하는 인기 작가로 성공한다.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카야가 겪어야 했던 삶을 습지, 생물, 자연, 카야의 내면 등을 통해 담담하면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카야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이고, 그가 홀로 견딜 수 있었던 힘은 그가 사랑한 대상을 통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카야는 습지, 생물들, 자기를 자식처럼 아끼는 상점의 흑인 부부가 있었기에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 수 있었다.
습지에서 한 젊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습지를 조망하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은 카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녀를 체포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카야의 어릴 때로 돌아간다. 1950년 초반, 카야는 막내딸로 한창 사랑받으며 자랄 나이인데, 그리 행복하지 않다.
카야 위로 두 명의 언니와 두 명의 오빠가 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엄마가 먼저 가출하고, 뒤이어 언니와 오빠들도 집을 떠난다. 그렇게 아버지와 혼자 남게 된 카야는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결국 아버지도 카야를 버리고 집을 떠나 진짜 고아가 된 어린 카야는 홍합을 따서 점핀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가게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점핀 부부는 흑인으로, 백인의 문제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지만, 고아가 된 카야를 딸처럼 돌봐주는 유일한 이웃이다.
카야의 세계는 매우 좁다. 그를 보호할 가족은 일찍 파탄나 뿔뿔이 흩어졌고, 그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고립되고 외로운 존재다. 이때 그가 의존하는 사람이 점핀 부부인데, 이들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흑인 부부다. 60년대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심했고, 흑인은 백인과 어울릴 수 없었다. 카야는 백인 어린이였고, 마을에서 돌봐주지 않고 있어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점핀 부부의 인정이 카야를 살린다. 이런 장치는 어쩌면 작가의 의도로 보이는데, 사회적 약자인 카야와 흑인 부부가 의사 가족으로 결합하는 장면은 하나의 장치라 해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
카야는 우연히 테이트를 만난다. 테이트가 카야를 눈여겨 보고 접근했지만,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테이트에게도 깊은 아픔이 있는데, 테이트의 엄마와 여동생이 테이트의 생일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갔다 교통사고로 죽었고, 테이트는 그 사고를 두고 심하게 자책한다. 테이트가 카야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연민을 갖게 된 건 테이트 자신의 경험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카야가 읽도록 돕는다. 덕분에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카야는 생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걸 두고 '습지 소녀'라고 규정하고 카야를 마치 '늑대소년'처럼 여긴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은 늘 약자를 향하고,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집단의 평화와 동질감, 안정을 추구한다.
카야는 평생 두 남자를 만나는데, 처음 만난 테이트는 카야의 선생님이자 연인이고, 시간이 흘러 배우자가 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반려자가 된다. 두 사람은 생각이 비슷하고, 가족을 잃은 공통점이 있으며, 습지 즉 자연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같았다. 테이트가 잠시 판단을 잘못해 카야를 실망시켰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고, 카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테이트가 좋은 남자라는 건 카야도 잘 안다.
반면 두번째 만난 체이스는 외로운 카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거짓말을 하며 카야를 속인다. 순진한 카야는 처음에 체이스가 하는 말에 속지만, 오래지 않아 체이스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 체이스는 카야를 폭행하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카야는 어릴 때 아버지가 했던 폭력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체이스를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이야기는 현재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카야의 상황과 카야와 만났던 체이스가 추락사한 이전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준다. 최초의 남자 친구였던 테이트가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카야는 배신당한 상처가 깊었고, 더욱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산다. 그러다 우연히 체이스가 접근하고, 체이스는 외로운 카야에게 접근해 몸과 마음을 뺐는다. 결혼하자는 체이스의 말을 믿었지만, 알고보니 그동안 카야에게 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고, 카야는 체이스를 멀리하려 하지만, 체이스는 카야를 폭행하고, 카야가 그린 작품을 망가뜨린다.
카야는 그런 와중에도 자기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고, 출판사는 카야의 그림과 글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출판사는 즉시 계약하자는 편지를 보내고, 선인세로 5천 달러를 보낸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금액을 받았고, 자기가 쓴 원고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카야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려 마을을 떠났던 테이트가 돌아오고, 테이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걸 카야에게 진심으로 후회하며 사과한다.
재판에서 카야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때 모든 알리바이와 증인들은 카야가 체이스가 죽던 날 밤, 먼 도시에 있었다는 걸 확인한다. 반면 검사는 아무런 증거 없이 추정만으로 카야가 살인했다고 주장한다. 배심원들은 숙의 끝에 카야가 무죄라고 평결한다. 카야가 쓴 책이 나오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자 집을 떠났던 오빠가 찾아와 가족의 안부를 전한다. 엄마는 자식들과 함께 살려고 돈을 모으다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다른 형제들은 연락이 끊겼다고 전한다.
카야는 평생 습지에 살며, 문명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가 처음 만나 사랑했던 테이트와 결혼해 오래도록 함께 습지의 생태를 연구하며, 책을 쓴다. 그의 옆에는 테이트가 좋은 반려자로 카야와 함께 하고, 두 사람은 습지에서 더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습지의 자연과 함께.
영화 끝부분에 반전이 있는데, 이걸 두고 독자(관객)의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어떤 리뷰에서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작가를 비난한 글을 봤는데, 그런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는 있지만, 수준이 낮은 사람이 쓴 글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한 투표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좋은 작품을 읽을 능력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인식 수준이 일정한 수준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주어도, 작품을 소화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쇠귀에 경읽기'가 되거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는 거다. 문제는, 자기 수준이 천박하거나 낮은 사람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자신감이 강하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천박함을 감추려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무지와 천박을 오히려 무기로 사용하며 공격한다.
지식이 조금 있다고 온갖 미사여구와 외국어, 외래어를 쓰며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지만, 자기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고, 천박함을 자랑하는 사람 역시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주인공 카야는 평생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는 사회 생활에 자신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습지에서 스스로 공부한 자연생태의 지식은 어떤 전문가, 박사보다 뛰어나다. 카야가 출판사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며 자기 원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감이 넘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며, 내성적 성격이면서도 그때만은 부끄럼을 타지 않고 당당하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아마존에서 오래도록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는 독자를 사로 잡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서다. 주인공 카야의 처지, 성장하는 카야의 대견함, 불우한 소녀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는 행복한 이야기, 테이트와의 사랑 이야기와 나쁜 남자 체이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카야를 돌봐주는 선한 점핀 부부, 범인으로 몰린 카야의 법정 스토리 등 흥미로운 요소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독자의 호기심을 계속 유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윅 4 - 고딕과 매트릭스가 결합한 혼종 판타지 (0) | 2023.04.09 |
---|---|
콜럼버스에서 건축물의 의미 (0) | 2023.03.22 |
더 웨일 (0) | 2023.03.04 |
해리건 씨의 전화기 - 스티븐 킹 (0) | 2023.02.16 |
조지타운 (0) | 2023.02.06 |
1883 - 미국 미니시리즈 (0) | 2023.01.26 |
세이프 (1) | 2023.01.16 |
스틸워터 (0) | 2023.01.14 |
비바리움 (1) | 2023.01.12 |
페일 블루 아이 (0) | 2023.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