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비바리움

by 똥이아빠 2023. 1. 12.
비바리움
 
저예산으로 만든 미스터리, 공포, SF 영화. 매우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여서 등장인물도, 촬영도 최소한의 인물과 공간에서 제작했다. 영화의 주제와도 맞는 설정인데, '비바리움(vivarium)은 라틴어로 '연구나 관찰 목적으로 동물, 식물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어 두고 사육하는 것'을 뜻한다.
제목이 곧 영화의 주제인데, 이 주제를 알고 봐도, 영화가 의미하는 알레고리는 꽤 의심심장하다. 줄거리 역시 매우 단순해서 한 젊은 커플이 집을 구하려다 주택단지를 분양하는 사무실의 직원과 함께 주택단지에 있는 집을 둘러보는데, 분양 사무실 직원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출구를 찾지 못해 갇히고, 그곳에서 살다 결국 죽게 되는 결말이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관객이 읽을 수 있는 은유와 비유가 얼마나 많을까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이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초현실주의'와 '인간보다 우등한 외계인'이 그것인데, 이 둘이 하나로 결합하면서 미스터리, 공포, SF 영화가 되었다.
 
젊은 커플 톰과 젬마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부부나 다름없다. 함께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돈도 없지만 임대 주택도 찾기 어렵다. 톰은 정원사로 일하고, 젬마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 어린이집 마당에서 어린 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톰은 모종삽으로 죽은 새끼 새를 묻어주고, 두 사람은 집을 보러 다닌다.
우연히 주택 단지를 분양하는 사무실을 발견하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모형으로 만든 집을 본다. 분양사무실 직원인 마틴은 두 사람을 위한 맞춤형 주택이 있다면서 주택 단지로 함께 가서 집구경을 하자고 권유한다. 두 사람은 애매한 마음으로 따라간다.
이들이 도착한 주택단지 '욘더'는 똑같은 집이 수십, 수백 채 나란히 붙어 있는 매우 넓은 단지로, 집만 봐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장소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알레고리가 시작한다. 두 사람이 도착한 주택단지는 '초현실' 공간이다. 같은 집이 무한 반복하고 있고, 집의 색감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모양은 보는 즉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즉,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하도록 만든 건, 이 공간이 '초현실' 공간이라는 걸 관객에게 알리려는 감독의 의도다. '욘더(yonder)'라는 뜻이 '저쪽에(over there)'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 이 주택단지가 '현실' 공간이 아닌, 비현실 또는 초현실 공간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미셸 푸코나 프로이트가 개입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초현실' 공간은 정신분석적 해석보다는 외계인이 만든 공간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게 맞다. 두 사람이 집을 둘러보는 사이 분양주택 사무소의 직원 '마틴'은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두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차를 타고 주택단지를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리 운전을 해도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이건 외계인이 만든 초현실 공간이면서, 바뀌지 않는 운명, 거역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동차 연료가 떨어지고, 두 사람은 결국 자기들이 본 집(9호)에서 머물게 된다. 무한으로 이어지는 주택단지의 집들 가운데 유일하게 두 사람이 머무는 집에만 번호가 붙어 있고, 그 번호는 9번이다. 무한의 수 또는 공간과 9라는 숫자는 어떤 상징성을 가졌을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 은비주의에서 숫자 9는 가장 신비한 수로 여긴다. 히브리어에서 9는 불가사의한 힘을 의미하며, 그리스어에서 9는 완전함을 뜻하고, 기독교에서 9는 삼위 일체를 나타내며,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최상급의 최상급을 의미한다.
9개의 하늘들, 9계급의 천사들, 9명의 혹성들, 9명의 뮤즈들, 9개의 십자가들, 9명의 명사들, 문장이 새겨진 9개의 왕관들, 9개월의 임신, 9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 9칸의 지옥, 9일간의 경이로움, 9일간의 굴욕, 9가닥의 채찍 같은 상징을 포함하고 있으며, 수학에서도 9는 신비한 수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
0을 제외한 아홉 개의 숫자(1부터 9까지)를 가로로 합하면 45이고, 4와 5의 합은 9가 된다. 또한 9의 배수가 되는 모든 수의 경우, 각각 그 수들을 가로선상으로 더하면 그 합은 9가 된다.(인터넷 참조)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9번 주택에서 살게 되며,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사육당하는 존재가 된다. 음식이 담긴 박스가 문 앞에 놓이고, 그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맛은 없다. 즉 생존을 위해 먹을 뿐, 삶의 의미, 생활,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감정과 느낌이 배제된 공간이다. 
박스에 담긴 아기가 도착하고, 이 아기를 다 키우면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 두 사람은 원하지 않지만 아기를 돌보고,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공간은 초현실 공간이라 텔레비전을 켜도 이상한 이미지만 나올 뿐이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아이는 빠르게 성장한다. 이 '초현실' 공간에서 시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 불과 100일이 지났을 때 아기는 소년이 된다. 소년은 텔레비전을 켜고,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소년이 어딘가에서 가져온 책에는 그 이미지 패턴과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는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문자와 이미지여서 외계인의 문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초현실' 공간은 외계인이 만든 가상 공간일 수 있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인간의 딜레마를 담은 알레고리일 수 있다. '초현실' 공간에 갇혀 이웃도 없고, 오락거리도 없고, 놀이도, 즐거움도 없이 감옥에 갇힌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길러야 하는 책임과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두 사람의 삶은 '비바리움' 바로 그 자체이며, 인간을 '관찰'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걸 전제한다.
 
정원사로 일하던 톰은 마당에서 우연히 잔디밭의 흙을 보고, 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그는 하루 종일 땅을 판다. 다른 어떤 일도 할만한 일이 없고, 유흥과 오락이 없는 지루한 일상에서 그나마 땅이라도 팔 수 있는 건 톰에게 희망이다. 땅을 파는 행위는 '노동'을 의미하고, 이 답답한 공간과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열망의 표현이다.
톰이 마당을 깊이 파내려갈수록 소년은 성장하고 이제 청년이 되었다. 두 사람보다 육체가 더 커진 청년은 두 사람을 부모로 여기지만, 톰과 젬마는 이 청년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톰은 점점 쇠약해지고, 마침내 깊은 땅밑에서 무언가 발견한다.
땅을 깊이 파내려간 행위는 시간의 흐름과 노동, 인간의 노화를 의미한다. 톰은 이 노동을 통해 늙어가고, 땅바닥에서 자신과 젬마의 주검을 발견한다. 즉, 자신과 젬마의 미래를 보는 것이다. 그건 인간의 유한한 삶과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이며, 이 영화가 '비바리움'의 순환고리, 영원한 반복, 갇힌 공간이라는 걸 뜻한다.
 
톰은 땅을 파는 노동으로 쇠약해서 죽고, 그 옆에서 젬마는 절망으로 죽는다. 아기였던 청년은 두 사람을 비닐팩에 넣어 톰이 파놓은 깊은 구덩이에 두 사람의 주검을 던지고, 땅을 다시 메운다. 이 모든 과정은 한 번이 아니고,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수없이 반복된 상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톰과 젬마의 죽음처럼 전원주택 분양사무소의 마틴도 노화로 죽는다. 그 자리를 이어 받는 사람이 아기였던, 소년이었던 톰과 젬마의 아이라고 주장했던 그 청년이다. 그는 '마틴'의 이름표를 떼서 달고, 죽은 '마틴'을 비닐팩에 넣어 둘둘 말아 캐비닛에 넣는다. 그리고 전원주택 분양사무소에는 또 다른 톰과 젬마가 찾아오고, 마틴은 두 사람을 맞이한다.
이 순환의 알레고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유한한 삶에 관한 공포이면서, 인간의 의지가 통하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불안을 드러내며, 완전하고 영원한 존재 -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외계인이라고 부르든 - 를 두려워하는 미개한 상태의 인간을 보여준다.
인간인 톰과 젬마의 시각(입장)이 아닌, 이들을 관찰하는 어떤 존재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보면, 톰과 젬마는 투명한 상자에 담긴 개미굴과 거기 사는 개미들처럼, 한 곳에서 꼼지락거리며 살아가지만, 끝내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이 투명한 상자 안에 사는 존재는 3차원을 인지하지만, 그 이상의 차원은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 능력이어서,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사는 존재 역시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는 가장 고등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타운  (0) 2023.02.06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2023.02.04
1883 - 미국 미니시리즈  (0) 2023.01.26
세이프  (1) 2023.01.16
스틸워터  (0) 2023.01.14
페일 블루 아이  (0) 2023.01.11
화이트 노이즈  (1) 2023.01.05
써스펙트  (0) 2023.01.01
불릿 트레인  (0) 2022.12.28
프레스티지  (0)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