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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프레스티지

by 똥이아빠 2022. 12. 27.
프레스티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그동안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보면 '소품'에 해당하는 규모가 작은 영화로 약 4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다. 직전에 연출한 작품이 '배트맨 비긴즈'이고, 이 영화 다음에 연출한 작품이 '다크나이트'였으니, 대작 사이에 잠깐 쉬어가는 느낌으로 만든 영화라고 봐도 좋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복잡한 서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뒤로 갈수록 놀랍고, 미장센이며 배우 면면이 결코 가볍게 볼 영화는 아니다. 놀란 감독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출연하는 크리스찬 베일, 휴 잭맨, 마이클 케인 등이 나오고 스칼렛 요한슨과 데이비드 보위가 깜짝 출연한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크리스토퍼 매켄지의 작품이 한국에는 두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 영화의 원작인 '프레스티지'와 '매혹'이 있다. 영국과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것만큼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그의 작품 세계를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꽤 좋아할 만한 장르적 특징을 보인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내용과 다르다. 보든과 앤지어 두 마술사의 경쟁과 복수라는 큰 줄기는 같으나, 두 사람이 '원수'가 되는 과정의 사건은 영화에서 다르게 표현되었고, 작품의 시점도 원작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를 오가는 방식이라면, 영화는 한 시대를 배경으로 쭉 이어진다.
 
영화의 주제는 복수극인데,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복수를 위한 집착과 동업자(마술사)의 경쟁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걸 볼 수 있다. '마술'은 보통 과학과 거리가 먼 눈속임으로 생각하기 쉽다. 마술은 크고 작은 도구를 활용해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이다. 
보든과 앤지어는 유명한 마술사로, 경쟁하는 사이다. 보든이 실수든, 고의든 앤지어의 아내(원작), 애인(영화)을 해치게 되고, 앤지어는 보든에게 복수하기로 작정한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가 사용하는 마술의 비밀을 알아내려 애쓰고, 이 과정에서 앤지어는 애인(스칼렛 요한슨)을 보든의 조수로 보내는데, 애인이 보든과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보든과 앤지어)의 관계는 더 복잡하고 갈등은 증폭된다.
 
테슬라가 등장하는 건 놀랍고도 충격적인 장면이다. 두 마술사가 새로운 마술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테슬라는 깊은 산속에 연구소를 만들어 외롭게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역시 에디슨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에디슨에게 패하고 마는데, 기술은 테슬라가 뛰어났어도, 마케팅에서 앞선 에디슨에게 자신의 특허까지 빼앗긴 상황이다.
앤지어는 그런 테슬라를 찾아가 읍소해 만난다. 전기 자극을 통한 순간 이동 기술을 테슬라가 발명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앤지어는 어떻게든 그 기술을 돈을 주고 사야한다고 생각한다. 테슬라라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그가 현대 전기의 발명가이자 비운의 천재라는 이미지를 소설에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소설의 서사에 신뢰감을 증가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앤지어가 테슬라를 찾아가 전기를 이용한 순간 이동 기술을 배우거나, 기계를 구입하려는 목적은 보든 때문이었다. 보든은 다른 어떤 마술보다 완벽하고 놀라운 순간 이동 마술을 공연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의 공연장에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앤지어도 그 공연을 봤고, 순간 이동에 필요한 조건은 딱 한 가지, 쌍동이이거나 완벽하게 닮은 사람을 활용하는 거였다. 앤지어도 자신을 꼭 닮은 사람을 찾아내 순간 이동 공연을 한다. 
하지만 앤지어를 닮은 사람은 알콜중독자로 공연이 성공하자 출연료를 많이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앤지어는 테슬라를 찾아가고, 아직 완성하지 않은 순간 이동 장치를 보고는 테슬라에게 그 기계를 구입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전기로 작동하는 순간 이동 장치를 공연 무대에 올리고, 사람들 앞에서 사라졌다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마술을 보인다.
 
놀라운 반전은 이때부터 시작하는데, 앤지어의 순간 이동 마술이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보든도 그 공연을 보러 간다. 보든은 무대 장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몰래 무대 지하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수조를 발견한다. 이 수조는 영화 초반부에 보든이 앤지어의 애인을 죽게 만든 바로 그 수조라는 걸 알 수 있고, 무대의 바닥이 꺼지면서 앤지어가 수조로 떨어지면서 익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보든은 앤지어가 익사하는 현장에 있었으므로 범인으로 지목되고, 재판을 거쳐 사형이 확정된다. 몹시 억울한 상황이고, 하소연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보든은 어떻게든 죽음을 면하려 한다. 그때 보든 앞에 귀족 콜트로 경이 보든의 어린 딸을 데리고 나타나고, 콜트로 경의 정체가 바로 죽은 앤지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보든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보든이 사형당하면 어린 딸을 돌볼 수 없으니 자신이 보든의 딸을 돌보겠다고 하자, 보든은 앤지어에게 무릎을 꿇고 애걸한다. 이 장면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우진에게 제발 미도에게 사실을 말하지 말라며 비참하게 애걸하는 장면과 닮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 반전인데, 더 충격적인 반전이 나타난다. 보든은 근본 없는 빈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술을 익힌 사람이고, 앤지어는 뒤에서 나오는 것처럼 '콜트로 경'이 본래의 모습이다. 즉 귀족인 콜트로 경은 집안의 반대로 마술사가 될 수 없었지만, 자기 정체를 숨기고 마술사로 활동했다.
두 사람이 지닌 개인적 비밀도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두 사람의 갈등, 복수,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앤지어가 테슬라에게 순간 이동 기계를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귀족으로 충분한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가 귀족으로서 보든과의 경쟁에서 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기에, 더구나 보든의 실수 또는 고의로 인해 앤지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대결은 필연으로 이어진다.
 
복수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 이미 불행하다는 걸 전제한다. 복수를 하는 사람은 이미 불행한 사람이고, 당하는 사람 역시 이미 불행을 만든 사람이기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른다는 점에서, 비극의 결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마술은 도구를 활용해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행위지만, 마술사가 자신의 삶까지 속이면서 복수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긴 시간과 오랜 노력의 복수극은 인간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오래 속이면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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