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지골로
'월말 김어준' 가운데 패션을 다루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 호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이야기했다. 김어준이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대한 기억으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의 한 장면을 말했고, 그 영화를 찾아봤다. '티빙'에 그 영화가 있었고, 유튜브 영화에서는 1천 원을 지불하고 볼 수 있다.
폴 슈레이더 감독이 연출하고,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이 영화는 남성 매춘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줄리안 케이(리처드 기어)는 팜스프링스에서 활동하는 '고급 매춘부'다. '지골로'가 '창부'를 뜻하므로, 매우 노골적으로 영화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이때 '지골로'는 줄리안을 뜻하지만, 폴 슈레이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메리칸'에 있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가 무한으로 보장되는 나라로 알려졌고, 미국인들도 그렇게 믿는다. 이때 '자유'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는데, 줄리안이 '매춘부'로 일하는 자유와 줄리안을 돈으로 사는 부르주아의 자유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1980년에 개봉했다. 한국은 독재자가 총에 맞아 죽고, 곧바로 살해당한 독재자의 부하 군인이 다시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사건이 발생한 해다. 정치 후진국이자, 경제는 막 후진국을 벗어난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70년대 베트남 전쟁의 패배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쳐 1980년 공화당 후보인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서 사회 분위기는 경직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이때 미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시간 당 4달러가 안 되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했을 때, 30달러 정도를 일당으로 받을 수 있었는데, 한 달 내내 노동해야 1천 달러를 넘지 못했다. 반면 '고급 매춘부'인 줄리안은 화대로 1천 달러를 받아 포주와 반씩 나눈다. 즉, 1회 성매매로 500달러를 받는데, 이것도 상대에 따라, 조건에 따라 2천 달러, 3천 달러까지도 받을 수 있었으니 미국 부르주아들이 성매매에 쓰는 돈이 얼마나 큰돈인가를 알 수 있다.
줄리안은 팜스프링스 시내의 고급 빌라에 살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골로'를 자기 직업으로 여기는 '프로'이며,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는 6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그가 상대하는 부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
영화에서는 줄리안이 '지골로'인 상태만 보여줄 뿐, 그의 과거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에게 가족이 있는지,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가 어느 정도의 학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그의 아파트 내부 살림을 보면서 그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가진 살림은 많지 않지만 하나, 하나 모두 고급의 물건들이며, 상당한 안목을 갖고 고른 물건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옷장에 걸린 옷은 모두 값비싼 제품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상표가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이 영화에서 의상을 담당한 사람이 조르지오 아르마니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줄리안이 입는 옷은 모두 값비싼 옷으로,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옷이고, 줄리안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소품으로 작동한다.
폴 슈레이더 감독은 미국 부르주아의 은밀한 성생활을 통해 부르주아의 역겨운 삶을 비판한다. '지골로'를 선택하는 건 비공식 통로를 통해 은밀하게 포주와 연결하며, 포주는 성매수자의 요구 조건을 듣고, 그 조건에 맞는 '지골로'를 파견한다. 포주는 여러 명의 '지골로'를 관리하며, 무엇보다 부르주아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모든 연락은 포주를 통하도록 강제한다.
노동자가 한 달에 1천 달러도 벌지 못할 때, 부르주아는 한 번의 성매매에 1천 달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폴 슈레이더 감독은 이런 비교를 전혀 하지 않지만, 이 시기 영화를 본 관객은 이런 미국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므로, 이 영화가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인 건 분명하다. 미국이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이후, 어느 시기든 빈부의 격차는 엄청나게 극심했다. 20세기 초반, 미국 노동자 하루 임금이 1달러였을 때, 미국 자본가는 100달러 지폐에 담배를 말아 피웠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가 이름을 들어 아는 록펠러, 카네기, JP 모건 등은 벌어들이는 돈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들 자본가들이 처음 돈을 벌 때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다. 이런 내용은 '히로세 다카시'가 쓴 '제1권력'에 잘 나와 있다.
줄리안이 고급 창부로 꾸준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상대와 두 번 만나지 않는 것, 만나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매춘부지만, 나름의 원칙과 자존심을 갖고 살아가는 줄리안은 부르주아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고, 부르주아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비록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아 살아가는 처지지만, 자신의 일이 하나의 직업으로, 프로페셔널한 직업 윤리를 가진 직업인으로 자신을 생각한다.
그런 줄리안이 호텔 카페에서 우연히 한 여성(미셀)을 만나는데, 그녀는 상원의원의 아내였다. 줄리안은 미셀을 유혹하려고 접근했으나, 이내 직업이 아닌, 인간으로 미셀을 사랑하게 되고, 미셀 역시 줄리안을 매춘부가 아닌, 남성으로 사랑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깊어지면서 줄리안에게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다. 줄리안은 얼마 전에 자기가 서비스했던 여성이 살해되면서, 가장 중요한 용의자가 되고, 누명을 벗으려 혼자 조사를 하면서 진범이 누구인가를 알아내지만, 그 와중에 다시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줄리안은 중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히고, 미셀이 그를 도우려 나선다. 미셀은 상원의원 아내라는 상류층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줄리안을 도우려는데,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건지를 열어놓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 이후 같은 제목으로 2022년 후속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라는 점, 영화의 시간에서 줄리안이 15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하고 출감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해,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진짜 범인을 찾는다는 내용인데, 원작 영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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