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Deux jours, une nuit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친 것은 인종, 언어, 국적을 불문하고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평등하게 적용되는 진리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를 정규직, 중규직, 비정규직, 알바 등으로 등급을 매겨 노동자들끼리 경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작 뒤집어 엎어야 할 적은 다른 곳에 있는데, 한 우리에 갇힌 똑같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잡아먹으려고 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비웃고, 비정규직은 알바보다 그나마 처지가 낫다고 위안을 삼는, 노동자의 계급 분화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놀아나는 노예의 삶이다.
보너스와 동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는 노동자 동료들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동료 한 명만 없으면 1천 유로라는 두둑한 보너스가 생긴다.
반면, 함께 일했던 동료의 복직을 위해 보너스를 포기하는 동료도 나타난다. 동료 대신 보너스를 선택한 노동자도, 보너스를 포기하고 동료를 선택한 노동자도 모두 1천 유로라는 큰 돈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돈과 동료로 나뉘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잃는 것이 두려워 비정규직 노동자 동료들을 외면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그 알량한 복지와 조금 높은 임금과 보너스와 안정된 직장을 위해 똑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집단으로 해고당하거나 복직투쟁을 하거나, 임금인상이나 처우를 개선하라는 단체행동을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들을 탄압한다.
노동자의 적은 자본이지만, 현실에서 노동자의 적은 바로 같은 노동자다. 노동자가 자각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만이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외면한다면, 자본주의는 쉽게 끝장나지 않을 것이고, 노동자가 노예로, 기계의 부속품으로, 상품의 도구로 쓰여지다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죽어가는 세월은 더 길어질 뿐이다. 별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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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을 앞둔 산드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 덕분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되고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기로 한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말이 어려운 산드라와 각자의 사정이 있는 동료들, 마음을 바꿔 그녀를 지지해주는 동료도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지는데…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긴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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