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aul fia 사울의 아들
이 영화는 그동안 만들어 배포했던 수많은 유대인 학살 관련 영화 가운데 하나다. 다만 그 형식이 기존의 영화와는 조금 다를 뿐이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지겹다거나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유대인의 학살을 다룬 영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당한 역사를 끊임없이 재생산 하고, 세계 여러나라에 보급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과 자본을 갖춘 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당한 학살의 역사는 인류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중대한 사건인 것도 맞다.
하지만, 유대인이 현대사에서 당한 역사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렇게 끊임없이 변주되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의 뒷면에는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유대인은 이미 50년대부터 헐리우드와 금융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유대인의 탄압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며, 나는 그들이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당한 수난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현대 들어 유대인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배경으로 두고 자신들이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것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
하지만 극우 시오니스트 집단인 이스라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동포들과 그들의 부와 권력을 통해 끊임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이제 유대인 영화가 불편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며, 게다가 피해자였을 때 당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다른 민족을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이런 류의 영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이 당한 탄압과 억압의 역사까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되, 지금 그들이 보여주는 피해자 코스프레는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비교하자면, 유대인의 피해의식과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놓고 봤을 때, 유대인을 동정하는 세계적인 여론은 여전히 다수지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여론은 기괴하게도 비난하는 자들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태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기인한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자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즉, 자기의 욕망을 가진 자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도 없고, 머리 속에 든 것도 없는 인간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공격하는 자들은 매우 악의적이고 잔인한 자들이거나 매우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들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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