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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by 똥이아빠 2017.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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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자본주의 체제와 관료조직이 시민을 어떻게 괴롭히고 죽이는가를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예술이 사회를 향해 어떻게 발언해야 하는가를 적어도 유럽의 대중들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영국 서민의 현실은 더 가난한 나라의 서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영국의 복지제도는 '식료품 배급대상' 단위까지 고려하면서 복지의 그물을 촘촘하게 짜 놓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고, 긍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복지 후진국인 많은 나라들에 비해 영국의 서민들은 조금 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어보면, 빈부 격차의 심각한 상황과 빈민의 삶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이 있다. 즉,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이 뚜렷하고, 가난한 자들의 삶은 최소한의 음식으로만 연명하도록 만드는 사회 제도가 인간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것이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인간의 존엄성은 돈이나 권력과 상관 없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권이며, 어느 체제가 되었든 한 사람의 인간이 존엄성을 상실하는 사회라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다니엘 블레이크와 친구가 되는 케이티는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싱글맘이다. 그는 두 명의 남자를 만나 각각 아이를 하나씩 낳았지만 지금은 남자들과 헤어져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생활하다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북부의 뉴 캐슬로 이주했는데,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성매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된 케이티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두 아이에게 새 운동화도 사 주고, 과일도 사 먹이고 싶어하는 생활력 강한 젊은 여성이자 엄마다. 그런 케이티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고, 케이티가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진심어린 마음이 케이티를 움직인다. 케이티는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방송통신학교를 다니고 싶고, 공부를 더 해서 조금 나은 직업을 얻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생각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 경력의 목수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동하며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이었다. 그는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한 서민이다. 그런 사람이 심장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온갖 서류와 관료적인 복지업무로 정직한 시민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질 것 같고, 한숨이 나오는 것은 나 역시 다니엘 블레이크의 처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8명의 자산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 36억명의 자산을 합한 것과 같다는 통계가 나왔다. 8명 대 36억명. 과연 이런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까? 있다면 그런 사람은 8명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거나 소시오패스일 것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어 실업자가 된 노동자와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돈도 권력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가난한 서민들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전기, 가스요금을 낼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집에 있는 가구를 모두 내다 팔아도 200파운드밖에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공무원들에게 화풀이도 하지 않는다. 다니엘이나 케이티는 노동계급,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갖 더럽고 파렴치하며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누구인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잘 먹고 살 산다. 사회는 구조적으로 악당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이고, 자본가를 비롯해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사회임을 켄 로치 감독은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다수의 노동계급은 서로를 돕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 서민들이 서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어려움도 조금씩 나누고, 힘든 상황을 서로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과 손을 마주 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모품으로 쓰이고 폐기처분되는 부속품이나 소모품이 아닌, 따뜻한 피를 가지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으며, 함께 웃고, 울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착취와 경쟁과 소외를 극복하고, 다수의 서민들이 가난하지만 돈 걱정 없이, 하루 두 끼, 세 끼의 식사를 거르지 않고,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 때문에 숨죽여 울지 않고, 욕실의 타일이 떨어져도 슬퍼하지 않고, 바닥이 떨어진 운동화 대신 새 운동화를 사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고, 하루 6시간, 일주일에 4일의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며,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족과 친구, 자신을 위해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켄 로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내용이다.

자본주의는 착취와 경쟁, 소외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한 것이며, 역사 이래 가장 잔혹한 체제임을 켄 로치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꾸준히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교육용 교재로 쓰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영국의 현실보다 더 나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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