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리테크니크-미개봉작

왜 모르고 있었을까. 너무 오래된 사건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지금 한창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감독 드니 빌뇌브의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모두 봤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깝다. 이 영화를 한국의 남성들 특히 남자 일베충들이 많이 보기를 권한다. 그들, 일베충들의 모습이 바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과 같기 때문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1989년에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14명의 여성이 사망했고, 14명이 부상당했는데, 이 학살의 범인은 같은 학교의 남학생이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혐오범죄는 오히려 현대로 올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인종차별, 종교차별, 성차별 등 혐오범죄를 불러 일으키는 무수한 요소들을 찾아내고, 소수자,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야만시대의 미개인들이 벌이던 사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세계 어느나라든 그런 미개한 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살이 당연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해자의 심리가 궁금했다. 그는 여성들이 모두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때문에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독백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베충들의 쓰레기같은 말과 똑같은 발상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나는 세계 어디에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성혐오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뇌는 분명 정상인과 다른,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차별하기를 좋아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려는 특성은 나라와 인종에 상관없이 소수의 남성들에게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를 특히 증오하는 것은, 그가 대학생활을 했고,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얄팍한 수단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여성들이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미 여성에 대해서 살의를 가질 정도로 증오심을 키우고 있고, 자신이 살인을 하면 안된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지만, 살인이 범죄라는 경고보다 더 강렬한 살인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정신병자가 보이는 반응이다. 즉,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벗어났으며, 그가 겉으로는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의 뇌가-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심각하게 파손되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살인마이자 일베충인 주인공 마크 레피네는 살인의 동기를 페미니스트들이 세상을 망친다는 것에서 찾았지만, 뚜렷하고 확실한 동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대학생활을 어렵게 하면서 많은 똑똑한 여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평균에서 앞서나간다. 여학생들은 똑똑할 뿐 아니라 협조적이다. 강의 노트를 빌려달라는 남학생의 부탁에도 선선히 응하고, 공부도 적극적으로 한다. 공대에서 남녀의 비율이 비슷한 것을 보면,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병신같은 남성들은, 실패나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여성, 어린이, 노인, 소수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책임이라고 뒤집어 씌운다. 자신이 어리석고 멍청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일베충들이 딱 그런 쓰레기들이다. 자신들이 무능하고, 멍청하고, 찌질하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고,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자신들보다 약하게 보이는 소수자들을 향해 온갖 혐오스러운 짓을 하는 것이다. 히틀러를 추종하는 네오 나치들이 그렇고, 유럽의 극우들이 그렇고, 한국의 일베충과 수구 꼴통들이 그렇다. 그들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연대를 끊고, 우정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공감대를 박살내고, 증오와 폭력을 심는다.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는 모든 증오 범죄는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실패한 자들이 일으키고 있다. 증오 범죄를 막는 길은,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높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폭력으로 폭력을 다스리는 것은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볼때는 바람직 하지 않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학살 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 엔지니어가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며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학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그것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하는 깊은 고통임을 스스로도 안식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남성의 한 사람으로 여성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영화에서도 범인은 남학생들을 모두 내보내고 여학생만 남으라고 하는데, 누구 하나 그 범인을 제압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남자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졸렬한 것들인지 역겹기 짝이 없었다.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말로는 '레이디 훠스트'를 외치는 서양의 남성들도, 자기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면서도, 여학생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보면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해자인 범인이나, 그것을 외면하는 남학생들이나 본질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 비겁한 족속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정착생활 이후,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남성들은 여성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인류의 야만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가부장제, 일부다처제, 남성우월주의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의 다른 말이다. 여성은 그런 폭력을 수 십만년 동안 견디며 살아왔다.
문명세계라는 오늘날에도, 가부장제는 여전하고, 남성우월주의도 변하지 않았다. 여성은 여전히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늘 고통을 당하는 쪽에 서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러한 억압과 고통을 견디면서도 늘 세상을 긍정으로 이끌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으며, 누구보다 앞서 문명 세계를 건설해 왔다. 그것은 사랑과 연대와 우정과 깊은 공감이 그들, 여성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성들은 여전히 미개의 상태로 남아 있지만, 여성은 이미 남성보다 훨씬 앞선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폭력으로 막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희생당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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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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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07 14:5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