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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by 똥이아빠 201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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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을 만든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작품. 평범한 일상을 스릴러로 만드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감독이다. 우리의 삶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사소한 일, 사소한 감정들이 쌓이면서 긴장감이 팽팽하게 발생하고, 갈등이 증폭하고, 관계가 깨지거나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이해하게 된다.
4년 전,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 때문에 별거를 하게 되는 아마드는 이란에서 살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파리로 돌아온다. 그 사이 아내 마리는 동네 세탁소 사장인 사미르와 동거를 하고 있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아마드의 입장에서 보면 마리는 이미 두번 결혼한 여자였고, 그 사이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의 과거는 드러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사건이 등장인물 전체를 괴롭히고 발목을 잡는다. 그것은 사미르와 마리가 동거를 하기 전,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을 시도했고 지금도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다. 마리의 딸 루시는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을 한 이유가 엄마인 마리와 사미르의 불륜 때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고, 그래서 엄마를 미워한다.
이혼수속을 위해 잠시 집에 들렀지만 아마드는 복잡한 상황과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잘 해결하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친딸은 아니지만 루시를 친딸만큼 아끼는 아마드는 어떻게든 루시와 엄마 마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라고, 마리가 동거하는 남자 사미르와도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서 특별히 나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대화를 나눈다.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하게 되는 동기는 엉뚱하게도 사미르가 운영하는 세탁소의 여직원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걸 떠나서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보다 좀 더 깊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주요인물 세 사람은 저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감정의 앙금을 갖고 있다.
마리는 아마드와 별거하고 있지만 4년만에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는 듯한 행동을 하면서 동거남 사미르의 오해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아마드의 태도는 초지일관 분명하고, 이들의 관계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동거남 사미르 역시 마리와 동거하면서 마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것도 알고 있지만, 병원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마리는 아마드와 합의이혼을 하고나서도 아마드와 사미르 사이에서 갈등한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마리는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 이미 세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했고, 네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서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해 보인다. 그가 임신한 채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상징적인 행동이다. 즉 마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중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가 몸은 성인이지만 심리나 행동은 발달하지 못한 어린이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큰 사건을 일어나지 않지만-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 가장 큰 사건이다-등장인물 모두가 영화에서 거의 웃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웃음이 없는 일상, 가족, 부부, 아이들이라면 그 가족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마리는 잠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가 아마드와 별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이미 세탁소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 것은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딸 루시는 그런 엄마의 태도를 몹시 미워하는데, 엄마와 세탁소 남자 사미르가 동거를 해서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믿을 정도다. 
즉, 이들 관계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마리의 행동 때문이고, 그것은 오로지 마리의 이기적인 선택에 의해서다. 그가 아마드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면 사미르와 동거를 해서는 안 되었다. 사미르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합의이혼을 하러 온 아마드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게아니라 호텔로 보냈어야 했다. 이런 작은 사건들이 결국 두 남자 모두에게 불신과 의심을 받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마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관계는 결국 파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끝까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우울하다. 깔끔하고 깨끗한 결말을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있다. 어느 한 순간, 삶이 찬란하고 행복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행복도, 불행도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발생하고 드러나는 것임을,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감독은 미세한 감정들의 조각들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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