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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바바둑

by 똥이아빠 2017.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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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바둑

슬프고 마음 아픈 공포영화. 이 영화는 무섭다기 보다는 슬프다. 분명 공포영화라고 알려졌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와 아들이 겪는 일들이 마음 아팠다. 엄마인 아멜리아는 7년 전, 출산을 하려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아들 새뮤얼의 생일과 남편의 기일이 같은 날이다.
영화의 시작은 아들 새뮤얼의 과잉행동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새뮤얼이 보여주는 행동은 전형적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볼 수 있다. 요양보호원으로 일하며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아멜리아는 항상 피곤하고 쉴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끊임없이 사소한 일을 저지르고, 위험한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늘 긴장된 상태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7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멜리아는 몸도 많이 지쳤고, 정신은 더 피폐해졌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더욱 외롭고 힘겹다. 새뮤얼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늘 엄마를 채근하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엄마를 피곤하게 만든다. 새뮤얼의 행동 때문에 가까운 가족과도 멀어지고, 주변에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아멜리아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와 피로에 시달린다.
그러다 새뮤얼이 읽어달라는 동화책 ‘바바둑’이 방아쇠 역할을 한다. 집안에 바바둑 악령이 나타나고, 실제로 두 사람을 위협한다. 하지만 그것은 악령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노이로제에 걸린 아멜리아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바둑이 아멜리아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아멜리아가 미쳐서 아들 새뮤얼을 죽일 거라는 암시가 나오고 아멜리아는 서서히 미쳐가며 새뮤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삼키고 미쳐가는 과정과 아들 새뮤얼을 죽이려는 장면 등은 ‘샤이닝’이나 ‘미저리’와 같은 공포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샤이닝’에서는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영화처럼 엄마가 아들을 살해하는 것은 ‘샤이닝’과는 이유가 다르다. 아버지가 가족을 살해하는 것은 사회적 이유-잭 토랜스가 알콜중독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지만 사실은 그가 작가로서 실패했기 때문에 얻은 절망이 원인이다-가 강한 반면, 엄마의 아들 살해는 개인적인 문제가 강하다. 즉 아멜리아의 경우, 남편의 죽음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보통의 경우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산후우울증을 겪게 되는데, 이 우울증이 심하면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있다. 동물도 새끼를 낳고 나서 어떤 이유로 어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를 물어죽이거나 잡아먹는 일이 발생한다.
산후우울증은 스트레스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임신 과정과 출산 전후에 산모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발생 확률이 달라진다. 또한 산모의 우울증은 태아와 갓난아이의 정신과 정서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즉 아멜리아의 경우 출산하는 날 교통사고로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이 컸고, 출산 과정에서 아이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쳤으며 새뮤얼의 정서장애가 충분히 설명되는 것이다.
바바둑의 등장 즉 아멜리아의 정서적, 정신적 불안이 커지고 환영과 환청을 보고 듣게 되고, 공포가 극대화하면서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오히려 새뮤얼의 행동은 차츰 보통 아이처럼 안정되어 간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그동안 불안정하고 과잉행동을 보였던 것은-물론 새뮤얼과 있을 때만-새뮤얼이 아니라 엄마인 아멜리아였다는 것을 말하는 증거가 된다. 새뮤얼의 사소한 행동이 비정상처럼 보이고, 과잉으로 보였던 것은 실제로는 아멜리아의 시각으로 왜곡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멜리아의 정신이 극도로 혼란스럽고 피폐한 상태가 되어 바바둑에게 지배당할 때, 아들 새뮤얼에게 내뱉은 말이 아멜리아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남편이 아니라 아들인 네가 죽었기를 바랐다고.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을 얻은 것보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더 컸던 것이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마음 깊이 감춰두고 있었던 진심을 아들에게 던지는 순간,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멜리아는 후회한다.
아들을 죽이고 싶었던 것은 아들이 진짜 미워서가 아니라,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한편으로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도 풀어낼 수 없었기에 그 감정을 아들에게 전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강한 모성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증오와 공포의 감정을 다스린다. 바바둑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이겨낸 아멜리아는 그 감정을 지하실에 가둬두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아멜리아는 여전히 정신적인 문제로 고생하지만-남편의 죽음이 가져온 트라우마는 7년이 지났어도 치유되지 않았다-적어도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제어할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아멜리아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자 새뮤얼의 과잉행동도 사라지고, 오히려 엄마를 더 잘 챙기고 마음을 쓰는 의젓한 아들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없이 엄마와 아들만 살아가는 홀엄마 가정이 보여주는 고독과 힘겨운 일상을 공포로 묘사한 감독의 능력도 훌륭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공포영화가 아니라 홀엄마 가족의 힘겨운 삶을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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