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일즈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만든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작품. 역시 문제작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보편성이 있지만 그 안에서 보다 이슬람 사회의 특징이 도드라진다. 이 영화에서 발생한 사건이 우리나라나 보통의 사회에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고, 범죄를 저지른 남자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이 수순이다. 게다가 충분한 증거가 있고,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쉽다. 그럼에도 주인공 에마드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에마드와 아내 라나는 살던 아파트가 흔들리고 균열이 생기면서 갑작스럽게 가까운 집을 구해 이사한다. 그 집은 여성 혼자 살던 집인데, 살림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여성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입주를 한다. 에마드와 라나는 연극배우로도 활동하는데, 두 사람이 연기하는 연극이 '세일즈맨'이다. '세일즈맨'은 비극을 다루고 있다. 아서 밀러의 희곡이고, 지금도 공연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연극이며, 현대 비극 작품의 걸작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에서 연극이 영화의 흐름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연기와 '세일즈맨'이라는 연극은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에마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고 인격이 훌륭한 선생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 라나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두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살던 아파트가 균열이 생겨 이사를 하고, 이사한 집에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삶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괴한의 침입으로 라나가 부상을 당하고, 이웃들이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살던 여성은 매춘부로 드러난다. 라나를 습격한 사람은 그 매춘부의 단골이었던 남성이었고, 라나가 매춘부가 아님을 확인하고도 폭력을 휘둘렀다.
사고가 난 이후, 에마드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히 라나를 해친 범인을 잡는 것이기 보다는 에마드 자신의 평판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경찰에 알리지 않은 것도, 범인을 혼자 찾아다니는 것도 정의를 구현하려는 의지보다는 자신의 평판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란이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가부장 사회이며 남성우월 사회다. 여성은 독립된 인격이기 보다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폄하되고 있으며, 여성의 권리와 인격의 존중은 매우 후진적이다.
라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폭행하고 도주한 범인이 남성이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지만, 그 범죄자를 쫓는 남편 에마드 역시 라나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해하기 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범죄자를 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라나가 바라는 바와 다르며, 에마드의 행동은 라나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인식된다.
영화에서 여성들의 처지는 모두 '매춘부'에 대입된다. 에마드와 라나가 이사한 집에 살았던 여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가 '매춘부'라는 암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그 매춘 여성을 찾아 온 남성에게 라나는 폭행을 당한다. 즉, 라나 역시 그 남성에게는 '매춘부'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마드와 라나가 연기하는 연극 '세일즈맨'에서도 동료 여성이 '매춘부' 역할을 하면서 동료 배우에게 무시당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즉, 이슬람 사회(뿐만 아니라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은 '잠재적 매춘부'로 인식되고 있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이슬람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영화는 이슬람 사회가 아닌, 대부분의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가부장사회에서 남성의 그늘에 갇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에마드를 전면에 내세워 라나의 폭행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라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가부장 사회는 그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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