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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by 똥이아빠 201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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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영화 시작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이 인트로가 영화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주인공 수잔의 삶과 관련이 있다. 수잔은 미술관을 운영하는 관장이자 큐레이터로, 자신이 기획한 현대미술 전시회를 발표하는 장면이 인트로로 사용되었다. '현대미술'과 수잔의 삶은 그가 고백하는 것처럼 이제 '파탄의 위기'에 몰려 있다.
현대미술은 대개 내용은 없고, 허위와 가식으로 꾸며진 쓰레기라는데 수잔 스스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지난 20년 세월의 삶도 실패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인트로는 수잔의 삶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수잔은 성공한 부르주아다. 그의 부모 역시 텍사스에서 상류층으로 살고 있는 부르주아고, 수잔도 그렇다. 그는 잘 생기고 똑똑한 남편과 함께 사업도 성공한 젊은 부르주아지만 무엇때문인지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수잔의 경우,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고, 사랑이 식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수잔에게 어느 날, 소포가 도착한다. 20년 전, 첫사랑이었던 전 남편 에드워드가 쓴 소설이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가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병신같다. 소설가가 나오는 영화는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는데, 내가 소설을 쓰고 있고, 소설로 별로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는 점에서 이심전심이기 때문이리라.
수잔과 에드워드는 사랑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수잔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에드워드는 예술가로서의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헤어졌고, 수잔은 에드워드와 살면서 임신을 했지만 중절수술을 한다. 수잔이 에드워드를 버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수잔의 삶과 소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스릴러의 형태를 띈다. 19년만에 한 편의 소설로 나타난 전 남편 에드워드. 그것도 아직 출판 전인 최종 원고본을 보내 온 것을 보면 이 소설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출판사나 남편 모두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 역시 그만큼 충격적이다.
영화에서 소설 속 인물인 토니의 모습은 곧바로 에드워드와 동일한 인물로 치환된다. 그것은 에드워드가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수잔의 상상이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토니의 가족(아내와 딸)은 깊은 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괴한을 만나게 되고, 아내와 딸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범인들을 잡기 위해 경찰과 동행하는 토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지만, 자신도 죽는다.

수잔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놀라는 것은 그가 19년 전에 읽었던 에드워드의 소설보다 작품의 수준이 좋아졌다는 점과 소설 속 인물인 토니가 에드워드였다면, 그가 실제로 이런 일을 겪었던 것은 아닐까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중간에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답을 받는다. 화요일, 그 레스토랑에서.
뉴욕으로 출장을 간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지금 자신의 삶이 피폐하고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전 남편 에드워드의 출현, 그것도 이제 성공을 눈 앞에 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는 에드워드에게 죄책감과 함께 잊었던 애정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복수는 성공하고, 수잔은 약속한 레스토랑에 나가지만 에드워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이 에드워드의 복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19년 전, 수잔이 에드워드를 버린 것은 분명 수잔의 잘못이다. 수잔은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다시 만났으니까. 그렇다면 19년의 세월이 흘러서 자신의 작품을 보내 수잔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에드워드는 어떨까. 수잔이 지금의 삶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 소설이 던지는 의미는 평범했을 것이다. 수잔은 축하를 했을 것이고,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에드워드의 행동-소설을 수잔에게 보낸 행동-을 두고 찌질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겠다. 영화로만 본다면,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냈고, 그 작품의 완성도를 수잔이 인정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심한 복수였든, 자신의 삶에서 수잔을 완전히 정리하려는 의도였든, 에드워드는 나타나지 않고, 수잔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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