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 작품. 평일 오후의 극장은 지극히 한산했다.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극장 안에는 몇 명만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대런 감독의 영화가 대개 독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독하다'는 뜻은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인물들의 내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대런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주는 특징이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영화는 형식에서는 연극이고 내용으로는 신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집은 무대이자 상징이다. 건물 외부가 허허 벌판이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 없는 것과 인공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건물은 불타고 다시 복구되기를 반복한다. 얼마나 반복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건물에는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살고 있고 이들은 어쩌면 부부일 수도 있고, 부녀 사이일 수도 있다. 남자는 시를 쓰고 집안 일은 모두 여자가 한다. 철저한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지켜지는 공간이다. 왜 하필 '시'였을까. 남자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시'를 창작한다는 것이 곧 '창조'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고, '시'는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언어의 정수이자 문명과 예술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못내 감격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고 고요한 그들의 세계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다가, 그의 아내가, 그의 아들들이 찾아오고 그들은 재산 상속 문제로 다투다 형이 동생을 죽이고, 형은 사라진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것은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고 알려진 구약의 바로 그 카인과 아벨을 상징한다.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친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처음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서부터 그들은 무례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아내는 그런 낯선 사람들이 불편하고 마땅치 않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시를 좋아하고 공감하는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남자의 시가 발표되자 시는 곧 다 팔리고, 출판사 직원들과 남자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하더니 경찰이 들이닥치고, 군대가 몰려오고 전쟁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은 인류의 역사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싸움, 투쟁, 대립, 학살,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짧은 기간의 평화와 공존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적은 부분일 뿐이고, 인간은 늘 대립과 투쟁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 전쟁의 와중에 아내는 아이를 출산한다.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잠도 안 자면서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잠깐 잠이 든 사이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사람들에게 건낸다. 그들은 그 아이를 찬양하고, 받들지만 결국 아이를 잡아 먹고 만다. 여기서 아이는 예수다. 예수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죽게 되는데, 아기 즉 예수를 죽이는 것은 다름 아닌 죄 많은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를 먹어 치운 사악한 인간들에게 분노한 여자는 기름통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산화한다. 인류가 저지른 죄악을 불로 정화하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특징이자 모든 종교와 신앙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불로써 세계를 태워버리자 남자는 여자의 심장을 꺼내 다시 세상을 복원한다. 즉, 세상을 창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남자의 전지전능이 아니라, 여자의 심장이며, 모성이자 자연이라는 것을 신화는 상징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신화를 인격화하고 시각화한 것이다. 인간의 창조에서 멸망까지, 저주에서 구원까지, 절망에서 희망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인간의 타락과 전쟁이고, 그것을 용서할 수 없어 세상을 불태우는 것이라면, 그런 신을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의 생각과 의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세계는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단 한 번도 예외없이 불타는 세계였다는 점에서 인간세상은 지금까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해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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