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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중국영화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by 똥이아빠 2021.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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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요 며칠 지아장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몇 편을 봤다. '24시티', '동', '무용'이 그 작품인데, 여기서 '24시티'와 '동'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요소를 거의 알 수 없게 결합한 작품이다. 형식은 다큐멘터리가 맞고, 실제 다큐멘터리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 사이에 전문 배우를 넣어, 특정한 인물을 연기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을 두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는 연출자의 자의적 의도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편집을 통해 연출자는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다.

편집 뿐 아니라, 카메라가 향하는 곳, 집중하는 대상, 카메라 시선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의 길이 등 모든 것이 연출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관객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고, 관객을 향해 발언하는 것이다. 관객은 감독이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각과 음악, 음향, 연출을 통해 감독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알아차린다.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는 느리다. 화면은 천천히 움직이고, 특정한 의미를 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화면에 담되 그 대상을 큰 그림으로 보면 사회의 특정한 계층, 계급이 보인다. '24시티'에서 여러 명의 과거 노동자들을 인터뷰한다. 이들은 '팩토리420'에서 일한 노동자들로, 1958년 제1차 5개년 계획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군수공장으로 문을 연 거대한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이유는, 이 오래된 공장 '팩토리420'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장이 사라지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을 그 공장에서 일하며 역사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자기의 삶을 말한다. 그 삶은 수억 명의 중국인민이 살아온 삶과 비교했을 때, 전혀 특별하지 않다. 지아장커 감독은 특별한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특별한 삶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노동자 가운데 무작위로 선택해 그들의 말을 듣는다. 노동자의 말을 듣는 건, 이 거대한 공장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역시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공장이 사라지면, 역사의 흔적도 사라진다. 중국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거의 낡은 공장이 사라지고, 첨단 공장이 들어서는가 하면,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민의 욕구도 더 다양하고 높아지면서 낡은 주택이 사라지고 첨단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변화는 한 시대를 살아온 인민들, 특히 나이 든 인민들에게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리둥절한 상황을 만든다. 이런 변화는 우리도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60대 이상이라면 1950년대 1인당 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었을 때의 한국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1인당 소득이 3만불을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고, 불과 50-60년 사이 한국의 놀라운 변화는 단지 물질의 풍요 뿐아니라 삶의 형태마져 완전히 다르게 탈바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4시티'는 그런 중국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더 빛나고, 더 화려하고, 더 첨단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과거의 배경으로 서 있어서, 아주 멀리서 실루엣으로만 보일 뿐이다. 즉, 지금 중국 인민의 삶에서 첨단 문명은 저 멀리보이는 신기루처럼 실루엣일 뿐이라는 것이 지아장커 감독의 해석이다. 실제 인터뷰를 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40년,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은 약해지고 있다. 중국이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을 때, 핍박당하던 중국인민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 공산당과 인민이 함께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싸웠다. 

그렇게 중국인민은 노동자, 농민이 대다수로, 농업과 산업화를 일군 주체였지만, 중국공산당이 '흑묘백묘'와 시장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고생하며 일군 중국의 부를 극히 일부만이 독점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박탈감을 갖게 되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감원 정책으로 해고당하면서도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우리의 상식으로, 공산주의 사회는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직접 개입하고,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중국공산당은 노동자의 해고를 결정하면서 그들의 삶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해고당한 노동자는 거리에서 꽃을 팔기도 하고, 다른 공장에도 들어가는 등 스스로 살아가려 애쓰지만, 이런 경험들은 '중국공산당'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작품 '동'에서는 중국 현대화가 리우 샤오둥이 현장을 찾아 인물화를 그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때, 작가 리우와 지아장커 감독이 찾는 현장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이다. 리우는 샨샤댐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공사현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는 수 많은 노동자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맨몸을 드러내고 망치질을 하고 있다. 함마로 건물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같으면, 굴삭기나 다른 철거용 전용 장비로 건물을 부수겠지만,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몸으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샨샤댐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댐으로 알려졌고, 최근에는 대홍수로 샨샤댐이 붕괴될 거라는 보도도 있었던 바로 그 댐이다. 

샨샤댐을 만들기 위해 근처의 수많은 마을과 도시가 사라졌고, 건물을 부숴 골재로 쓰거나 다른 곳으로 반출했다. 그 과정에 노동자들의 힘겨운 노동이 있었고, 그 과정의 극히 일부를 담은 것이다. 화가 리우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노동자들은 상의를 벗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그 그림에 담긴 노동자의 모습은 그들의 삶처럼 질박하다.

영화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이 작품에도 전문배우가 등장하고, 실제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로 사망한다. 인명 사고였으니 큰 사고였지만, 카메라는 담담하다. 이불에 덮여 들것에 실려나오는 모습을 모고 누군가 죽었다고 추측할 뿐이며, 리우가 긴 시간, 기차와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 죽은 노동자의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남편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들은 아내와 딸 역시 많이 괴로워보이지 않는다. 돈을 벌러 나간 남편이 사고로 죽었지만, 어쩌면 그 죽음은 예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산샤댐 공사는 위험했다는 뜻이고, 가족들도 위험한 곳에서 일하던 그 노동자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그렇다고 해서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무덤덤한 표정,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감정으로 슬퍼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리우는 샨샤댐 현장을 떠나 태국으로 간다. 태국에서는 여러 명의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그들의 모습은 중국 노동자들처럼 화폭에 담긴다. 여성들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을 뿐, 그들이 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노동자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여성들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 육체노동자들과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중국의 노동자나 태국의 일하는 여성이나 그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체제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그들은 권력의 지배를 받으며, 체제의 구조 속에서 억눌려 살아가는 '인민'일 뿐이다. 

 

'무용'은 춤을 추는 '무용'이 아니라, '쓸모없음'의 무용이며, 작품에 등장하는 의류디자이너 마케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마케는 대량생산이 아닌, 수제품으로만 만든 옷을 디자인해 세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따라서 그의 옷은 수많은 의류, 섬유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든 옷과 시장에 대량생산되는 옷을 비교하면서, 중국의 의류산업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살펴보고 있다.

중국에도 세계 패션 브랜드가 모두 진출했고, 중국 상류층이 그런 브랜드를 소비한다. 중국의 엄청난 빈부격차로 시장은 물과 기름처럼 양분되어 있고, 중국 부르주아들은 값비싼 소비재를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반면, 절대 다수의 중국인민은 새 옷을 살 경제적 여력이 없어 동네 옷수선 가게에서 옷을 수선해 입어야 한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지만, 정작 중국 인민은 그 물건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없거나 극히 일부의 부자를 제외하면 엄두를 낼 수 없다는 점에서 부의 양극화는 사회문제가 된다. 

중국의 의류산업에서 의류 디자인, 브랜드, 디자이너의 존재는 최근에 탄생되었고, 이들 소수의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해 중국 의류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반면 중국의 산샤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는 오래된 낡은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수선하는 가게가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옷을 수선해주고 일원, 이원씩 받는다. 

한때 재단사였던 남성은 의류 산업이 붕괴되면서 탄광에서 노동자로 일한다. 이들에게 의복은 멋을 내는 용도가 아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들은 낡은 옷을 수선해 입고, 새 옷을 살 여력도 없다. 의류 산업을 둘러싼 거대한 두 개의 극과 극, 세계 무대에 진출한 중국 디자이너의 성공과 시골 마을의 옷수선 가게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현재 놓여 있는 산업의 불균형과 노동자들의 삶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지아장커의 작품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 해도 나레이션도 없고, 화면은 매우 느리며,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중국의 현재, 중국인민의 현재의 삶, 중국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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