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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홍까오량 가족 - 모옌

by 똥이아빠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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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 - 모옌

 

읽는 내내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도 그렇고, 그 내용을 표현한 문장도 읽는 이의 심장과 영혼을 뜯어내는 듯한 충격과 격렬함 때문에,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했고, 한 번에 오래 읽기도 어려웠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 대륙의 현대사를 자신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 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일반화, 보편화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고통과 끈질긴 생명력에 관한 기록이며, 작게는 자신의 개인사적 사건이자 중국 현대사와 맞물린 거대한 물줄기를 관통하는 중국민중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모두 다섯 편의 중편을 묶은 것으로, 중편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로도 충분히 읽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붉은 수수밭'은 이 책의 첫번째 중편 '붉은 수수'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붉은 수수'도 매우 강렬한 피빛이지만, 뒤에 나오는 '고량주', '개들의 길', '수수장례식', '이상한 죽음'은 더욱 강렬하고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빛이다.

이 작품을 읽고 머리에 남는 것은 '끈적끈적한 피'의 이미지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피이며, 중국 대륙을 적시는 고통받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의 피이며, 인간이 흘린 피이기도 하고 중국 역사가 흘린 '고통의 시간'이라는 피이기도 하다.

그 핏물을 먹고 자란 수수는 붉은 빛으로, 저녁 놀에 더욱 새빨갛게 피빛으로 빛난다. 광활한 붉은 수수밭은 마치 뜨거운 피가 일렁거리듯, 강렬한 색채로 번쩍거리며, 그 속에 살아가는 중국 민중은 압제와 어리석음 속에서 잔혹하게 죽어간다.

같은 시기-중국 근현대사의 초기인 198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루쉰은 중국 민중을 '아Q'에 빗대었다. '인간의 고기를 먹는 미치광이'들로도 표현했다. 중국 민중은 어리석고, 멍청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의지도, 지혜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강렬하게 비판했다.

반면, 모옌은 루쉰의 '아Q'적 인간관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빛으로 물든 중국 민중의 삶을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침략자 일본에 대항하는 중국 민중은, 당시 정부나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그들 스스로 일본군과 싸운다.

우리도 일본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경험이 있지만, 중국 민중이 당한 고통과 아픔과 슬픔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그것을 모옌은 매우 강렬하고 직설적이며,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은 결코 일본의 악행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경고가 이 작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에서 이 정도의 강렬함과 잔혹함을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

모옌은 자기의 조국, 중국의 민중이 당한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장면은 충격과 공포이며, 잔혹함과 슬픔이고, 짙은 피비린내와 격렬한 분노를 동반하고 있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최근의 현실이었음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모옌의 작품은 한국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 굵은 묘사와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그는 중국의 신화, 역사, 민간신앙을 총동원해서 중국 인민이 처한 상황을 직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 모옌과 같은 작가가 없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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