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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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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시리즈를 다 보고, 존 윅 시리즈까지 다 본, 오늘 개봉한 '존 윅 4'까지 본 관객은 기시감을 갖는 게 자연스럽다. 매트릭스에서 본 모피어스가 존 윅 시리즈에서도(2편부터 출연하지만) '바워리 킹'으로 출연하면서, 존 윅 시리즈가 매트릭스를 오마주한 부분이 많이 보이도록 감독이 의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존 윅 4'에서는 '매트릭스'의 오마주가 분명히 드러난다.
거대한 클럽에서 격투가 벌어질 때, 클럽의 중정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소나기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매트릭스에서 에이전트 스미스와 대결할 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과 무한으로 복제되는 스미스의 복제본이 떠오른다. 또한 이때 들리는 음악은 매트릭스에서 흐르던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존 윅' 시리즈가 '매트릭스'처럼 가상의 세계, 가상 현실에서 벌어지는 판타지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매트릭스는 처음부터 미래의 어느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시공간과 실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매트릭스'를 서사의 배경으로 구성하고 있지만, '존 윅'은 현재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존 윅'의 세계는 '존 윅'과 존 윅을 둘러싼 암살자들의 세계만 존재한다. 실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배경이나 소품으로만 작동한다. '존 윅'에서 경찰이 등장하지 않고, 평범한 시민들이 다치지 않는 걸 보면 '존 윅'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 별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윅 1'에서 비고가 보낸 암살자들이 존 윅의 집에서 모두 몰살당하자 경찰 '지미'가 찾아온다. 지미는 존 윅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존 윅의 집에서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알지만, 존 윅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방해하지 않겠다'면서 사라진다. 암살자 '존 윅'이 그 세계에서 은퇴하고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것도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경찰도 존 윅이 과거 암살자 세계에서 최고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건, 존 윅이 속했던 세계가 가상의 세계라는 걸 확인해주는 장치로 보인다.
'존 윅' 시리즈는 처음에 저예산으로 재미있는 액션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엄청난 흥행이 되면서 '존 윅'의 세계관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1편에서 존 윅이 가장 사랑하는 개(아내가 죽은 이후 깜짝 선물로 보낸 개)가 죽고 1968년 형 머스탱을 도둑 맞으면서 은퇴한 암살자 '존 윅'이 암살자의 세계로 소환된다. 즉, 존 윅에게 '진짜 세계'는 허상이거나 환상이고, 그가 살았던 '죽음의 세계'가 진짜 세계라는 걸 확인한다. '존 윅'은 헬렌과 결혼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헬렌은 병으로 죽는다. '진짜 세계'에서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고, 매우 깊은 슬픔을 간직하게 되는 개인사지만, 존 윅의 세계에서 '존 윅'이 겪는 경험은 실제 경험이 아닐 수 있다. 즉, 헬렌과의 결혼 생활이 '환상'이거나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실제로 보이지만 실제가 아닌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존 윅의 어두운 세계를 소환한 건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들 요제프다. 어찌보면 별 게 아닐 수 있는 개 한 마리와 자동차 한 대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삶의 전부일 수 있다는 걸 요제프는 몰랐다. 요제프의 아버지, 마피아 두목 비고는 조용히 살고 있는 존 윅을 건드린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는 걸 알고 몹시 당황하고, 화해를 시도하지만,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처럼, 비고는 사고 치는 아들을 똑바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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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시리즈는 서사보다는 액션에 방점을 찍은 영화다. 시리즈 1, 2, 3편까지 존 윅이 죽이는 사람은 무려 180여 명에 이르는데, '존 윅 4'에서만 1, 2, 3편을 다 합한 만큼 죽인다.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 매니저 코지가 존 윅에게 '최대한 많이 죽여주게'라고 말하는건, 존 윅에게만 말하는건 아니다. 그 말은 감독의 의지를 드러내는 대사인데, 관객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영화의 도입부에 해당하고,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에서도 꽤 많은 암살자(닌자)들이 죽지만, 이후 훨씬 많은 격투와 살상이 벌어질 거라는 걸 관객에게 슬쩍 알려주는 장면이다. 즉, '존 윅'은 액션 자체가 서사다. 따라서 액션을 구성하는 미장센이 존 윅의 세계를 말하고 드러낸다. 1, 2, 3편까지 현실 세계의 공간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액션이 벌어졌다면, 4편에서는 그전과 완전히 다른 미장센과 메타포를 드러낸다.
'존 윅 4'에서는 중세 고딕의 이미지와 매트릭스 이미지가 혼종된 형태로 등장한다. '최고 회의'는 '로마 원로회'를 상징하고,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은 중세 봉건시대 귀족을 상징한다. 그라몽 후작이 머무는 성은 고딕 성당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문장은 중세 귀족들이 가문을 드러낼 때 쓰는 문장이다. 그라몽 후작이 지휘하는 부하들은 중세 기사단의 재현이고, 그들은 고딕 성당 앞에서, 귀족들이 싸우는 방식으로 일대 일로 맞서 중세 디자인으로 만든 총으로 대결한다.
존 윅의 등장인물 거의 모두는 깔끔한 수트를 입고 있는데, 이것은 중세 기사단의 갑옷을 현대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것처럼, 전쟁터에 나가는 기사는 몸에 잘 맞는 갑옷을 갖추고, 말 안장과 장신구를 완벽하게 꾸민다. 여기에 날카롭게 벼린 창을 들면 전투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현대에서 수트는 남성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주 쓰인다. '대부'에서 마피아 간부들은 전부 고급 수트를 갖춰 입는다. 한국영화에서도 조폭들이 양복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수트는 남성성을 상징하며, 중세의 기사 갑옷을 상징하고, 예복이자 공식적인 활동, 행위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효과를 보인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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