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3000년의 기다림.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를 연출한 조지 밀러 감독의 최신작. '분노의 도로'를 처음 본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 같은 감독이 연출한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분노의 도로'는 분명 걸작이지만, 그가 연출한 작품 가운데 졸작도 많다. 이 작품은 제작비를 무려 6천만달러나 들여 만들었는데, 소품같은 느낌이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혼자 사는 여성 알리세아가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이 단순한 설정에 중동 설화인 '알라딘' 이야기를 입혔다. '알라딘'이 서구에서 널리 알려진 계기는 디즈니의 공이 크다. 디즈니는 '알라딘과 마술램프'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세계에 널리 알렸고, 원본은 중동 설화지만 마치 서양의 이야기처럼 각색되었다.
이 영화에서도 알리세아는 미국인으로, 민속학자, 인류학자로 보이는데, 그는 '서사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신화를 연구하지만, 신화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상당히 합리적이고, 과학을 도구로 활용하는 지성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이스탄불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유리병에서 정령 지니가 나오고, 신화가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천일야화'처럼 정령 지니가 자기가 경험한 과거의 이야기를 알리세아에게 해주는데, 알리세아는 민속학, 인류학, 서사학을 연구한 사람답게 지니가 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지니는 시바 여왕과 친족이라고 소개한다. 시바 여왕은 구약성경 '열왕기'에 나오는 인물인데, 이때 등장하는 솔로몬 왕은 유대인의 조상이기도 하다.
구약은 유대민족의 설화를 집대성한 이야기이므로 시대를 알 수 없다. 현대 역사에서 '서기'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데, 예수가 2천년 전에 태어났다고 하면, 구약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바 여왕은 중동과 그 아래 북아프리카인 메소포타미아, 예멘, 에티오피아 등을 지배했던 부족의 부족장인 걸로 추론한다. 솔로몬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지금부터 약 3천년 전에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이 존재했을 걸로 유추한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이 사랑에 빠지고, 시바 여왕은 지니를 작은 병에 담아 버리는데, 작은 병에 갇혀 오랜 세월 발견되지 않다 천재 소녀를 만나고, 알리세아를 만난다. 지니는 자신을 병에서 꺼내준 사람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데, 이 소원을 다 들어주면 저주의 마법에서 풀려나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알리세아는 지니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니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지니는 인간이 만든 물질문명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다.
껍데기로만 보면, 한 여성이 한 남성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다. 그 서사는 '알라딘와 요술램프'의 형식을 가져왔고, '천일야화'의 형식을 도입했으니 서구 관객은 이 구조가 낯익다.
하지만 껍데기를 벗기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들여다보면 알리세아의 외로움과 간절한 사랑의 열망을 담은 환상을 그린 이야기다.
알리세아는 결혼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독립적인 여성이고, 지성인이며, 학자로 활발한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외롭고, 가까운 인간 관계가 없어 힘들다.
그가 이스탄불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작은 유리병을 호텔에서 닦을 때, 마음으로 어떤 소원을 빌었을 걸로 본다. 지니가 나타나는 순간부터는 알리세아의 환상이고, 상상이며, 자기가 쓴 이야기다.
외로운 알리세아는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고, 어쩌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가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된 것도 어떤 이유에서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방에서 갑자기 거대한 몸집의 지니가 나타날 때도 알리세아는 놀라지 않는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는 듯, 천연스럽게 행동한다. 이걸 보면 알리세아의 상상이 만든 환상, 환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니는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이야기는 민속학자, 인류학자, 서사학자인 알리세아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지니가 하는 이야기 속에는 모두 여성이 등장하고, 그 여성들과 지니는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 역사 속 여성들은 모두 알리세아이며, 알리세아가 생각하는 사랑의 변주다.
알리세아는 외로운 '현대인'을 상징한다. 현대인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건, 현대가 아니라 오랜 과거의 낯선 시대이고, 지나간 시대는 낭만과 로망을 불러 일으킨다. 알리세아는 과거로 퇴행하지만, 거기에서 편안함과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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