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로켓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걸 알았다. 감독 션 베이커의 작품은 겨우 두 편 밖에 못 봐서 앞으로 그의 나머지 작품을 모두 찾아보는 즐거움이 남았다. 비교적 최신작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레드 로켓'만 봤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보여주는 독창성이 있음을 알겠다.
우연인지, 감독의 의도인지 알 수 없으나, '레드 로켓'은 바로 직전에 만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느낌이었다. 두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데, '레드 로켓'이 시간으로는 앞서 있다. 즉, 마이키가 LA에서 빈털털이로 돌아와 되는대로 살아가다 도너츠 가게에서 일하는 레일리(스트로베리)를 만나고,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마이키의 야망에 불이 켜진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텍사스에서 마이키와 레일리가 LA로 떠난 뒤, 최소 6년의 시간이 흐른 지점이다. 마이키는 등장하지 않고, 아직 어린 여성 헬리는 이제 여섯 살이 된 딸 '무니'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간다. '레드 로켓'에서 마이키는 레일리를 포르노 영화배우로 데뷔시킬 것처럼 말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헬리는 스트립댄서로 일한 경험이 있고,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비어 있는 6년의 시간을 상상으로 추론하면, 텍사스에서 무일푼 - 마이키는 겨우 200달러를 가졌다 - 으로 쫓겨난 마이키와 레일리는 LA로 왔고, 두 사람은 마이키가 일하던 포르노 영화 산업에서 배우로 일하려 했으나 아마 성공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LA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일리는 마이키와 헤어지고 - 마이키가 레일리를 버린 것으로 보이지만 - 그 와중에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레일리는 혼자 아이를 낳고, 힘겹게 '무니'를 양육한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레일리와 LA에 도착한 마이키는 레일리를 이용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지만, 한물간 포르노 배우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없고, 마이키는 LA 뒷골목을 전전하며 마약을 팔거나, 몸을 파는 창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예전처럼 포르노 배우로 성공해 레일리를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마이키는 죄의식이나 윤리, 도덕 관념이 거의 없는 인간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 애쓰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의 뒷통수를 쳐서 돈을 버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이키의 뒷통수를 때리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는다.
그렇게 LA에서 모든 걸 뺐기고, 잃은 마이키는 다시 버스를 타고 텍사스의 전 아내에게 돌아가는 반복 구조의 서사를 생각할 수 있다. 마이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행위지만, 그에게는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이 없으므로, 언제든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마이키가 범죄자처럼 윤리적, 도덕적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LA에서 빈털털이가 되어 고향 텍사스로 돌아와 이혼한 아내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월세도 내고, 생활비도 내겠다고 말했고, 실제 그 약속을 지킨다.
그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자신이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대마초도 팔고, 포르노 산업에서 성공하고픈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레일리를 만나고, 레일리를 포르노 배우로 만들어 자신의 과거의 영광까지 되찾으려는 욕심을 드러낸다.
마이키는 욕망 그 자체의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욕망이 끌리는대로 행동한다. 이건 마이키가 살아가는 미국의 현재 모습과도 같다. 영화에서 줄곧 트럼프의 선거 유세 장면이 나오는데, 트럼프는 미국의 욕망을 날것으로 드러내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마이키가 포르노 배우라는 점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백인 하층민인 마이키는 트럼프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는 계층이다. 즉, 마이키로 대표하는 미국 백인 하층민은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이며, 외부 세계와 연결되지 않은 채, 폐쇄적인 집단을 이루며,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않)하는 천박하고 멍청한 인간이라는 걸 드러낸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포르노' 밖에 없다는 걸 경멸의 의미로 보여주는 게 바로 마이키가 포르노 배우라는 설정이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마이키만은 아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레일리도 자기 욕망을 위해서는 낯선 남자와 도망할 정도로 앞뒤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레일리는 마이키에게 속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이키를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아가려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텍사스의 황량하고 변화가 거의 없는 시골에 살면서, 지겨운 나날을 견디지 못하고, 대도시에서 화려한 삶을 살고픈 욕망이 있는데, 레일리 혼자 텍사스를 탈출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접근한 사람이 마이키였고, 레일리는 순진한 척 하면서 마이키를 따라 LA로 떠나는데 성공한다.
고향(텍사스)을 떠난 마이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건 자기 삶이 실패했을 때다. 그가 잘 나가는 시간에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빈털털이로 돌아온 마이키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마이키도 어떡하든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전처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몸뚱이만 들어와 사는 마이키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대마초 판매), 자기가 잘 나가던 시절(포르노 배우)을 되찾으려 도너츠 가게에서 일하는 레일리를 꼬여 다시 LA로 가려 한다.
마이키가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건, 그가 자기 생각을 계산하지 않고 내뱉음으로써, 가지고 있던 돈을 다 뺐기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털털이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마이키는 어디에서 살아도 자신의 멍청함 때문에 늘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갈 걸로 보인다.
영화는 속물 인간이 보여주는 삶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상징적으로 미국의 속물성, 욕망만 남은 벌거벗은 괴물인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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