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 매버릭
'탑건'은 1986년 개봉했고, 새로운 형식의 전쟁 영화라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80년대는 여전히 미국과 쏘련의 냉전이 이어지고 있었고,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하는 자본주의 국가 집단은 쏘련과 중국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무력을 앞세워 대치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 시기 '신냉전'을 이끄는 군산복합 집단이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이 꼭둑각시 대통령으로 전면에 나섰다. 미국은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을 침략했는데, 이 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끝나면서 지난 200년의 미국 역사에서 2차 세계전쟁 이후 두번째 패배이자 심각한 내부 분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첫번째 패배는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쏘련과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자 '휴전선'에서 '종전 협정'을 맺었고, 이것은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전쟁 전과 같은 대치 상태로 이어지게 되어 막강한 전쟁 능력을 가진 미국으로써는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전국으로 위세가 당당했으며,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체제 대립으로 이어지면서, 베트남이 쏘련, 중국에 이어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 확실해지자 프랑스의 패퇴에 이어 베트남을 전략적으로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은 국가간 전쟁에서 미국이 최초로 패한 전쟁이며, 이 전쟁으로 미국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유럽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유럽은 물론 미국 사회, 미국의 청년,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반전, 개인주의, 탈정치, 마약 같은 현상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 영화 가운데 '지옥의 묵시록', '풀 메탈 자켓', '플래툰', '7월 4일생', '택시 드라이버' 등은 미국 정부(군산복합 자본)가 일으킨 전쟁으로 피폐해지는 인간의 고통과 비극을 다루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전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함께 미국의 자부심을 더 강화하는 반동적 움직임도 일어났는데, 근본주의 개신교가 득세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런 분위기와 반대로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하고, 참전 군인을 '영웅'으로 부각해 전쟁으로 인한 참혹함과 국가 범죄를 은폐, 왜곡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람보' 시리즈처럼, 미국이 '적'으로 규정한 나라와 인민을 '인간'이 아닌, 학살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고자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을 낙엽처럼 쓸어버리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졌고, 흥행에 성공한다.
'탑건'도 냉전 시기 미국이 원하는 전쟁 영웅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세계 최강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첨단 무기 개발과 함께 이런 무기로 '미국의 적'을 때려 잡는 '세계 경찰' 코스프레를 보여준다. '탑건'은 크게 두 가지를 드러낸다. 미국이 일방 지정한 '가상의 적'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 즉 '폭력'을 발산함으로써 관객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폭력과 파괴의 본능을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적이 곧 우리의 적이 되도록 동화되며, 미국의 이익이 곧 세계의 이익이며, 미국이 추구하는 '평화'가 곧 '정의'라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헐리우드의 역할이다. 온전히 의도하거나 계획한 건 아니지만, 헐리우드 역시 미국의 이익에 복무한다. 특히 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대규모 투자를 받을수록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대자본은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입장을 강하게 유지한다.
'탑건'은 군사 강국, 국방비로만 천조원(한국 기준)을 사용하는 미국이 자랑하는 항공모함과 전투기가 등장한다. 여기에 최정예 파일럿이 등장하고, 그들은 '가상의 적'과 싸워 통쾌하게 승리한다. 이때 보여지는 항공모함, 전투기를 비롯한 군사 무기의 이미지는 미국의 우월함을 상징하며, 관객의 뇌리에 스며든다.
'탑건'에는 공군 청년 장교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섞어 서사를 만드는 건 스토리가 있는 모든 작품의 기본이지만, '탑건'에서 청년 장교들의 사랑이야기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개인의 삶 뒤로 감추고, 미국의 폭력을 은폐하는 효과를 갖는다. 개인의 삶은 시대와 나라를 떠나 보편적 정서를 공감할 수 있기에 '탑건'은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을 옹호하는 주제와는 다르게 청년 장교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다.
'탑건'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서사는 빈곤하다. 빈곤한 서사를 메우는 건 거대하고 웅장한 항공모함과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의 빠른 움직임이다. 화려한 볼거리는 그 자체로 영화 미학의 한 부분이지만, 본질을 희석하고 가린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탑건'의 주인공은 '영웅'이 되기에 부족한 인물이다. 따라서 '탑건'에는 영웅 서사가 없으며, 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영웅'으로 기능한다. 전투에서는 반드시 '영웅'이 존재해야 하며, 집단(군대)은 어떻게든 영웅을 만들어야 하므로, '탑건'은 그들의 존재가 이미 '영웅'으로 설정되어 있다.
미국이 '가상의 적'과 싸워야 하는 당위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므로, 영화는 첨단 전투 무기,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 청년 장교들의 러브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런 장치는 이번에 개봉한 '탑건 : 매버릭'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청년 매버릭은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된 영관급 장교로 나온다.
영화 첫 장면에서 매버릭은 실험용 전투기를 타고 마하10에 도전한다. 이 부분은 영화적 장치로 미국 공군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려는 의도인데, 실제로도 미국 공군은 이런 전투기를 개발한 걸로 알려졌다. 마하 10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음속은 1초에 340미터를 이동한다. 이걸 1시간으로 계산하면 1,224km다. 한 시간에 이 정도를 가는 정도 대단한데, 마하10은 한 시간에 12,250km를 간다. 지구 둘레가 4만km니까, 마하10의 속도라면 3시간 조금 넘어 지구 한바퀴를 돌 수 있다.
또한 전편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어려운 비행 기술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고, 청년 '탑건'들이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매버릭을 지휘관으로 발탁한다. 서사가 빈약하므로 영화의 이야기는 공허하고, 이들은 주로 볼 것으로 시간을 메운다. 전편에서 자기 목숨을 구한 동료의 아들이 '탑건'이 되어 매버릭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건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서사를 끼워 넣은 것이고, 뻔한 장치가 느껴졌다.
'탑건 : 매버릭'에도 '가상의 적'이 등장한다. 지대공 미사일을 촘촘하게 깔아 놓고, 지형도 전투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정밀한 타격으로 핵미사일 기지를 파괴해야 하는 임무를 만들었는데, 이 임무 전체는 마치 게임을 보는 것과 같다. 전쟁을 게임처럼 하는 미국의 태도가 보이고, '탑건'을 제외한 모든 대상은 소외되며, 대상화한다. 즉, 그들에게 '적'은 실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개념화한 존재다. 그들은 '적'으로 상정한 이상 아무리 죽여도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적'을 죽이는 것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군이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을 학살할 때 만들었던 개념과 비슷하다. 독일군은 유대인을 '사람'이나 '인간'으로 여기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수용된 유대인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더러운 환경을 만들고, 물과 식량을 최소한으로 공급했으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어렵도록 극한의 환경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유대인을 학살하는 말단의 병사나 지휘관 모두 '유대인은 죽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된다. 미군도 '가상의 적'을 구체적, 실존적 인간이 아닌, 관념으로의 '악'으로 개념화해서 미군에게 주입한다.
미국 영화에서 '영웅 놀이'는 이제 더 이상 세계의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할 걸로 본다. 그들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스스로 '영웅'이 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으로 '반-영웅'의 존재를 그린 영화들도 많아지면서, 미국의 패권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것과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런 순수한(?) 태도가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든 예술 작품은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여러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 비평이고, 우리는 텍스트의 본질에 접근할 때,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탑건 : 매버릭'은 단순한 오락영화라기에는 미국의 패권주의, 군산복합체 자본, 신 냉전적 태도와 같은 부정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건 미국의 과거 영광과 영화를 되찾고 싶은 미국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일 수 있고, 평화보다는 전쟁을 바라는 특정 세력의 숨겨진 의도와 함께, 인간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파괴와 폭력의 의지가 발현된 것일 수 있다. 지나친 해석일 수 있어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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