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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오펜하이머

by 똥이아빠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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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지구 생명의 진화와 관련해서는 캄브리아기가 가장 중요하다. 지구의 역사 45억 년에서 40억 년 동안 생명 활동은 밀도 높게 축적되었고, 고생대가 시작되는 5억 4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다양한 생물이 폭발하듯 등장했기 때문에, 지구, 지질학, 표층학, 암석학, 진화생물학, 세포학, 해양학, 대기학 등 학문 전 분야에서 이 시기부터의 각종 화석과 생물학적 진화의 증거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19세기에서 20세기 초는 인류의 지성이 폭발하듯 나타나던 때였다. 인류의 지혜가 쌓여오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때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후로, 인류 문명이 본격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인류의 지혜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축적되고 있었겠지만, 문자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기억에 의한 구전으로만 전승되었고, 노래로 암송되어 세대를 이어왔다. 문자가 어느 정도 인류의 문명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 과학, 수학을 시작으로, 인도에서는 불교, 중국에서는 공맹자, 중동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탄생했다.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자연을 문명 발전의 연료로 사용했다. 인류는 지금 지구의 모든 생물 가운데 가장 특이한 종이다. 모든 생물은 자연과 하나처럼 살아가지만, 인류는 자신과 자연을 분리하고, 자신과 다른 모든 사물, 동식물을 객체화, 객관화, 타자화 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진화의 결과지만, 자연을 대상화하는 능력을 갖게 된 인류의 미래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예견된 수순이다.
인류 문명의 진화는 당대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인류 가운데 돌연변이로 나타난 1%의 특별한 천재들이 문명의 단계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물적 토대가 갖춰지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발전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면서 인구의 30%가 사라졌다. 이후 다시 인구는 꾸준히 늘어났고, 인구의 증가는 천재의 등장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절대 인구가 많을수록 1%의 천재가 나타날 확률은 높아지고, 숫자도 많아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대표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나타나고, 재능을 가진 개인을 발견하는 건 사회적 경쟁력과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하면서, 평범한 사람과 달리 특이하거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보다 나은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예술 분야에서는 그 결과물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음악, 미술, 건축 같은 분야의 천재들은 쉽게 주목받았지만, 철학, 수학, 물리학 분야의 천재들은 쉽게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반사회적 인간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이들은 14세기 이후, 유럽에서 '대학'이 생기고, 탐험가들이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을 찾으러 떠나기 시작하면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배자들이 인정하고나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아이작 뉴턴은 17-18세기를 살면서, 그 이전의 천재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의 업적을 통합하면서 고전물리학을 완성한다. 아이작 뉴턴의 뒤를 이어 아인슈타인이 나타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양자역학' 이론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즉, 아인슈타인의 (특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은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중력, 역학, 광학, 미적분학 등의 새로운 이론을 바탕으로 가능했으며, 아이작 뉴턴은 이전 과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했지만, 그 자신이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이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원자의 분열을 통해 에너지의 발산을 응용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소를 융합하면 원자를 분열하는 방식보다 훨씬 큰 폭발력을 낼 수 있다는 '수소폭탄'의 원리까지 거의 동시에 발견한다.
 
인류(의 상위 0.000001%에 불과한 천재들에 의한 것이지만)가 만든 원자의 분열과 수소의 융합 기술이 인류를 절멸할 무기가 되었고, 전기를 생산하는 원료가 되었다. 살상력이 큰 무기일수록 전쟁을 억제하는 힘도 크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리고 전기를 값싸고 안전하게 생산해 인류 전체가 혜택을 나눌 거라고 자신했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은 알았지만,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확보하지 못한 채 우라늄, 플루토늄 같은 물질을 활용할 방법만 찾아냈다. 그 결과 인류는 현 세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핵폐기물을 보유하게 되었고,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미국이 핵폭탄 개발을 서두른 건 독일의 히틀러가 먼저 핵폭탄을 개발할 거라는 정보 때문이었고, 핵폭탄을 주도한 과학자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2차 세계전쟁에서 유대인은 가장 큰 피해자였고, 히틀러는 유대민족 최대의 적이었다.
유대인 과학자들은 히틀러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해 독일을 멸망시키려는 희망을 가졌다. 미국 정부와 유대인 과학자들의 이해 관계가 같았고, 미국은 이미 쏘련을 최대의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쏘련보다 앞서 핵폭탄을 보유하려 했다.
오펜하이머는 이런 국가 사이의 긴장과 경쟁이 격렬하던 시기에 핵폭탄 개발 책임자가 되었고, 결국 임수를 완수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들도 핵폭탄의 위력을 보고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이 무기가 인류를 거대한 재앙의 원천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오펜하이머처럼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한 걸로 보인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소폭탄'에 관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미국 정치가들은 쏘련보다 먼저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에서는 핵폭탄을 보유할 수 없다는 정책을 세운다. 물론 미국 정부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고, 수많은 나라가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 성공 이후, 뒤이어 개발하는 핵폭탄,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는다. 이런 태도를 보인 오펜하이머는 냉전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그를 핵 관련 단체의 주요한 자레에서 몰아내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영화에서 두 개의 청문회가 열리고, 오펜하이머의 상황과 스트로스의 입장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흑백 화면은 두 사람의 청문회를, 컬러 화면은 두 사람의 핵폭탄 제조 과정을 보여주면서, 2차 세계전쟁 이후, 즉 핵폭탄을 일본 상공에 두 개를 터뜨리면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미국이 이제는 쏘련을 군비경쟁 상대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오펜하이머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오펜하이머는 더 이상의 핵폭탄 개발을 하지 말고, 수소폭탄은 더더욱 개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주장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받고, 쏘련의 첩자라는 의심까지 받는 상황에 몰린다. 미국에 불어닥친 매카시 광풍은, '빨갱이'라고 낙인 찍으면 모조리 체포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상황이어서 오펜하이머는 과거의 이력 때문에 더욱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오펜하이머가 핵폭탄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독일보다 더 빨리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건 그가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독일에게 탄압당하는 유대인의 처지에서, 하루 빨리 독일이 패망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핵폭탄 개발을 서둘렀으나, 핵폭탄이 일본에 터지고, 폭탄의 위력이 수학적 계산보다 더 끔찍한 현실임을 깨달으면서, 핵폭탄 개발을 후회했을 걸로 본다.
영화는 오펜하이머 개인의 삶과 그를 둘러싼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정, 미국과 쏘련의 군비 경쟁으로 확산하는 핵무기 개발의 열풍, 미국 사회를 뒤흔든 매카시 광풍으로 공격당한 그의 처지를 보여주지만, 정작 핵폭탄 개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군사 강국이 핵폭탄 실험, 수소폭탄 실험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섬이나 숲에 살던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살던 곳에서 쫓아내는 폭력에 관한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핵폭탄은 해체할 수 있다지만, 핵발전소에서 사용한 핵폐기물들은 반감기가 수백년, 수천년, 수만년에 이르는 물질들이 있어 핵폐기물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현재, 미래의 인류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드러나지 않았다. 핵폐기물 처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오펜하이머로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들은 최신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최신 무기를 만들었다. 과학의 결과물이 정치가들에 의해 오용되는 현실을 보면서, 과학의 성과가 인류에게 반드시 이롭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류를 대량 살상하는 무기가 선택적으로 개발, 사용된다면, 정치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한 과학자들이 어리석고 멍청한 정치가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들의 도구로 쓰이는 비극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리와 그의 삶을 둘러싼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관객은 오펜하이머가 이룩한 성과 이후,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도 핵폭탄 개발 이후, 인류의 평화와 미래의 존속에 관해 갈등하고 번민했을 것이지만, 지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 단 한 번의 판단 오류로 핵폭탄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멸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미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상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건 오히려 국지적 사건이지만, 핵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건 전지구적 환경오염이자 전인류의 재앙이다.
이제 핵폭탄, 핵발전소의 시대를 만들었던 인류가 그에 따르는 반대 급부의 재앙을 맞이할 시간이 되었다. 이런 참혹한 결말을 과학자들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도 인류의 일부이고,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지만, 그들을 투표로 선택한 건 우리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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