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호파'와 '아이리시맨'

by 똥이아빠 2023. 8. 31.
728x90
[호파]와 [아이리시맨]
 
두 영화는 '지미 호파'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전미트럭운송노동조합' 조합장인 지미 호파는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조합원이 10만 명일 때부터 노동조합의 선두에서 활동한 호파는 자본가의 압력과 탄압에 맞서 노조원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며 1930년부터 노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1952년에 노조 부위원장이 되었고, 1957년, 그가 44세일 때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호파'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호파와 바비는 이제 늙었고, 감옥에서 나온지 오래 되지 않았다. 호파는 IBT(전미트럭운송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노조의 기금을 불법으로 조성, 사용한 죄로 감옥에 갔다. 그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의 서사가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인데, '아이리시맨'과 비교하면 표현 수위가 낮고 부드럽다. '아이리시맨'은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특징인 날것의 폭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인물의 감정이 마치 옆에서 쉼쉬는 것처럼 들리는데, '호파'는 드러난 사실을 객관의 눈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라면, '아이리시맨'은 주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영화 '호파'에서 주인공 '호파'는 잭 니콜슨이 연기했다. 실제 호파의 외모와 잭 니콜슨의 외모가 상당히 닮았다는 것도 신기하고, 잭 니콜슨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그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샤이닝'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다른 배우가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카리스마와 이중성을 연기하는 배우로 잭 니콜슨만한 배우가 없으니, '호파'에서 노조위원장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마피아와 거래하며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 걸 보면, 잭 니콜스이 '호파'라는 인물을 꽤 깊이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케네디 정권이었던 1964년, 당시 법무부장관은 대통령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였다. 로버트 케네디와 호파의 악연은 오래 되었는데, 1956년, 상원 노동 라켓위원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케네디는 고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참고인으로 출석한 호파와 설전을 벌인다. 로버트 케네디는 호파가 노조위원장으로 마피아와 결탁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호파는 그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 와중에 1957년 호파가 IBT 부위원장에서 선거를 통해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로버트 케네디는 상원 라켓위원회 고문으로 1959년까지 활동하면서 번번히 호파와 부닥쳤다.
결국 1960년,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부장관이 된다. 그리고 1964년, 호파는 연기금 조성 및 불법 사용의 죄목으로 징역 5년형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데, 나중에 호파가 대배심원을 매수하려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까지 인정되어 8년의 형기가 늘어나 모두 13년형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1971년 닉슨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가석방되는데, 이때 호파는 당시 노조지도부가 호파의 석방을 위해 몇 가지 불리한 조건에 합의한 걸 두고 엄청 분노하는데, 노조위원장에서 사임할 것과 출옥 이후 10년 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다. 호파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위원장으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하던 와중에 호파는 실종된다.
 
'아이리시맨'에서는 호파와 노조 간부들의 삶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지미 호파와 가장 가까이 지낸 프랭크 시런의 시점으로 진행한다. 프랭크 시런도 평범한 트럭노동자에서 지미 호파의 최측근이자 마피아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는 복잡한 인물로 진화하는데, 지미 호파를 비롯해 당시 전미트럭운송 노동조합 간부나 마피아들이 살해당하지만, 프랭크 시런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특히 지미 호파의 실종 사건에 관해 누구보다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프랭크 시런은 경찰과 FBI의 집요한 추궁에도 끝내 입을 다문다.
프랭크 시런이 호파의 죽음에 관해 알고 있을 확률은 높지만, 자신이 호파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이 쓴 회고록의 인세를 받도록 하려는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노동운동이 자본에 패배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한데, 지미 호파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피아와 거래를 했고, 조합원들이 납부한 연금을 불법 사용한다. 지미 호파가 조합장으로 당선되던 초기에 전미트럭노동조합의 조합원은 10만 명 정도였지만, 이후 230만 명이 될 정도로 조합원이 늘어나는데, 조합장인 지미 호파의 능력과 역할이 큰몫을 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협상력으로 자본가와 맞섰으며, 조합원의 이익을 극적으로 확대했다. 따라서 트럭운송노동자들은 지미 호파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미 호파를 비롯한 노동조합의 간부, 임원들은 조합원들이 납부한 조합비와 그들의 연금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귀족 생활을 했으며, 자본가와 결탁해 노동운동을 타락하게 만든 악당들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운동에 마피아를 끌어들임으로써, 미국노동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마틴 스콜세즈 감독은 왜 지미 호파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미 마피아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 범죄집단의 잔혹함과 범죄자들의 배신, 인간성, 타락한 인성을 비판한 감독은, 지미 호파를 둘러싼 사건의 본질도 그런 속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타락했고, 범죄집단인 마피아와 결탁했으며,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를 배신했다. 미국은 자본(가)이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끌어들여 노동운동을 절멸하는 과정이 있었다. 진보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파업은 파업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이나 조직,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해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처음부터 짓밟아 버렸다.
 
'호파'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가 미국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죽음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서사로서의 인물이 갖는 매력이 있다. '호파'를 영웅 신화로 바꾸면, 노조위원장 호파는 영웅이 가진 서사를 모두 가진 특별한 인물이 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고난은 곧 모험이며, 자신이 이루어야 할 꿈이자 목표를 찾아 방랑한다.
온갖 고난을 겪고 영웅은 마침내 거대한 적(자본)을 깨부수고 승리(전미트럭운송노동조합 건설과 위원장)하며, 자신이 맹세한 사명을 완수한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그는 더 큰 고난 또는 괴물에게 희생당하고, 영웅적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서사를 보이기 때문에 영화의 소재로 매력적이며, 미국인, 특히 노동계급이 좋아할 서사를 담고 있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호파의 몰락은 예견되어 있었다. 호파의 등장 이전 미국 노동운동은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었는데, 1930년대 이전에 자본은 노동조합에서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몰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즉, 자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수, 폭력, 암살, 테러, 납치 등 온갖 수단으로 노동조합의 지도자와 조합원을 사회주의와 분리시켰다.
자본은 조직폭력배인 마피아를 끌어들였고, 마피아는 자본으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이권을 넘겨 받는 방식으로 자본의 사냥개가 되어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테러하고, 마피아를 노조에 심어 노조의 활동을 무력화했다. 이렇게 노조가 자본의 공격으로 무력화되거나, 자본의 앞잡이로 변질되는 동안 미국사회주의자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그 결정판이 1950년, 상원의원 매카시가 주장한 '빨갱이 선동'이었다.
노동조합이 사회주의와 결별하고, 오로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만을 주장하는 이익 단체로 전락하면서, 노동조합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역사적 책무를 잃은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호파는 이런 노동조합의 리더로 등장했고, 그 자신, 노동운동의 대의를 알지 못한 채, 오로지 트럭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채, 오로지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호파는 빠르게 달릴 줄 알았지만,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에 관한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중산층 노동자'의 장밋빛 미래만을 바라보며 달렸던 사람이다. 그는 결국 자신을 견제하는 수많은 경쟁자들과 마피아의 견제로 살해당한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 시대와 역사의 한 부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호파'의 경우, 미국노동운동사, 미국노동운동의 흐름과 마피아의 등장, 미국 자본과 노동운동의 갈등을 집약해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하겠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빌론  (1) 2024.03.22
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  (0) 2023.11.06
플라워 킬링 문  (1) 2023.10.31
라이어니스 : 특수작전팀  (0) 2023.09.0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0) 2023.08.22
오펜하이머  (0) 2023.08.20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파트1  (0) 2023.07.09
레드 로켓  (0) 2023.06.02
3000년의 기다림  (0) 2023.05.19
탑건 : 매버릭  (0) 202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