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
조디 포스터의 얼굴만 보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60대를 시작하는 두 여성 노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디 포스터의 친구이자 주인공이 '아네트 베닝'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영화가 조금은 심상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나이애드'는 실존 인물이며, 이 드라마가 실화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점차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30년 동안 수영을 하지 않았던 나이애드가 어느 날, 수영장에서 다시 수영을 시작한다. 그리고 헤엄치는 나이애드의 모습과 함께 '사이먼 앤 가픙컬'이 부르는 'The sound of silence'가 울려퍼지면서,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내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걸 느꼈고, 감동과 함께 문득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영화 '빠삐용'에서 '악마의 섬'에 유배되어 평생 갇혀 살게 된 빠삐용(스티브 맥퀸)과 드가(더스틴 호프만)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탈출을 결심한 빠삐용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함께 탈출하기로 한 드가가 탈출을 포기하고, 빠삐용 혼자 탈출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탈출에 성공할 지, 실패해서 바다에서 죽을 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가 있지만, 빠삐용은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하지만, 드가는 섬에 남기로 한다.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갈리고,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거친 파도에 몸을 던지는 빠삐용을 바라보며, 드가는 북받치는 여러 감정의 혼란스러움으로 기묘한 표정이 된다. 빠삐용의 성공을 기원하며, 그를 부러워하는 마음, 그의 뛰어난 용기와 불굴의 의지에 대한 감탄과 존경,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감동과 함께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절망과 슬픔의 감정이 북받치는 그런 복잡한 심정의 표정이 아래 드가의 표정이다.
나이애드는 마라톤 수영 세계 챔피언이며, '파이 베타 카파' 수상자로 언어학자이면서 카프리-나폴리 종단 기록 보유자, 온타리오호 51km 횡단 기록 보유, 맨해튼섬 45km 일주 기록 보유, 바하마에서 플로리다까지 143km를 27시간 38분 신기록으로 종단한 기록을 세웠다.
그런 나이애드가 자신의 경력을 걸고 마지막으로 쿠바 아바나에서 플로리다 끝단 키웨스트까지 무려 60시간 수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겠다고는 결심을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했고, 그 약속을 실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35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60대 초반의 노인이 된 나이애드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충족되지 못한 막연한 불만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는 20대에 이미 세계적 명성을 누렸으나 마지막 도전에서 실패했고, 잊혀졌다. 그 뒤로 살아온 삶이 나쁘진 않았지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의심이 든다.
어느 날, 나이애드는 실내수영장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려는 마음으로 물에 들어간다. 30년만에 다시 수영장에 들어간 나이애드는 그러나 무려 네 시간 넘게 수영을 하고,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단 자신의 본능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영화는 나이애드의 현재, 그가 20대에 실패했던 쿠바-캘리포니아(키웨스트) 종단의 과정과 나이애드의 과거가 겹쳐지면서 진행하는데, 나이애드는 쿠바 아바나에서 키웨스트 방향으로 다섯 번을 시도하고, 결국 마지막에 성공한다. '다섯번 째 파도'의 제목이 상징하는 건 그가 61세부터 64세까지 사이에 아바나-키웨스트 종단의 시도와 실패, 성공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이애드는 30년 지기 보니를 비롯해 그를 돕는 약 마흔 명의 팀과 함께 마라톤 수영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고, 다른 한축, 나이애드의 과거 이야기는 현재의 서사를 완성하는 배경으로 나타난다. 나이애드는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잘 하는 스포츠 영재였으며,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고, 수영선수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간다.
나이애드가 아바나-키웨스트 종단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보이는 한편,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애드의 마라톤 수영은 그가 극복하지 못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이다.
플래시백으로 드러나는 나이애드의 과거는 그의 인생에서 자신의 의지로 저항할 수 없었던 어린 시기에 겪은 성폭행 사건이다. 이 영화는 나이애드가 마라톤 수영의 신기록을 세우는 인간 의지의 성공을 보여주는 멋진 드라마이면서,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한 고통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자기 치유의 영화이기도 하다.
나이애드는 아바나-키웨스트 종단을 결정하고, 함께 할 팀을 꾸린다. 자매 이상으로 믿는 친구 보니를 비롯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이애드를 돕지만, 네번째 시도까지 실패한다. 실패하는 과정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보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너무 나이 들고, 무모하다고 말할 때 나이애드는 자신을 믿었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나이애드의 성공은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기적 같은 성공이었고, 60대 중반의 여성이 무려 177km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나이애드는 마침내 성공했다.
나이애드의 열정, 트라우마의 극복, 훌륭한 동료들의 협력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들의 우정과 연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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