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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플라워 킬링 문

by 똥이아빠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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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원작인 '플라워 문'을 읽었다. 영화에서는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에 관한 배경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아래 책의 내용을 먼저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1. 원작 : 플라워 문
 
올해 개봉할 영화 가운데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 있는데, 이 영화가 원작이 있다고 해서 온라인 서점에서 확인했더니 '플라워 문'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2018년 출간했다. 당장 주문해서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고, 첫 장부터 흥미진진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다큐멘터리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오세이지 인디언 연쇄 살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연방수사국(FBI)이 공식 설립되었다. 이보다 앞서 1906년,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이 발표되고, 시카고 도축장의 참혹한 현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정부는 '미국식품의약국(FDA)'를 설립하게 된다. 같은 해에 잭 런던의 '강철군화'가 발표되었는데, 이 소설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미국 사회주의자의 활동이 눈부시게 일어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한때 큰 흐름인 시기가 있었다. 1905년,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을 설립한 노동자들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결합해 미국 자본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 책(플라워 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지만, 당시 미국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 자본가들이 각 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자본이 미국을 장악하는가 이해하는 건 이 책의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그랜'은 100년 전 발생했던 오세이지 인디언 연쇄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이 사건은 FBI가 공식 설립하기 직전인 1921년에 발생해서 1926년에 종결한 사건으로, 범인을 잡아 감옥에 보낸, 완결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의 자료를 샅샅이 뒤지면서, 당시 연방수사요원들이 밝히지 못했거나, 미쳐 확인하지 못한 정보에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낸다. 

 

이 책의 핵심은 아메리카 원주민 이주 역사와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석유 개발, 그리고 원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원주민의 재산을 훔치려는 백인의 범죄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역사는 영국에서 이주한 적은 숫자의 이주민이 미국 동부에서 시작해 점차 대륙을 가로 질러 지금의 캘리포니아주까지 백인 사회를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그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수 많은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고, 우리가 아는 미국의 '서부 개척'은 '원주민 학살'로 바꿔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들어오는 백인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대륙 철도 노동자로 중국인들이 유입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들어왔던 흑인들이 두번째 많은 인종으로 자리 잡았으며, 오래 전부터 이 대륙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90% 이상 학살되어 소수만 살아남았다.
 
19세기에도 아메리카 원주민은 백인에 의해 공공연하게 학살 당하고,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며, 흑인 노예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자료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이 되는 오세이지 원주민 연쇄 살해 사건은 '미국민중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 사건이 발발한 1921년부터 1926년까지는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고, 1차 세계전쟁 이후 미국은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미국 남부에서 원유가 발견되고, 미국의 주류(백인)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철도, 원유, 무기, 금융 분야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고,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오세이지 원주민 연쇄 살해 사건은 미국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사건이었는데, 그건 오세이지 원주민들이 다른 원주민 부족과는 달리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 오세이지 원주민도 그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황무지를 매입해 정착했는데, 기적처럼 그 황무지에서 원유가 매장되었음을 확인했다.
오세이지 원주민과 주정부, 연방정부는 오세이지 부족의 정착지에서 발견된 원유를 채굴하는 권리를 두고 오세이지 원주민에게 이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으로 원주민은 계약에 따라 부자가 되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원주민이 원유회사로부터 받은 이익금을 자유롭게 쓰도록 놔두지 않았다.
주정부는 오세이지 원주민이 받은 돈을 신탁으로 두고, 후견인 제도를 두어 원주민이 돈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후견인은 모두 백인이었으며, 지역에서 믿을 수 있는 백인들이 선정되었다. 오세이지 원주민이 사는 곳에도 백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이들은 목장에서 일하려고 찾아온 사람이거나, 원유가 발견되었을 때는 시추와 채굴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백인은 오세이지 원주민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원주민과 백인이 자연스럽게 한 사회로 섞이고, 친인척이 되면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인종 문제가 없는, 원만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역 공동체는 불안과 의심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세이지 사건에서 원주민만 살해된 건 아니다. 원주민이 가장 많이 죽었지만, 백인도 꽤 여러 명 살해당한다. 중간에 본격 이 사건에 뛰어든 연방수사국 요원 톰 화이트는 그때까지 확인한 피살자의 숫자가 24명이고, 이들의 죽음에 공통의 특징이 보이지 않아 살인범이 여러 명이라고 추론했다. 살해당한 원주민은 총에 맞거나 독극물에 중독되어 죽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나중에 더 찾아낸 자료를 보면, 최소 2백여 명에서 6백여 명의 원주민이 살해당했다.
원주민을 살해한 사람은 백인 배우자(남자, 여자 모두), 원주민 후견인(전부 백인)이었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경찰 수사를 받지 못하고 평범한 죽음으로 결론내리고 잊혀졌다.
원주민을 살해한 백인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원주민이 가진 막대한 재산을 노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원주민을 살해하는 백인은 원주민과 가까운 사이이며 심지어 가족도 있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원주민과 인척 관계에 있거나 후견인 관계인 사람들이 범인이었다.
지역의 백인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백인은 주정부는 물론 연방정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이들은 원주민의 삶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원유 채굴의 수익을 분배 받을 수 있다는 특혜를 오세이지 원주민이 받을 수 있는 건 좋은 면이었지만, 이들이 백인이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사안이 원주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오세이지 연쇄 살인 사건은 지역에서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묻힐 수 있었다. 역사는 우연이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에서 당시 연방수사국의 책임자로 '에드가 후버'가 국장으로 발탁된 일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에드가 후버는 약관 29세의 청년으로,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연방수사국의 책임자가 될 때까지 권총을 쏴 본 적도 없었고, 범죄 현장에 직접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사무직 공무원이었으며, 직감보다 서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 경찰과 수사 관행이 '탐정' 또는 '보안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의회는 법무부 산하 기관인 '연방수사국'이 그다지 쓸모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의회는 '연방수사국'의 역할과 예산을 축소하고,  궁극으로는 해체하는 걸 바라고 있었다. 에드가 후버 이전까지 '연방수사국'을 관장했던 국장들은 관행처럼 부패한 인물이었고, 뇌물을 받거나,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권한은 미약했다.
에드가 후버는 오세이지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연방수사국'의 위상을 높이고, 조직의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하길 바랐다. 그는 유능한 수사관을 찾았고, 톰 화이트가 적격한 인물로 선택되었다. 톰 화이트는 아버지도 경찰이었고, 그의 형과 동생도 경찰인 집안이었다. 톰 화이트는 오세이지 원주민 커뮤니티에서 공개적으로 '연방수사관'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 요원들을 동원했다. 그들은 신분을 바꿔 노동자, 상인, 보험사 등으로 일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하나, 하나의 사건에서 범인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수십 건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특징이 보인다. 톰 화이트는 수천 페이지의 사건 파일을 검토하면서, 살해당한 원주민이 모두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이고, 그 원주민이 살해당했을 때,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니 백인 후견인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윌리엄 헤일이 바로 그 백인 후견인의 대표 주자였고, 헤일은 지역의 유지이자 오세이지 원주민과 친구이며, 그의 조카가 오세이지 원주민 몰리와 결혼한 사이였다. 명망가이자 지역 권력을 확실하게 가진 헤일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톰 화이트 역시 처음부터 헤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오로지 사건 파일만을 바탕으로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구성하면서, 살인자들이 저지른 살인의 동기와 죽은 사람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살인 사건들은 모두 개별 사건으로 취급되었으며, 범인의 살해 동기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사건이 수십 건으로 늘어나면서, 개별 사건에서는 볼 수 없는 패턴이 발견되고,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톰 화이트는 비밀 요원들의 첩보를 통해 오세이지 원주민이 살해에 후견인들의 음모가 있다는 확증을 갖게 되고, 증거를 수집하면서 점차 윌리엄 헤일과 지역의 의사인 쇼운 형제를 용의자로 특정하기 시작했다.
 
'연방수사국' 국장 에드가 후버는 톰 화이트에게 말하길, '이 사건 해결이 연방수사국이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톰 화이트는 '연방수사국'이 들어서서 최초로 '과학수사' 기법을 도입했고, 이전까지 탐정이나 카우보이처럼 행동했던 경찰의 모습이 아닌, 치밀한 수사와 탐문, 증거 확보, 증언을 통해 범죄자를 체포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지문 검사와 같은 첨단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오세이지 카운티 사건에서는 도입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은 수사와 탐문을 통해 증거와 증인의 증언을 확보하는 방식이었고, 증인의 증언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었지만, 범죄 용의자 쪽의 압력, 매수, 협박 등으로 증언을 철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여기에, 증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많아, 증인은 수사기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로부터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세이지 카운티의 원주민 연쇄 살해 사건은 과거 백인들이 말하는 '서부 개척시대'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는 시기의 변주로 볼 수 있다. 19세기에 이미 백인은 아메리카 원주민 대부분을 학살하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다.
20세기 들어 살아남은 극소수 원주민들 가운데 오세이지족이 사들인 땅에서 석유가 나오기 시작했고, 오세이지족은 백인 개발업자와 시추, 채굴 계약을 맺고 이익의 일부를 받는다. 이렇게 원주민이 부자가 되면서, 이들을 시기, 질투하는 백인들이 많았고, 돈이 나오는 지역으로 백인들이 몰리면서, 돈 많은 원주민을 노리고 계획 범죄를 저지른 백인들이 생겼다. 오세이지 카운티의 원주민들이 백인이었다면 당연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명백히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백인의 야만성을 드러낸 인종차별 학살이며, 백인 다수가 아메리카 인디언을 바라보는 비열하고 악랄한 시선의 결과다.
그나마 연방수사관 톰 화이트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범인 가운데 일부를 체포하고, 사건의 진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만든 감독은 미국 영화의 거장,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존경한다고 경의를 표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대 페르소나인 로버트 드니로와 2대 페르소나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함께 등장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1. 영화 : 플라워 킬링 문
 
영화는 원작 다큐멘터리에서 담을 수 없는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몰리'와 '어니스트'에 집중하는데, 이 두 사람은 각각 원주민과 백인의 운명을 대표한다. '몰리'의 가족은 엄마, 언니, 여동생이 모두 살해 당한다. 이들 외에 이미 수백 명이 살해 당한 '오세이지족'의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몰리는 부족회의를 통해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워싱턴DC로 가서 대통령을 만나 오세이지족의 원통함을 호소한다.
영화의 시각은 3인칭 시각으로 냉정하다. 인물의 감정보다는 사건의 흐름에 집중한다. 3시간 넘는 동안 원주민과 백인 양쪽의 서사가 서서히 쌓이면서 긴장을 높인다. 인물은 몰리와 어니스트에 집중하지만,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 전체에서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백인의 범죄에 집중한다. 백인들 - 빌 헤일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 주류 집단 - 의 조직적 범죄 행위를 지켜보는 건 관객이다. 관객은 오세이지족이 연쇄 살해 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백인들의 사악함을 확인하지만, 오세이지족은 백인 집단의 조직적 범죄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모두 개별적 범죄로 이해하거나, 범죄로 사망한 사안이 아닌 걸로 이해한다. 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 자살로 위장한 살해 등은 오세이지족 개인의 사정에 따른 이유가 있으므로, 백인에 의한 살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백인 범죄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책으로 읽는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강렬하고 직접적이며,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충격이 크다. 몰리의 남편 어니스트는 그의 삼촌 빌 헤일이 시키는대로 자기 아내를 서서히 죽이는 약물을 인슐린에 섞어 투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몰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니스트의 이중성과 모순된 태도는 인간의 악마성을 끔찍하게 보여준다.
어니스트의 삼촌이자 오세이지족 커뮤니티에서 백인 집단을 대표하는 빌 헤일은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백인 지도자이면서, 뒤로는 오세이지족을 절멸하려는 악랄한 음모를 꾸미고, 실제 오세이지 원주민을 한 명씩 살해하는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다. 오세이지족 커뮤니티(인디언 보호구역)로 몰려든 백인들은 석유 채굴권으로 많은 돈을 번 오세이지족에게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세이지족을 위해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을 번다.
1920년대는 여전히 백인의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였고,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혐오하고 경멸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백인이 '인디언'을 위해 굽신거리며 일한다는 건 돈을 벌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 백인 일부에서는 '인디언' 오세이지족을 능멸하고 대놓고 차별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백인 상인들 가운데는 같은 물건을 백인에게 1달러에 판다면 오세이지족에게는 10달러, 20달러에 파는 일이 흔했다. 영화에서도 몰리의 여동생이 살해당하고 장례를 치를 때, 장례식장 주인인 백인이 관 값으로 1,600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몰리의 남편인 어니스트가 불같이 화를 내며 '백인인 나에게 이렇게 바가지를 씌워야 하냐'고 항의하지만, 장례식장 주인은 '오세이지족은 일하지 않고 공짜로 돈을 벌지 않느냐, 우리 백인은 열심히 일하니 그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불모지로 내몬 집단이 바로 백인인고, 백인에게 쫓겨나 황무지에서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우연히 발견한 석유로 돈을 벌자 백인은 다시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난하고 학살한다.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와 잔인함은 '승자 독식'의 역사, 차별과 착취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세이지족 커뮤티니에 들어온 백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미국의 전국에서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하나, 오세이지족의 돈을 어떻게든 뺐으려는 목적이다. 오세이지족에게 물건 값을 비싸게 받는 건 가장 점잖은 편에 속하고, 원주민을 상대로 강도 짓을 하면서 돈과 패물을 뺐는 일이 많았다. 몰리의 남편 어니스트도 복면을 쓰고 다른 오세이지 원주민에게 돈과 보석을 뺐는 강도짓을 여러 번 한다.
이런 백인들의 정점에 빌 헤일이 있다. 그는 오세이지족 커뮤니티에 일찍 들어와 자리 잡았고,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려 노력하고 실제 그런 위치에 올라선다. 그는 앞에서는 오세이지족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기부를 하는 선량한 사업가지만, 뒤에서는 백인들이 오세이지족과 혈연 관계를 맺도록 음모를 꾸미고, 백인과 결혼한 오세이지 원주민을 살해하면서, 오세이지 원주민이 받아야 할 수급권을 승계받는 형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차별과 착취의 현상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지만, 특히 미국에서 유색인종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착취하는 정도가 역사적으로 다른 어떤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보다 지독하다는 건 분명하다.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이긴 직후부터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인종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899년 필리핀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침공, 침략했다. 필리핀 침략 직전에 이미 쿠바를 두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괌의 지배권을 차지했다.
유럽 열강의 식민지 침략이 점차 쇠퇴하는 과정에서, 신생 국가이자 강력한 경쟁 세력으로 떠오른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 침략을 따라 중남미, 남미, 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욕을 가지고 제국주의 정책을 확대했다. 1차 세계전쟁으로 유럽의 국력이 처참한 수준으로 가라앉고, 미국은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거칠 게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는 미국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였고, 미국 자본주의는 '천민 자본주의'의 화신이었다.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최고라는 인식이 미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백인은 그런 의식으로 무장한 채 유색인종을 착취한 것이다.
오세이지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사건은 미국 백인의 일반적 인식을 잘 드러낸다. 백인 우월주의, 인종 차별, 물질 만능 등 자본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으로, 미국 백인의 비뚤어진 사고방식, 돈에 환장한 물질의 노예, 유색 인종을 바라보는 천박하고 저열한 시각, 자기 욕망을 위해 모든 사람을 대상화, 물질화 하는 탐욕스러운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범죄자로서의 백인의 존재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노련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발가벗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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