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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2005년109

2005년-중미산천문대 2005년 4월 초. 정배학교 어린이들이 중미산천문대로 별구경을 하러 갔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가끔 천문대에 놀러가곤 한다. 별을 보는 똥이. 천문학자가 탄생할 것 같다. 천문대 옆 넓은 공간에서 저녁을 먹는 학부모들. 아이들은 천문대에 맡겨놓고 학부모들끼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2012. 1. 29.
2005년-집짓기-배관 2005년 3월 말. 내부 배관 공사. 오배수 파이프와 수도, 온수 파이프 배관. 수도와 온수 파이프는 전부 구리관으로 했다. 요즘도 단독주택에 구리관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단독주택에서 상하수도를 사용할 때, 물소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써서 물소리를 적게 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2012. 1. 29.
2005년-대구친구-수종사 2005년 3월 말. 대구에 살고 있는 똥이엄마 친구 가족이 놀러와서 함께 수종사에 갔다. 다산 선생이 공부하시던 절. 또한 자주 절을 찾아 차를 마시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절. 종루. 응진전. 수종사 전경. 어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계신다. 소원을 담은 기와장. 절 입구에 있는 부처님. 2012. 1. 29.
2005년-집짓기-벽돌쌓기 단열을 위해 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벽돌을 쌓았다. 방수를 끝낸 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벽돌을 쌓는 작업. 내단열을 할 경우, 외벽과의 온도차이 때문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므로, 이보다 더 꼼꼼하게 해주어야 한다. 위의 경우는 바깥쪽에서도 방수를 하고, 스티로폼을 대는 작업을 마쳤다. 2012. 1. 29.
2005년-동기여행-양양 2005년 3월 중순. 여행 사흘째 되는 날, 친구의 부모님이 사놓은 강원도 양양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밤을 도와 7번 국도를 달리며, 우리는 차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을 상대가 있으니 다행이었다.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암자와 등대를 찾았다. 동해바다는 짙푸르고... 동무의 얼굴도 밝게 빛났다. 시원하게 나온 사진 한 장. 회장님. 우리는 이제 기약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정 행복했다. 2012. 1. 28.
2005년-동기여행-석남사 2005년 3월 중순. 가지산 석남사에 들렀다. 여행하는 길에 가장 많이 들른 곳이 사찰이다. 한국에는 사찰이 많고, 특히 유명한 사찰들이 많다. 그만큼 불교의 역사가 깊다는 뜻이겠다. 사찰 들어가는 입구가 이렇게 반듯하고 깔끔하다. 예스러운 맛은 없지만 깨끗하긴 하다. 2012. 1. 28.
2005년-동기여행-통도사 2005년 3월 중순. 여행 둘째날. 통도사에 들렀다. 우리는 여전히 군대이야기를 했고, 그 시절을 그리워했으며, 그때를 잘 견딘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군대에 있을 때는, 군대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전역하고 20년 넘게 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군대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쉽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삶의 무게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힘들고 고달프게 살다갈 인생들이다.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길이며, 바꿀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고난의 길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운명론자.. 2012. 1. 28.
2005년-동기여행-범어사/태종대/용궁사 2005년 3월 중순. 흔치 않을 뿐 아니라, 거의 기적같이,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기와 함께 여행을 했다. 살면서 이런 시간도 있구나 할만큼, 우연과,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상황이었다. 우리는 가족이 대구에 있는 똥이엄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요한이와 기영이를 대구에서 만났다. 대구에 살고 있는 대욱이도 오랜만에 만났고, 84년에 전역하고 20년이 넘어서 다시 만났어도 여전히 반가웠다. 우리는 대구 범어사를 들르는 것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대구 범어사는 이때 처음 가봤다. 범어사의 이름답게 대단한 절이었다. 사천왕. 불이문 앞에 선 기영이. 우리의 영원한 회장님이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불이문. 운치가 있다. 담장 너머 대나무숲이 이곳이 남쪽임을 말해준다. 종루. 스님들이 정진하시는 곳. 삼.. 2012. 1. 28.
2005년-방수 2005년 3월 중순. 겨우내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건물이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날이 풀리면서, 콘크리트 골조만 있는 상태에서 방수 공사를 했다. 방수공사는 매우 중요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물을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과 주방 등은 방수공사를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방수공사를 잘못하게 되면, 집이 급속히 망가지고, 수리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집을 지을 때는 방수공사에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2012. 1. 28.
2005년-정배학교 입학식 2005년 3월 2일. 정배분교 1학년 입학식. 똥이가 입학할 때, 1학년은 6명이 입학했다. 이때 전교생은 28명 남짓. 1학년 6명의 입학은 꽤 큰 힘이 되는 숫자였다. 입학기념사진. 마을 이장, 노인회장, 동문회장 등이 참석해 입학장학금을 주었다. 입학과 졸업 때 이렇게 푸짐한 상품과 상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 어린이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2012. 1. 28.
2005년-다산 생가 2005년 3월 1일. 능내에 있는 다산 생가를 방문하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다산 선생님의 생가가 있다는 것이 좋다. 능내 주변으로 수종사도 있고, 다산이 늘 다니던 일상의 거리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믓해진다. 하지만, 다산 생가 주변은 음식점이 포위하고 있고, 난개발이 되어 볼품이 없어졌다. 다산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땅을 칠 노릇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산 선생이 설계한 도구들이 생가 앞에 놓여 있다. 다산 선생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천재 가운데 한 분이다. 생가 앞의 현판. '실학연수'라 씌어 있다. '여유당' 현판. 다산 선생의 문집이 '여유당전서'이다. 다산 선생님 묘소. 생가 뒤편에 있다. 다산 선생의 묘소에서 바라 본 생가. 다산 생가 주변, 능내의 미니어처. 수원 화.. 2012. 1. 28.
2005년-마을대동회 2005년 2월 말. 마을대동회가 열렸다. 마을 주민들이 회관 앞에 모여 윷놀이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노는 날이다. 회관 앞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한다. 마을회관 옆에 600년 넘은 은행나무와 그 나이만큼 먹은 연못 가운데 소나무. 시골 마을에서나 맛볼 수 있는 숯불에 구워 먹는 삼겹살. 굵은 소금을 훌훌 뿌려서 먹으면,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른다.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은행나무에게 600년은 이제 겨우 간난애일 뿐이다. 이날 만큼은 마을 주민 모두 맘 편하게 놀고 마시는 날이다. 마을주민들은 거의 다 나왔지만, 이른바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은 잘 참석하지 않는다. 윷놀이 삼매경. 먹음직스런 삼겹살. 2012. 1. 28.
2005년-유치원 졸업식 2005년 2월 17일. 똥이가 다니던 정배학교 병설유치원이 졸업식을 했다. 똥이도 졸업장을 받았다. 아주 작은 유치원에서 즐겁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똥이는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친구들과 사이좋게-가끔 싸우기도 했지만-지내며 유치원 시절을 보냈다. 똥이야, 유치원 졸업 축하한다. 2012. 1. 28.
2005년-음식점 2005년 2월 중순. 정배학교 학부모 모임을 음식점에서 가졌다. 도장리에 있는 음식점인데, 마을에 있는 음식점으로는 나름 괜찮은 곳이다. 푸짐하게 담긴 오리탕. 오리고기를 맛없게 만들기는 어렵다. 그만큼 오리고기는 두루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밑반찬. 도시의 식당에서 나오는 밑반찬과는 사뭇 다르다. 집반찬에 가까운, 깔끔하고 맛있는 반찬들이다. 오리주물럭. 고기를 먹을 때, 오리고기는 찾아서 먹고, 돼지고기는 있으면 먹고, 쇠고기는 일부러는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오리고기가 다른 고기들에 비해 몸에 이롭다는 말이겠다. 2012. 1. 28.
2005년-장인어른 장례식 2005년 2월 초. 미국에 이민가 살고 계신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소식을 들은 똥이엄마는 여권과 비자를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어렵게 여권을 구해 혼자 미국으로 갔다. 그 와중에 우리 가족까지 함께 가는 건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미국에 가서 장례식 때 찍은 사진을 몇 장 가져왔고, 막 장례를 치른 후 찍은 사진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는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곳과 죽는 곳이 다르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겠지만, 낯선 곳에 묻힌다는 것이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장인 어른은 미국에 두 번 갔을 때와 처남들 결혼식으로 한국에 두 번 오셨을 때 뵌 것이 전부다. 말은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장인어른은.. 2012. 1. 27.
2005년-아침식사 2005년 1월 23일. 아침 식사. 아마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이었을테고, 똥이엄마가 준비했다. 토스트와 우유. 버터와 딸기잼. 소시지, 달걀부침, 샐러드. 간단한 듯 하지만, 사실 간단하다. ^^ 2012. 1. 27.
2005년-깁스한 팔 2005년 1월 15일. 똥이가 찍어 준 사진. 본격 깁스를 하고 지내는 날들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너무 지루해서 저렇게 깁스를 하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는데, 컴퓨터를 하는 건 그리 불편하지 않았지만,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2005년 들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정초에 팔이 부러진 것과 2005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 등이 큰 변화였다. 여전히 정배리에 집을 짓고 있는 상황이어서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2012. 1. 27.
2005년-부러진 팔 2005년 1월 12일.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퇴원했다. 팔이 부러지고 열흘이 지난 상태. 팔에 붓기도 많이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왼쪽팔은 꼼짝도 못하고 저렇게 90도로 구부리고 있어야 한다. 정초부터 액땜을 심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2012. 1. 27.
2005년-얼음판 2005년 1월 2일. 집-사진에 보이는 연립-바로 뒤에 있는 논이 얼음판이어서 아이들이 놀러나왔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따라나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아이들은 얼음판 위에서도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 어릴 때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몇몇이 모이기만 하면, 창발적으로 놀이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찍는 순간, 나는 얼음판에서 미끌어져 넘어졌고, 카메라를 든 왼쪽 팔꿈치가 얼음판 위에 부딪쳐 말할 수 없이 강한 통증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팔이 너무 아파서 가까운 양수리로 침을 맞으러 갔지만,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니 팔꿈치 부분의 뼈가 부러져 있었다. 결국, 부러진 팔을 수술하고, 통원치료를 하느라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다 나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1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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