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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Redirected

by 똥이아빠 201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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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edirected

국내 미개봉 영화. 별 세 개. 재미있음.
한국 관객이 영국이나 리투아니아의 유머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영화 언어는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또는 그것을 만드는 사회의 배경과 감독의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거나, 옳다거나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는 어느 정도 객관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회적 함의는 또 다르다. 이를테면 '세르비안 필름'과 이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세르비안 필름'은 포르노와 스너프 필름을 결합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고통스럽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세르비안 필름'을 만든 감독의 철학과 세계관을 들여다 보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충격적인 장면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고, 이해하는 관객의 사회적, 정치적 지평도 크게 확장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영화 그 자체의 재미로만 보면 조금은 어설픈 액션 코미디 영화일 수 있다. 그 줄거리를 잠깐 따라가 보자.

영국의 변두리 지역에 사는 양아치 친구들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사설 도박장을 턴다. 그곳에서 돈을 몽땅 빼앗은 다음, 지역 조폭 두목의 손가락에 끼어 있던 반지를 빼내는데, 이 과정에서 어설픈 강도들은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곧바로 조폭 두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양아치들은 돈을 가지고 말레이시아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마침 아이슬랜드에서 폭발한 화산 때문에 비행기는 리투아니아에 착륙한다. 조폭 두목은 부하를 이끌고 리투아니아로 날아오고, 돈을 가진 양아치들은 온갖 고생을 하다 리투아니아 동네 조폭들에게 붙잡힌다.
주인공 폴은 영국 왕실의 근위병인데,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긴다. 이들 양아치들은 겨우 목숨은 건지지만, 다시 러시아군에게 잡혀 포로가 된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은 그다지 짜임새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국에서 발생한 사건은 곧바로 리투아니아로 옮겨가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국의 조폭은 리투아니아 양아치들에게 '다구리'를 당한다. 이건 강남 조폭이 강북에 놀러갔다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얻어 터지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 왕실의 근위병인 주인공과 그 친구들은 리투아니아 즉 동유럽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 러시아 군대에 포로로 잡힌다. 이것들이 갖는 사회적,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
동네 조폭들이 가지고 있는 노름 판돈을 뺏는 일에 영국 왕실 근위병을 끼워 넣은 것은 영국 왕실의 권위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조폭 두목은 주인공이 왕실근위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국 여왕까지 올라간다 해도 기어코 놈들을 잡으라고 명령할 정도다. 영국 왕실을 우습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동네 양아치들이 도착한 리투아니아는 보스니아, 알바니아 등 동유럽에 속해 있는 나라고,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나라의 국민은 서유럽의 잘 사는 나라에 가서 3D 노동에 종사하며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한다.
우리나라로 보면 연변 동포, 베트남,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주해 아주 적은 임금을 받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이들 동유럽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여성들은 심지어 잘 사는 유럽 나라에서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민중은 결국 몸을 팔아야 하는 참담한 지경까지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국적이 리투아니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 
영화 속 리투아니아는 매우 가난한 나라임을 숨기지 않는다. 돈을 탈취한 양아치들은 리투아니아의 한 술집에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영국으로 돈을 벌러 갔다 온 한 리투아니아 사람에게 '지독한 영국놈들'이라는 원성을 듣는다. 즉, 서유럽은 동유럽의 나라들-민중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의 조폭들이 리투아니아에서 전문용어로 '다구리'를 당하는 장면은 통쾌하다. 온갖 폼을 잡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집단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크게 한 방 얻어 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우 조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주인공과 양아치 친구들은 러시아 국경에서 러시아 군에게 체포된다. 유럽의 권위와 힘도 러시아 군대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조롱과 비판이 섞인 장면이다.

영화 초반에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는 것이 조폭 두목의 반지인데, 두목은 자신이 뺏긴 반지를 찾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서 이 반지는 어느 순간 의미가 사라진다. 이것을 영화에서는 '맥거핀 효과'라고 하는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것이다.
액션 코미디를 통해 유럽 사회의 빈부 격차와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는다면 이 영화는 꽤 흥미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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