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1980년생, 안국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훌륭하다. 별 네 개.
단편 두 편을 만들고, 장편으로 만든 데뷔작이 이 정도라면 충분히 기대할 만한 감독이다. 영화의 스타일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과 꽤 비슷하다. 감독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훌륭한 감독의 스타일을 상당 부분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영화는 이전에 나온 '지구를 지켜라'처럼,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품인 '숨겨진 걸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를 지켜라'는 여러 번 말하지만, 한국영화 가운데 걸작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상업적 흥행에는 철저하게 실패했지만, (단, 독립영화 부분에서라면 나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성만큼은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좋다. '생계밀착형 코믹 잔혹극'이라는 주제도 잘 어울린다. 배우 이정현은 아주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했다. ('명량'에 잠깐 등장했지만) 그 옛날 어린 나이에 '꽃잎'에 나와서 충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연기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는 재능 있는 배우다.
이 영화에서도 이정현의 연기는 좋다. 조연들의 연기도 탄탄하고 안정되어 있다. 바로 직전에 본 영화 '함정'과 비교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되어 있고,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그것이 배우들의 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감독의 연출이 상당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감독이 직접 썼는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각색하거나, 오직 연출만을 하는 것은 분명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생계밀착형 코믹 잔혹극'은 모순 형용이다. 코믹한데 잔혹하고, 잔혹극인데 코믹하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블랙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이 형용의 모순은 현실에서 결코 이상하지 않다.
한국의 서민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한 편의 잔혹극보다 더 잔혹하다. 이 영화에서 잔혹한 장면들은 결코 현실보다 심하지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나라다. 이 사실만으로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잔혹한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영화의 주제는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에 있다. 주인공 수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진학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것을 갈등해야 하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나, 남편은 공장에서 산재사고를 당해 노동력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어 수남 혼자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다.
가난한 노동자, 여성, 여성가장, 식물인간 남편, 도시빈민 등 사회의 약자가 가져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수남은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광고지도 돌리고, 빌딩 청소도 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등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수퍼우먼'이 된다.
그럼에도 빚으로 산 허름한 집 한 채가 재개발이 되면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을 듣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인으로 이어진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인을 하게 되는 수남은, 싸이코패스일까, 아니면 그저 어리숙하고 무지한 여성일까. 그것이 중요하진 않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주택 재개발은 곧 '일확천금'을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재개발 찬성과 반대 집단의 갈등은 첨예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죽고 죽이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용산 재개발 참사를 보라!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겨우 4만 명 정도만 봤다는 것이 퍽 안타깝다. 이 영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란다. 아울러 '지구를 지켜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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