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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글과생각_2020_1학기_기말시험

by 똥이아빠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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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명>

1. 교재 1(고전작품)의 작품 중 두 편을 골라 그 글들의 장점(서술방식이나 주제 등)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논지 전개에 필요한 부분을 반드시 작품에서 직접 인용할 것)(30)

2. 한용운의 <조선 독립에 관한 감상의 개요>를 읽고, 이 글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서술하시오.(20)

3. <언문 창제 반대 상소문><훈민정음 해례 서문>의 내용을 논제별로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20)

 

 

1. 교재 1(고전작품)의 작품 중 두 편을 골라 그 글들의 장점(서술방식이나 주제 등)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논지 전개에 필요한 부분을 반드시 작품에서 직접 인용할 것)(30)

 

두 사람의 죽음을 다룬 고전 농아광지유수묘지명은 조선 후기에 발견하는 개인생명에 관한 뛰어난 글이다. 조선 후기는 근대의 시작이자 개인을 발견하는 시기다. 우리가 아는 중세는 왕조 중심의 대가족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계급사회였다. 흔히 사농공상으로 구분하는 중세의 계급은 왕족, 양반, 평민, 천민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각자의 계급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16세기 들어 임진년 7년 전쟁(임진왜란)으로 조선은 거대한 변화를 겪는다.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전쟁을 겪으며 무수히 죽고 다치며 삶의 터전을 잃는다. 선조를 비롯해 조선 정부를 구성하는 양반은 무능했고, 전쟁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백성의 불만은 팽창했다.

봉건 왕조에서 왕의 존재는 신에 버금가는 절대적 존재였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백성은 왕과 정부의 무능에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않았고, 왕과 양반은 더 이상 절대적 존재로 인식되지 않기 시작했다.

농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상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조선 후기에는 지역을 이동하는 물류와 상인의 활동이 많아지고, 정보는 더욱 빠르게 전달되었다. 양반 계급에서도 기존의 훈구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실제의 삶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해야 한다는 실학이 태동하고, 실학은 특히 백성의 삶에 천착해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양반 계급에 속했지만, 일찍이 외국에서 들어온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양반 지배계층의 관리로는 드물게 백성의 삶을 옹호하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자주 올렸던 정약용은 당대 주류 세력이자 지배 집단이었던 노론의 탄핵으로 19년 동안 강진으로 유배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농아광지는 다산의 아홉 번째 아이인 의 죽음을 두고 쓴 글이며, 어린 자식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가 느끼는 처연함과 안쓰러움, 애틋함이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읽어도 깊은 감동이 있다.

조선시대 아버지는 자식에게 근엄하고 위엄을 지키며, 다정다감하지 않았을 거라는 편견을 깨는 정약용의 글은, 무엇보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자식을 향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나는 글이어서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세 살짜리 아이는 홍역을 앓다 마마(천연두)까지 겹친 병으로 악창(낫기 어려운 부스럼)이 생겨 치료를 못해 죽게 되었다. 자식을 키운 부모라면 아이가 몸에서 열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안쓰럽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아이가 위중한 병에 걸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까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게다가 귀양살이를 하는 도중에 아이가 병으로 죽게 되었고, 멀리 떨어져 아이의 죽음을 볼 수 없었던 다산은 아이와 맺은 작은 약속을 기억하며 짧은 인연을 안타까워 한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내가 나을텐데, 나을텐데했던 아이의 그리움과, 소라껍데기를 보낸 것을 받지 못하고 죽었던 아이의 깎아낸 것처럼 예쁜 얼굴과 코 왼쪽에 검은 점, 웃을 때 드러나는 흰 이를 기억하는 다산의 글에서 눈물이 뚝뚝 듣는 느낌을 받는다.

 

이건창의 유수묘지명은 지극히 평범한 한 노인의 삶을 기록한 묘지명이다. 이건창의 집 가까운 곳에 사는 윤여화의 빈집에서 숨진 일흔 노인은 이름이 군업이지만 본명인지는 알 수 없다. 노인은 30년 전, 홀몸으로 떠돌다 윤여화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짚으로 신을 삼는 것뿐이었다.

군업이 중년의 나이에 떠돌이가 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그의 삶이 순탄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가 30년을 한결같이 신세를 지는 윤여화의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 그는 혈혈단신이었거나, 그에게도 부모와 형제가 있었으나 절연하고 고향을 떠난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혼인까지 하고 아내와 아이도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왜 혼자 떠돌았을까. 이 의문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노인은 순박하고 말재주도 없으며, 다른 재주도 없어 날마다 신을 삼는 것이 오로지 하는 일이었는데, 신을 삼아 집주인 윤여화에게 작게라도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인 것을 알 수 있다. 노인은 신을 삼으면 그것을 윤여화에게 건네고, 윤여화는 신을 팔아 쌀을 마련하는데, 신은 잘 팔리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어서 쌀을 마련하지 못하면 노인은 며칠이고 굶으며 지냈다.

마을 사람들이 간혹 돈을 내지 않고 신을 가져가도 돈을 달라 재촉하지 않았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로지 신만 삼을 뿐, 세상살이에 초연했다는 묘사는 노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이건창은 유 노인이 살았던 삶이 이름 있는 성현의 삶과 같거나 그들보다 오히려 낫다고 말한다. 노인은 집안에서 오로지 신을 삼아 사람들에게 신도록 했고, 노인은 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노인이 삼은 신을 신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니 그것이 성현의 행하고자 하는 도()와 같으며, 성현은 스스로 도를 행하지 못하거나, 사용하지 못했으나 노인은 도를 알지 못하나, 그의 한결같은 행동이 저절로 도를 행한 것이니, 스스로 노동해 끼니를 잇고, 한 가지 일로 죽을 때까지 일관하니 노인 자신은 깨닫지 못해도 그 자체로 도를 행한 것이다.

노인이 어리석다고 말하거나, 평범하지 않다고 말해도 그것이 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인은 무위자연의 삶을 살았고,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섭섭할 일은 아니다.

 

다산의 아이의 죽음과 이건창이 바라본 유 노인의 죽음은, 같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아이의 죽음은 어른의 비극으로 가슴에 새겨지고, 노인의 죽음은 긴 시간을 살아온 한 인간의 존재 의미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2. 한용운의 <조선 독립에 관한 감상의 개요>를 읽고, 이 글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서술하시오.(20)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인류의 인식은 점차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에서 가족, 부락, 국가, 세계로 진보한다.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열패약육강식의 이론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天使國)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 백, 몇 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예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 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유럽 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황제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 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 선언, 체코의 독립, 아일랜드의 독립 선언, 조선의 독립 선언이 그것이다.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일본은 조선의 민의를 무시하고 몇몇 아부하는 무리와 더불어 합방이란 흉포한 짓을 강행했다. 조선 민족은 부끄러움을 안고 수치를 참는 동시에 분노를 터뜨리며 뜻을 길러 정신을 쇄신하고 기운을 함양하는 한편 어제의 잘못을 고쳐 새로운 길을 찾아왔다.

미국대통령 윌슨 씨는 독일과 강화하는 기초 조건, 14개 조건을 제출하는 가운데 국제 연맹과 민족 자결을 제창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 프랑스, 일본과 기타 여러 나라가 내용적으로 이미 국제 연맹에 찬동했으므로 그 본바탕, 즉 평화의 근본 문제인 민족 자결에 대해서도 물론 찬성할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자존성은 항상 탄력성을 가져 팽창의 한도, 즉 독립 자존의 길에 이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오직 군함과 총포의 수가 적은 이유 하나 때문에 남의 유린을 받아 역사가 단절됨에 이르렀으니 누가 이를 참으며 누가 이를 잊겠는가. 나라를 잃은 뒤 때때로 근심 띄운 구름,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도 조상의 통곡을 보고, 한밤중 고요한 새벽에 천지신명의 질책을 듣거니와, 이를 능히 참는다면 어찌 다른 무엇을 참지 못할 것인가.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3. <언문 창제 반대 상소문><훈민정음 해례 서문>의 내용을 논제별로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20)

 

() 조선은 지금까지 대국(중국)을 섬기며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랐는데,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으니 중국이 알게 되면 비난당하고 부끄럽지 않겠는가.

 

()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다. 옛사람이 그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했다. 대개 중국 이외의 나라의 말은 그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다. 중국 글자를 빌려 통용하는 것은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낀 것과 같이 서로 어긋나는 일이다. 모두가 제각기 처해 있는 바에 따라 편안케 해야 할 것이지, 억지로 똑같게 할 것이 아니다.

 

() 중국에서는 기후나 지리가 달라도 따로 문자를 만들지 않고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같은 오랑캐들만이 따로 문자를 만든다. 우리는 문물과 예악이 중화에 견줄 만한데, 언문을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진다면 문명의 큰 해가 된다.

 

() 우리 동방은 예악과 문장이 중국에 견줄 만하나, 다만 방언 이어는 중국과 같지 않다. 글을 배우려는 이는 그 뜻의 깨우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사람은 곡절을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옛날에 신라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 관청이나 민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모두 한자를 빌려서 쓰는 것이므로 혹은 껄끄럽고 혹은 막힌다. 이두는 비루하고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 있어서는 그 만분의 일도 통달치 못하는 것이다.

 

() 한자는 예로부터 써오던 폐단 없는 글자를 버리고 따로 속되고 이로움이 없는 글자를 만드는가. 27자의 언문만으로 입신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고심하고 마음을 써서 성리의 학문을 배울 것인가. 언문을 쓰면 오랫동안 쌓아온 학문 숭상의 교화가 사라질 것이다. 언문은 한자와 조금도 관련이 없고 오로지 길거리의 속된 말에만 쓰인다. 학문을 위해서도 손해가 되고, 정치에도 이로움이 없다.

 

()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중국의 고전을 본떴고, 소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는다. 삼재의 뜻과 음양의 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28 글자로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면서도 요긴하고 자세하면서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들으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한자의 운은 청탁이 능히 구별되고, 악가는 율려가 고르게 된다. 사용하는 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가서 이르지 않을 곳이 없다.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 새로운 것을 만들 때는 재상부터 많은 관리에 이르기까지 함께 의논하고, 중국과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갑자기 하급관리 십여 명으로 배우게 하고 갑자기 세상에 공표하려 하니 후세 사람들의 공론이 어떠하겠는가. 언문은 국가의 시급한 일도 아닌데 급히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 전하께서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자세히 덧붙여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분부하시니, 이에 신(정인지)이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 이선로 등과 더불어 감가 여러 해와 예를 지어서 이 글자에 대한 경개를 서술하였다. 이 해례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우치기를 바랐으나, 그 연원과 정의의 신묘함에 대해서는 신 등이 능히 펴 나타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백왕을 초월하신다. 정음을 지으심도 선인의 서술을 이어받음 없이 자연에서 이룩하신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않은 데가 없으니, 이는 인위의 사사로움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천하 사물의 궁극적인 이치를 밝혀 모든 일을 성취하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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