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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소설론과 작가_2020_3학년_대체과제물

by 똥이아빠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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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명>

강의와 교재에 소개된 고소설 작가 네 사람(김시습/허균/김만중/박지원)의 문학관 및 작품 등에 관하여 설명하시오.(30)

 

김시습은 르네상스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새로운 시대가 막 열리던 조선 초기였고, 이성계는 고려의 무신 신분으로 왕조를 뒤집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호로 역사를 시작했다. 지배 권력은 정권과 권력의 정당성,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고려의 체제에서 운용하던 제도와 종교, 문화를 급진적으로 바꾸게 된다.

고려의 멸망은 내부의 권력투쟁이 직접 원인이지만, 이미 무신정권이 오래 이어지고, 원나라의 간섭 등으로 국내 정세는 혼란에 빠지면서 민중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의 핵심 지배세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고려에서 조선의 체제변화는 아래로부터의 변혁이 아닌, 체제 내부의 변화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지배 권력의 성분에서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김시습이 살았던 15세기는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어 예술, 과학을 비롯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르네상스 인간으로 대표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태어난 것도 15세기였으며, 김시습보다 약 17년 늦게 태어났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의 천재성을 칭송하면서도 정작 우리 역사의 훌륭한 인물인 김시습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김시습의 등장은 조선초기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세종의 등장과 빼놓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김시습이 르네상스인간이라면, ‘세종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였다. 세종이 집권하던 15세기 초반(1410년대)부터 중반까지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글이 탄생했고, 과학이 급격히 발달했으며, 과학의 발달과 함께 농사법과 사회제도의 정비도 이뤄졌는데, 이런 변화의 중심에 백성즉 민중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도 르네상스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아래(민중)로부터의 변화라는 점에서, 유럽과 조선의 15세기는 우연한 일치를 보이지만, 사실 이런 변화는 우연이 아닌,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시적 진화 또는 동시적 질적 변화에 해당한다.

김시습의 등장은 13세기 이후 고려의 무신 정권과 조선 역시 무신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시작한 것에 대한 변증법적 질적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성계의 손자인 세종이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무인으로 세운 정부를 문인의 정부, 문화의 정부로 바꾸고자 한 변화의 과정과 같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서른 살 전후에 쓴 소설이다. 그는 이때 이미 전국을 떠돌며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무수히 목격했고, 그가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창작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 시기에 명나라에서 전등신화같은 새로운 작품이 등장했고, 김시습이 이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신화(新話)’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즉 김시습은 자신의 작품이 기존 고려말, 조선초기에 다른 사람이 창작한 작품과 다르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명나라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작품(만복사저포기)도 있다.

김시습의 작품 금오신화가 새로운 작품이라는 의미는, ‘한국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형식에도 있지만, 작품 모두가 민중의 삶과 사회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만복사저포기에서는 주인공 양생이 어여쁜 처자를 만났으나 그 처자는 왜구의 노략질에 희생당한 양민이었고, 그 혼령이 양생 앞에 나타나 인연을 맺은 것이다. 양생이 처자를 따라가니 그곳에는 다른 젊은 처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도 역시 왜구의 침략으로 목숨을 잃은 처자들이었다.

양생이 처자의 혼을 달래 혼귀가 이승을 떠나도록 한 것은, 민중의 고통과 한을 풀어주는 것이며, 이때 이미 전라도 쪽에도 왜구의 침략이 자주 있었다는 걸 뜻한다. 또한 이들 젊은 여성들을 귀신으로 등장시키지만, 여성들의 발언을 칠언율시로 드러내면서, 그때로는 매우 드물게 여성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생규장전은 양반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슬픈 이별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이생의 아내 최랑이 죽어 혼귀로 나타나는 점, 1361년 개성을 침략한 홍건적으로 인한 백성의 고통이 드러나고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평양 사는 부자 홍생과 그의 친구 이생이 부벽정 아래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노는 가운데 시를 짓는데, 시녀를 거느린 귀족 처자가 나타나 홍생과 이생에게 먼저 술 한 잔을 하자고 말한다. 이런 여성의 태도 역시 이때로 보면 대단한 파격이다.

처자는 화답시를 지어 홍생에게 건네고, 그 시를 읽은 홍생은 처자의 높은 안목에 놀라며 정체를 궁금해 묻는다. 처자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씨 즉 기자가 선조라고 말한다. 그 처자는 신선이었고, 홍생은 처자에게 반했으나 선계에 오를 수 없으니 결국 홍생은 상사병을 앓다 죽는다.

이 작품에서 홍생과 신선 처자가 지은 시는 모두 부벽정으로 시작한다.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고려와 그 이전의 역사에 관한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김시습은 세종의 덕을 보긴 했으나, 그 전에 이미 세조가 권력을 찬탈한 사건을 통해 조선에 대한 애착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권력과 세상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한편, 과거의 역사를 일정 부분 미화하고 있다.

남염부주지는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는 박생이 겪는 꿈이자 상상의 이야기다. 박생은 꿈속에서 염부주즉 화염이 불타는 지옥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는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염부주의 왕 염마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박생과 염마가 나누는 대화는 오늘의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현실적인 내용이며,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담고 있다.

용궁부연록은 고려 때 개성 사람 한생이 겪은 일화를 그리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용왕에게 불려가 용궁의 상량문을 짓게 되고, 용왕을 비롯한 세 명의 신과 함께 앉아 시를 짓고 용왕의 신하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를 듣는다. 바닷속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 물고기를 의인화 한 내용 등은 모두 당대 최초의 작품이다.

다섯 작품의 공통점은 주인공의 이름이 모두 으로 끝나는데, 이건 아무개 씨라는 평범한 명사로, 주인공들이 모두 특별한 사람,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인 것은 혁명적인 표현이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 얼마 전, 세종은 한글을 반포했다. 김시습은 누구보다 앞서 세종의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한 본질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이미 민중의 역량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 지배세력은 성장하는 민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도를 개혁하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김시습은 자신의 처지 평생을 벼슬 없이 떠돌이로 살았던 에서 당대 민중의 삶과 가깝게 지켜볼 수 있었고, 이들이 겪는 핍박과 고통에 공감하고 있었다. ‘금오신화에서도 처절한 고통을 당하는 민중의 삶을 드러내는 것 역시 그의 삶과 관련이 있다.

김시습이 르네상스인간이라는 건, 그의 작품이 유럽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의 핵심인 인간의 발견에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천년 동안 종교 권력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인간’, ‘개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으로 르네상스를 시작했다.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이 뒷받침되면서,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는 급격히 발전하는데, 김시습의 시대는 여전히 역사 발전이 더뎠고, 그것이 김시습과 시대의 불화가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허균은 문제적 인간이다. 그는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불행으로 점철했고, 허균 자신도 불행하게 죽었다. 그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로 인해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고, 많은 사람이 고통당했다.

그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것은 자타 공인이었으니,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역적이 된 이후 모두 불태워지고, 겉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역시 그가 쓴 작품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적어도 한문 소설로 존재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허균의 작품 세계는 詩經의 정신 회복 즉 國風, 性情雅訟, 理路의 문학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으로 바라보는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 강릉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생가에 갔을 때, 그곳에 있는 詩碑 가운데서 시 한 수를 읽었는데, 읽고나서 의문이 많아 혼자 해석해보았다.

 

호정(湖亭)-허균(許筠)

 

煙嵐交翠蕩湖光(연람교취탕호광) :

안개와 남기 푸른고, 호수물결 넘실

細踏秋花入竹房(세답추화입죽방) :

가을 꽃 밟고 밟아 대나무 방에 들었다

頭白八年重到此(두백팔년중도차) :

머리 센 지 팔 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와

畫船無意載紅粧(화선무의재홍장) :

그림배에 붉은 단장 싣고 갈 뜻 없도다

 

이 시는 허균이 외지에서 벼슬을 하거나, 귀양에서 8년 만에 집에 돌아온 소회를 적은 것으로, 허균의 심정이 잘 드러난 시로 읽힌다. 하지만, 이 시를 여기 번역한 그대로 읽으면 아무 감흥이 없다. 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허균 생가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허균이 쓴 시를 번역하면 아래 네 줄에 불과하다.

1) 안개와 남기 푸른고, 호수 물결 넘실

2) 가을꽃 밟고 밟아 대나무 방에 들었다

3) 머리 센지 팔 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와

4) 그림배에 붉은 단장 싣고 갈 뜻 없도다

허균은 시를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써왔다. 그의 다른 시를 보면,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생생한 현실감과 현장감이 보이는데, 이 시는 그런 면에서 추상적 느낌이 강하다.

1)연에서 안개와 남기 푸른고, 호수 물결 넘실이라고 했다. 안개는 주로 아침에 피어오른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현상은 대기와 물의 온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데, 허균의 집 바로 옆이 경포호여서 이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봄, 가을, 초겨울 아침이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남기'는 어떨까. 남기는 안개와는 또 다르다. 남기는 호수보다는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옅은 안개나 구름같은 부연 현상을 말하는데, 허균의 집에서는 저 멀리 태백산맥 줄기가 보인다. 그 산줄기에 아침, 저녁으로 남기가 드리우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호수의 물결이 넘실댄다는 표현은 원문과 약간 다른데, 호수에 빛이 넘실거리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이것은 우리말로 '윤슬'이다. 빛을 받은 호수의 표면에 비늘같은 햇살이 반짝거리는 것이다.

2)연에서 가을꽃 밟고 밟아 대나무 방에 들었다고 했으니, 1)연에서의 호수는 가을 호수다. 즉 안개와 남기는 가을의 아침에 바라보이는 풍경임을 알 수 있다. '가을 꽃 밟고 밟아'라는 표현은 좀 과격하다. 여기서 느낌은 '세답' 즉 조심스럽게 집 밖의 길에 떨어진 꽃을 밟았다고 보는 것이 좋다. 실제로 혀균의 생가 바로 옆에는 아주 넓은 소나무 숲이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는 허균의 개인 도서관이 있던 '호서장서각' 자리다. 허균은 집에 있을 때 책이 무려 1만권이나 되는 여기 장서각에 와서 책을 읽으며 근처를 산책하곤 했는데, 8년만에 돌아온 그의 감회가 어떨까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3)연에서 머리 센 지 팔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왔다고 했다. 허균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만, 벼슬을 다섯 차례하고, 세 차례의 유배를 겪었다. 그의 삶이 파란만장한 것은 그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광해군이 그를 아껴 요직에 앉히려 했으나, 허균의 자유로운 영혼은 종종 그의 반대파 수구세력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가 유배지 또는 벼슬에서 8년만에 고향 집에 돌아왔으니 마음은 허허롭고, 시원하며, 쇠굴레를 벗은듯 몸과 마음이 가볍지 않을까.

4)연은 그래서 그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림배에 붉은 단장 싣고 갈 뜻 없도다'라는 내용은 그러나 이 시에서 가장 난해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뜻을 모르면 이 시의 느낌도, 맛도 알 수 없는데, 학교에서는 이 시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이 마지막 문장은 그가 아직은 죽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그림배''붉은 단장'과 연결된다. , '붉은 단장'은 상여를 말하니, 상여를 실은 배는 울긋불긋한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림배'는 상여를 실은 배를 상징한다.하지만 이 문장에서 '홍장'이 사람의 이름이라면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강릉에는 경포호와 관련한 옛날 이야기에 '홍장'이라는 기생의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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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8경 가운데 5경으로 홍장야우(紅粧夜雨)가 있다.

홍장은 조선 초기에 석간 조운흘 부사가 강릉에 있을 즈음 부예기로 있었던 여인이었다.

어느 날 모 감찰사가 강릉을 순방했을 때, 부사는 호수에다 배를 띄어놓고 부예기 홍장을 불러놓고 가야금을 켜며 감찰사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미모가 뛰어난 홍장은 그날 밤 감찰사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그 감찰사는 뒷날 홍장과 석별하면서 몇 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언약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러나 한 번 가신님은 소식이 없다.

그리움에 사무친 홍장은 감찰사와 뱃놀이하며 즐겁게 놀던 호수에 나가 넋을 잃고 앉아서 탄식하고 있는데, 이때 자욱한 안개사이로 감찰사의 환상이 나타나 홍장을 부른다.

홍장은 깜짝 놀라면서 너무 반가워 그쪽으로 달려가다 그만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때부터 이 바위를 홍장 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안개낀 비 오는 날 밤이면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한다.

꽃배에 임을 싣고 가야금에 흥을 돋우며 술 한 잔 기울이던 옛 선조들의 풍류정신을 회상하기 위한 기념으로서의 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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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림배''꽃배'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꽃배''홍장'은 바로 위의 이야기처럼 경포호에서 양반들이 놀던 풍경인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연의 해석은, '홍장을 꽃배에 싣고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가 되겠다. , 세파에 시달리다 고향에 돌아오니 풍류를 즐기며 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 아닐까.

시를 나름으로 해석하면서, 허균의 마음, 허균의 사람됨을 극히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인물이지만, 글쓰기에서는 분명한 업적을 이루었다.

 

김만중은 당대 지배계급이 사용하던 한문 대신 한글로 이야기를 창작한 특이한 인물이다. 한글로 창작한 것은 물론, 한글이 진정한 조선의 문자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한글로 창작한 바탕에 어머니 해평 윤씨에 대한 지극한 효도의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무렵 세간에서는 양반 여성이나 중인 계층에서 한글(언문)로 지은 이야기책이 널리 퍼지고 있었고, 김만중의 어머니 해평 윤씨도 이런 이야기책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 자란 김만중은 어머니의 독려와 지지에 힘입어 벼슬길에 오르고, 나름 성공한 관료가 되지만, 파벌 세력의 권력투쟁 속에서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벼슬에서 쫓겨나 유배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첫 번째 유배지인 선천에서 쓴 한글소설이 구운몽인데, 이 작품은 어머니 해평 윤씨를 위해 쓴 것이라고 알려졌다. 불교 세계관에 바탕한 이 소설은,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세계관을 드러내며, 삶의 근원적 질문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성진과 양소유는 실제 누가 진짜인지를 알 필요가 없는 존재다. 어느 쪽이든 상대방의 삶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경은 결국 현실의 자아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세계 또는 자아와의 분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양소유는 권력, 재물, 미인을 모두 소유하는 세속의 부러울 것 없는 인물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는다. 죽음을 초월하고, 세속의 욕망을 극복하는 길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내용은, 17세기 조선에서 불교가 민중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반증한다. 조선은 건국하면서 고려의 부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로 불교를 지목했고, 불교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철학인 유교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세속에 있던 사찰과 중은 모두 산속으로 들어가고, 불교는 핍박을 받거나 적어도 더 이상 조선의 백성과 문화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조선 시기 전체에 불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김만중이 한글로 작품을 쓰고, 소재를 불교에서 가져온 것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작품이 백성과 여성에게 두루 읽히길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 무엇보다 김만중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한글을 조선 백성의 문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 한자가 지배계급의 문자라면, 한글은 조선 백성의 문자라는 걸 의식하고 있었고, 한글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한글 작품을 썼다는 데 있다.

김만중은 두 번째 유배지인 남해에서 사씨남정기를 창작한다. 이 작품은 구운몽과는 다른, 본격 소설의 구조를 갖는다. 등장인물이 현실적이고, 욕망을 내재한 구체적 인간이며, 이들의 서사는 현실에서 있을 듯한 이야기다. 또한 선과 악이 분명하고,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 대중의 현실적 욕망을 충족한다.

이 소설은 현실에서 숙종과 희빈 장씨 그리고 인현황후 사이의 사건을 풍자하고 있어, 현실비판 소설로도 평가할 수 있다. 작품에서도 남자 주인공 유연수는 주체적이지 못한 반면, 현모양처 사정옥과 유연수의 첩 교채란은 훨씬 입체적이면서 서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여성을 선명하게 대비한 것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으나, 여성이 주인공으로, 선과 악으로 입체적 인물로 드러나는 것은 획기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교 사회라는 일정한 제약 속에서 한글로 창작하고, 한글의 중요성, 한글 사용의 당위를 앞서 주장한 김만중의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당대 민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17세기 민중의 각성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지원은 조선 후기 새로운 사조인 실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홍대용처럼 과학 지식에 관심이 많았고 박학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이론을 받아들였고, 원자론을 주장했다. 서양에서 유물론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했지만 2천년 가까이 맥이 끊겼다가 18세기에 다시 등장한 것에 비해 조선에서 18세기에 실학의 등장과 함께 유물론을 주장하는 지식인이 나타난 것은, 중국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았어도 진보적인 태도가 분명하다.

지배계층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실사구시, 실학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동안 집권세력(권력)이 지향한 지배철학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며, 외부(중국)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문물인 과학지식과 서양 종교가 바깥에서 작용하는 압력이라면, 조선 내부에서는 상업의 발달,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산성의 향상, 민중의 신분제도에 관한 저항 등이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지원은 양반전이나 허생전같은 작품으로 지배계급인 양반의 권위를 비판, 조롱하는 한편, 계급의 차이를 만들고 있는 권위와 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양반전에서 양반은 실사구시의 자세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까다로운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겉치레와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허생전에서는 공부만 하던 선비 허생이 아내의 질책을 듣고 집에서 뛰쳐나와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번다는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이때는 이미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점매석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불법이지만, 이때는 현실에서도 거상들이 실제 매점매석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음을 반영한다.

허생이 만난 도적들은 피폐한 삶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었다. 이것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와 토호들의 가렴주구가 얼마나 심한가를 드러내는 장면이며, 이들을 끌고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홍길동전의 오마주이거나 패러디다.

박지원은 친척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열하(허베이성 청더)를 다녀온 기행문을 쓴다. 그의 열하일기는 실학자의 눈으로 본 기행문이자, 새로운 세계를 만나 얻는 놀라운 정보와 지적 자극의 기록이다. 지금 같으면, 인천에서 배를 타고 텐진까지 한번에 가면 빠르고 쉬웠겠지만, 뱃길이 열리지 않았던 때라 한양에서 평양, 신의주를 거쳐 육로로 연경(베이징)까지 갔고, 거기서 다시 건륭제가 있는 허베이성 청더 피서 산장을 찾아갔다.

불과 5개월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박지원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한양에서 열하까지 왕복 6,000(2,400km) 길을 5개월에 걸쳐 다녀왔고, 이때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은 그의 세계관을 수정하거나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기행문 형식으로 남긴 기록은 청나라와 조선을 비교하는 한편,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서 좋은 점과, 우리의 나쁜 관습을 타파하고, 제한적이긴 해도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실사구시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이면서, ‘열하일기는 그 자체로 기행문학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갖는다. 18세기 청나라의 상황과 조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고, 청나라 황제 건륭제를 만나고, 그곳에서 경험한 장면은 르포르따주의 훌륭한 전범이기도 하다.

 

김시습, 허균, 김만중, 박지원은 당대에서 매우 뛰어난 지식인이자 작가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대와 불화한 인물이라는 것이고, 시대를 앞서간 그들이 시대와 불화한 것은 필연적이다. 이들은 대개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보기 드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조선 시대를 빛내는 훌륭한 작품으로 남았다.

조선의 문학은 이들에게 많이 빚지고 있으며, 이들 천재들의 삶과 문학은 새롭게 해석되고 발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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