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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22_2학기_현대시론 과제물

by 똥이아빠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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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학년도 학기 중간과제물(온라인제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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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명 : 다음 시집 중 한 권을 선택하여 읽고 아래 지시사항을 반영하여, 시집을 소개하는 글을 서간문 형식으로 작성하시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깊은 절망 속에 핀 한 송이 꽃

 

P,

늦가을 비가 내리고 바람이 스산합니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낍니다’(p.11) P형이 사는 도시는 아직 여름의 꼬리가 남아 있겠죠?

지난번 이야기에서 아쉬웠던, 기형도에 관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그는 안양천 뚝방촌에 살았죠. 그의 고향은 연평도, 섬이었고 아버지는 북에서 피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로 세 명의 형과 세 명의 누나가 있는 막내였고, 그가 다섯 살 무렵 연평도에서 시흥 소하리로 이사했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실패했고,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는데, 결국 기형도도 뇌졸중으로 사망했죠. 이 병에 대해 기형도는 가족력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형이 말한 입 속의 검은 잎은 유고 시집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를 출판하기 직전, 요절했습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p.26)라고 말합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p.37) 그는 고백합니다. 그건 단지 그가 가난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p.13) 시인은 사소한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사건은 시인의 영혼과 생애를 뒤흔든 가장 심각하고 충격인 사건이라는 걸 형도 잘 알 겁니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p.93)며 시인은 죽은 누이를 애달파 합니다.

우리는 시인이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 사이의 의미를 통해 비유와 상징을 이해합니다. 시인이 그리는 이미지는 추상의 영역에서 상징화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고뇌의 흔적이자 삶의 궤적으로 남긴 시어입니다. 서른 살도 살지 못한 청년이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p.49)라고 선언하게 만든 삶과 시간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가 이 시집을 남겨서 퍽 다행이면서 슬픕니다. 카프카는 그의 친구에게 내가 죽으면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에게 남겨지는 물건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작 시인은 이 시집의 출판을 준비하다 요절했으나, 이 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리라 기대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했듯, 기형도도 이해하지 못할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시인을 이해하기에는 사람들은 다들 행복하고, 열정이 넘치며, 욕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달라진 안양천 뚝방에 가보셨나요? 지금은 맑은 물이 흐르는 그 뚝방에 욕지기 나는 오물이 흘러 내려가던 근대화의 시간을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개화한 시인이 살던 마을에서, 시인의 가난과 설움과 비통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시집만이 유일하게 그때의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빈곤과 비통의 시간을 애써 지우려 합니다. 그 자리를 메우고, 높은 아파트와 공장과 대형 쇼핑몰을 지어 과거를 화석화합니다.

겉모습은 달라졌으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은 과거에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두려울 뿐입니다.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p.50)고 시인은 말합니다. 자기의 어린 시절이 과거의 그 뚝방길, 가난한 동네에서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유년의 기억에서 슬프고 아련한 기억을 꺼냅니다.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시인은 그 기억을 절절하게 노래합니다.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p.134)

이 시를 읽으면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면, 아이는 문가에서 엄마가 오길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엄마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상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던 유년의 기억, 저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오래 간직합니다. 아니,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건 마치 화인처럼 그의 영혼에 새겨진 이미지와 같습니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p.95)라고 시인은 유년의 겨울 바람을 기억합니다. 찬바람이 문풍지를 두드리고, 문틈 사이로 사납게 비집고 들어오는 낡은 판잣집의 기억, P형은 없으신가요?

저는 형이 바람의 집’(p.95)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시인의 유년을 통해 시인의 정신세계와 경험세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시어의 바탕이 되는 정서를 통해 시인과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유년으로 살았던 60년대는 몹시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시인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이 시에 깊이 공감하는 건, 그들도 시인과 비슷한 처지였거나,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가능합니다.

가난은 우울과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어머니는 가장으로 가족을 부양하느라 채소를 팔러 나가서 늦게 돌아옵니다. 누나, 형들도 모두 저마다 공장에 다니거나 학교에 다니고, 막내인 시인은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안양천 개울물에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접어 배를 띄웁니다.

 

시인은 특히 유년 시절의 기억을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유년 시절은 슬픔과 고통으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 아이들은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p.14)거나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p.16)거나,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p.16)거나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p.37)거나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p.77)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바람의 집’(p.95)엄마 걱정’(p.134)은 시인의 유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김현이 정의한 것처럼, 깊은 우울과 비탄이 안양천의 악취나는 개울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바람의 집은 유년의 정서를 드러내는 핵심입니다. 동지 무렵의 날카로운 찬바람이 방문을 흔들고, 어머니는 시퍼런 무를 깎아주는데, 이 시의 단어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삭막합니다. 이 겨울의 이미지는 시인 자신이 유년을 들여다보는 이미지를 표상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들이 우울과 비탄의 정서를 드러내는 건 시인의 과거와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시인이 죽기 전까지, 시만큼이나 천착했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입니다.

시인은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책을 즐겨 읽었고, 철학의 심연으로 빠져들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시어들이 때로 안개 속을 걷는 듯 모호하고, 난해한 면을 드러내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이를테면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p.68)로 시작하는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전체는 철학적 알레고리로 가득합니다. ‘바람은 그대 쪽으로’(p.65)는 어떤가요? 역시 철학적 메타포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방식은 그의 삶, 유년, 생애를 한편으로 하고, 그가 천착한 철학을 결합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건 형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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