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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22_2학기_고소설론과 작가

by 똥이아빠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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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설론과 작가 중간과제물

 

학과 : 국어국문과

이름 : 백건우

 

김시습

작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먼저 작가가 쓴 작품의 내용과 핵심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시대 배경을 알아야 한다. 작가가 살았던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상황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작품에 녹아들며, 작가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작품의 내용도 달라진다.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는 신화(新話)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인간-비인간/귀신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때 비인간/귀신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달리 인간세상의 길흉화복을 주재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남연부주지에서도 박생과 염라대왕이 토론을 벌이는데, 염라대왕은 이승과 저승이 따로 존재한다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는 반면, 박생은 세상 만물의 이치가 이승과 저승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세상은 하나의 이치로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박생의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박생이 말하는 일원론(一元論)’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박생에게 염라대왕의 자리를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김시습은 귀신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1) 조화(造化)의 귀신, 2) 제사(祭事)의 귀신인데, 조화의 귀신이 의미하는 건 음양(陰陽)’이자 ()’를 뜻한다. ‘()’는 조상의 기운이어서 조화의 귀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낸다.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조상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데, 율곡 이이는 조상을 섬기고 제사 지내는 걸 ()’으로 모시면 후손에게 좋은 ()’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인간과 귀신의 관계는 실상(實像)과 허상(虛像)과 같다. 김시습 문학의 특징은 허상을 가져와 허상을 제거한다. 이걸 이사거사(以邪去邪)라고 하며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칼 막스는 정치경제학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려 했으나 마지막으로 선택한 건 문학론이었다. 문학은 현실에 토대를 둔 상상력의 산물로, 인간의 욕망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김시습은 서금오신화후(書金鰲新話後)’에서 만창매영월명초(滿窓梅影月明初)’라는 문장을 썼는데, 이는 객관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눈에 보이지 않아도) 진실은 존재한다는 걸 의미하는데, 창문에 비친 매화나무의 그림자는 허상이지만, 우리는 그 그림자를 보고 매화나무가 실제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때 창문에 매화나무 그림자를 만든 건 달빛으로, 달은 실체하는 존재다. 따라서 실체인 달(달빛)이 매화나무를 비추면, 매화나무의 그림자가 창문에 드리우고, 그 그림자를 보면서 우리는 매화나무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매화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김시습은 중심과 변두리를 정위(正位)와 편위(偏位), 선입견과 편견, 인습, 동류(同類)와 이류(異類)로 구분했다. 중국은 자신을 중화(中華)’라고 주장하지만 주자(朱子) 이전에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중화(中華)로 인식했었다.

 

박지원

박지원의 작품 호질(虎叱)’에서 호랑이의 삶을 기준으로 인간의 삶을 질책한다. 호랑이의 관점으로 보면 타당한 지적이지만, 호랑이와 인간은 포유류라는 것만 빼고는 삶의 조건이 다르므로 이걸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은 각각 같은 것(, )과 다른 것(, )으로 구분하며, 는 동인, 소론으로, 는 서인, 노론으로 대표한다. 박지원은 북학파로 동론(同論)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과학자 홍대용과도 친구였다. 이때 조선에서도 태양중심설, 지구자전설 같은 천체물리학 이론이 수입되고 있었고, 철학적 사유는 객관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북학파, 실학파가 청나라를 인정하는 기준은 청나라가 비록 한족이 아닌, 몽골의 이민족이 세운 나라지만, 청나라의 황제들은 과거 한족의 역사와 정통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조선도 청나라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는 논리였다.

 

공안파(公安派)의 이지(李贄)는 동심설(童心說)을 주장했는데, 동심 즉 어린이의 마음은 꾸미지 않은 진심을 드러내며 일상의 구속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죽은 권위에 기대지 말라는 뜻으로, 유명한 문장가나 시인을 흉내 내지 말고 자기 시대의 글을 쓰라는 뜻이다. 이것을 법고(法古)라 한다.

사마천은 나비를 잡으려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글을 쓰라고 했다. 나비를 잡을 때의 조심스러움, 안타까움, 진지하고 집중하고, 몰두하는 태도로 쓰되, 실패했을 때의 내 모습을 보면서 자기객관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내가 사는 시대의 문학을 해야 한다.’ 모방이나 답습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고, 역사에 남지도 못한다.

이문위희(以文爲戱), 문학은 세상을 풍자하고 희롱해야 한다. 직설법을 넘어서서 풍자와 역설, 반어의 다양한 전술이 활용되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박지원은 말했다.

[민옹전]에서 노인 민옹은 가난한 노인이지만 기이한 사람으로, 그의 이야기는 신나고, 괴이하고, 능청스럽고 걸쭉하다. 민옹은 발화자이자 작가이고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독자이면서 한편 글을 쓰는 서술자. 두 사람은 사뭇 다른 입장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회적 신분이나 권위, 권력 관계가 아닌, 문학을 통해 정서적 교류를 나눈다. 문학의 장점이자 사회적 기능이라면 이렇게 상반된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긴장을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박지원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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