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현대시론_2020_3학년_중간과제물

by 똥이아빠 2020. 11. 9.
728x90

<과제명>

다음 시집 중 한 권을 선택하여 읽고,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시를 분석하여 비평문을 작성하시오.

 

5. 곽재구, 󰡔사평역에서󰡕, 창비, 2013.

 

삶의 고단함, 쓸쓸함을 노래하는 시

- 곽재구의 시 절망을 위하여’, ‘사평역에서’, ‘새벽을 위하여

 

사람들은 밝고 환한 거리를 걷기 바라지만, 드물게 뒷골목의 그늘진 좁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은 많지만, 스러지는 것들, 잊혀지는 대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드물고, 그래서 특별하다.

곽재구의 시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자신도 모른 채 살아왔던 서러움의 시간을 시인은 나지막이 들려준다. 시인의 어조는 메마르고 애잔하다.

 

마음의 배고픔이 출렁이는 강기슭에 앉아

종이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절망을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육체의 배고픔만으로도 절망하지만, 가난해서 서로에게 나눌 것 없는, 뻔한 살림과 더 이상 부끄러울 것 없는 가난의 서러움을 시인은 마음의 배고픔으로 은유하고 있다. 절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슬픔과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절규나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노래하는 것은 극복의 의지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힘겨운 나날의 끝에서 희망을 기대한다.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사평역에서)

 

막차가 오지 않는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한 줌 톱밥을 불빛 속에 던질 때 그리고 한 줌 눈물을 불빛 속에 던질 때의 비유는 같은 불빛이지만,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불빛은 희망을 상징한다. 불빛의 이미지는 난로에서 타는 불빛과 차창 밖에서 빛나는 가로등의 비유이자 미래의 희망에 대한 상징으로 작동한다.

희망에 불을 붙이려는 마음이 톱밥을 불빛 속에 던지는 행위로 나타나고, 지금, 여기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눈물을 불빛 속에 던지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웠던 순간을 불러야 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혼자 낯선 길을 떠난 사람이고, 슬프고,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을 것이다.

화자는 막차를 기다리지만, 딱히 어디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애써 긍정하려는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나를 껴안을 어둠의 큰 그리움을 불러세울 수 있다면

그 새벽녘엔 아들의 깊은 잠을 깨워줘요

그 새벽녘에 기다렸던 길을 뜰 거예요(새벽을 위하여)

 

막차를 기다리는 화자가 향하는 곳은 어머니가 계신 곳이자, 어머니의 품이다. 아니, 그는 이미 어머니의 품을 떠났는지 모른다. 그것도 이른 새벽, 어머니가 깨기 전, 먼길을 떠나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마음의 배고픔때문일 수 있다.

 

아무도 이웃에게 눈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았다.(절망을 위하여)

 

그렇다. 서로에게 마음을 닫고 있을 때, 사람들은 저 바다의 섬처럼 홀로 서 있는 것이고,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은 것은 한 줌의 톱밥을 불빛에 던져주어야 살아나는 불꽃처럼, 소통과 관심과 사랑과 우애의 톱밥을 던져 넣지 않았기에, 이들은 절망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평역에서)

 

그들이 마음을 닫고, 화자 역시 마음의 상처를 여미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고요한 입맞춤을 떠나게 되는 쓸쓸함에는 서로에게 하고픈 말이 가득해도,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면의 상처는 치유하기 어렵고, 말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때, 침묵을 바라지 않았어도 말할 수 없는 서로의 심정을 시인은 헤아리고 있다.

말은 없어도, 그들은 청색의 손바닥을 함께 불빛 속에 적신다. 차가운 마음이 불빛에 녹을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켜켜이 하고픈 말을 쌓아 놓을 것이다. 그리하여

 

꽃 지는 날엔 어둠이 다시 들고

바람 부는 날 찾아오는 두려움이 더 깊겠지만(새벽을 위하여)

 

그들은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새벽을 위해 떠날 것이다. 그들이 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했던 까닭은, 누구도 그들을 대신해 희망과 미래의 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깃발을, 횃불을 들고 앞서 길을 알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으리라.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불안하고 두려운 사람들은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절망의 노래를 부르지만, 누군가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지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심는다.

우리 세상에는 어둠이 다시 들고’, ‘두려움이 더 깊겠지만그럼에도 사람들은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회한과 후회, 아쉬움 같은 감정을 마음에 담고 새로운 날을 살아가는 것이 꼭 기쁨만은 아니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 수밖에 없는 삶도 있다는 걸 시인은 말하고 있다.

 

 

 

 

절망을 위하여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철들어 사랑이며 추억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싸움은 동산 위의 뜨거운 해처럼 우리들의 속살을 태우고

마음의 배고픔이 출렁이는 강기슭에 앉아

종이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

정이 들어 이제는 한 발짝도 떠날 수 없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짓밟고 간

많고 많은 이방의 발짝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이웃에게 눈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두려움에 떠는

눈짓으로 술집을 떠나는 사내들과

두부 몇 모를 사고 몇 번씩 뒤돌아보며

골목을 들어서는 계집들의 모습이

이제는 우리들의 낯선 슬픔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가고 누구도 거슬러 오르지 않는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 했다.

 

 

 

사평역에서(1983)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새벽을 위하여

 

잠들다 포근하여 깨어보면

당신은 늙고 해진 입술로 내 이마 위에

새벽의 젖은 꽃무늬를 새기시지만

어머니 이 고요한 당신의 입맞춤보다 깊게

나를 껴안을 어둠의 큰 그리움을 불러세울 수 있다면

그 새벽녘엔 아들의 깊은 잠을 깨워줘요

그 새벽녘에 기다렸던 길을 뜰거예요

칠흑의 깊은 어둠과

돌절벽 끝 부서지는 강물소리를 거슬러

한 사람씩 누군가를 암장하던

자갈밭의 삽질소리를 거슬러

어머니 당신의 입맞춤이 내게 속삭여준

길고 긴 기다림의 새벽나라를 위해

봄과 겨울, 죽음과 사랑의 헛된 영화를 버리고

진창이거나 가시밭길이거나

눈길이거나 뜨거운 유황불길 속이라도

숨막힌 아카시아 꽃길을 가듯 걸어가겠어요

꽃 지는 날엔 어둠이 다시 들고

바람 부는 날 찾아오는 두려움이 더 깊겠지만

어머니 당신의 큰 그리움이

내 가슴에 새겨준 그 새벽녘엔

아직은 보이지 않는 그날의 큰 새벽을 위해

삼십년 하루도 거른 일 없는

당신의 깊고 고요한 입맞춤을 떠나겠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