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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맞춤법과 표준어_2020_2학년_대체과제물

by 똥이아빠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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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명

1. 한글 창제 이전의 표기법에 대해 설명하시오.(5)

2. 한글 표기법의 변천에 대해 설명하시오.(5)

3. 한글맞춤법 총칙 제1항은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여기에서의 어법에 맞도록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5)

4. 다음 각 예들의 묶음은 동일한 범주의 표기 기준/규칙의 적용을 받는 것들이다. 제시된 모든 예들에 대해 어떤 표기 기준/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하시오.(모든 예들에 대해 빠짐없이 설명해야 하며, 옳은 표기는 왜 옳은지, 잘못된 표기는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할 것.)(15)

() 선률(旋律), (), 남존여비(男尊女卑), 쌍용(雙龍), 신녀성(新女性), 역이용(逆利用), 백분률(百分率), 진렬(陳列), 부화뇌동(附和雷同), 파렴치(破廉恥), 알칼리량(---), 폐활양(肺活量), 태릉(泰陵), 신년도(新年度)

 

 

1. 한글 창제 이전의 표기법에 대해 설명하시오.(5)

 

중국의 한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2세기로 추정한다. 기원전 128, 예맥의 군장 남려(南閭)한나라에 투항하면서 창해군을 설치했다.(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107년 제1현도군을 설치하면서 중국의 한자가 유입된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한자가 한반도-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반도에는 은 있었으나 문자는 존재하지 않은 걸로 알려진다.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언어)과 글(문자)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 한반도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중국에서 유래한 문자인 한자가 일대일로 조응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했고, 어쩔 수 없이 문자로 기록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말(언어)을 문자(한문)으로 표기할 때 기형적 형태를 띄게 된다. 이를 한자차용표기법또는 차자표기법이라고 말하며, 시대에 따라 이두, 향찰, 구결 등으로 구분한다.

 

이두(吏讀)

이두는 한문을 우리말 어순에 따라 적는 문자체계다.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통일신라에 이르러 틀을 갖췄다고 한다. 현존하는 이두의 금석문 자료는 5세기 초반(서기412)에 만들어진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이 최초다.

이두는 삼국시대 하급 관리들이 행정문서를 작성할 때 주로 쓰였으며, 민간에서도 통용되는 언어 표기법이었다. 이두는 한문을 우리말 어순으로 재조정한 다음, 조사나 어미 같은 형식 형태소를 중간에 삽입한 형태이며 5~6세기의 문서인 임신서기석이나 14세기 문서인 대명률직해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한문은 어순이 주어+서술어+목적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두는 이런 한문체계를 해체해 주어+목적어+서술어의 형태로 바꾼다. 여기에 다시 목적격조사나 어미를 삽입하는 형태로 우리말 어순에 따라 문자를 기록한 것이다.

 

구결(口訣)

구결은 우리말 입겾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라고 하며, 한문을 읽기 쉽도록 어미와 조사를 한문약체자로 표기한 문자체계다. 이두와는 다르게 한문의 순서는 건드리지 않고, 한문 문장 사이에 어미나 조사에 해당하는 한문약체자를 삽입해 우리말로 읽기 쉽도록 만들었다.

이두보다 늦게 나타난 문자 표기체계이며 고려대장경에 구결 표시가 발견되었으며 시작은 서기 4세기, 고구려 때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이두와 구결이 함께 쓰였으며 이두가 하급 관리들이 주로 쓰는 문자체계였다면, 구결은 한문 교육이 지배계층에 일반화 되어 교육을 위한 합리적 방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한글 창제에 구결 문자가 영감을 주었을 거라고도 한다. ‘훈민정음혜례본에는 한글 창제의 원리가 입 모양의 발성에서 근거한다는 내용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보다 앞서 구결 문자는 서기 6세기 경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의 가타카나의 모형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가타카나의 탄생이 서기 7-8세기인 것으로 보아 구결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학자도 있다.

 

향찰(鄕札)

향찰은 삼국시대부터 쓰였으나 주로 신라 때 향가에 많이 사용되었고, 신라의 멸망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은 문자체계다. 이두는 한문의 어순을 바꾸는 방식의 문자체계였고, 구결은 한문의 어순은 그대로 두고 한자약체자로 토를 달아 표기한 문자체계였다면, 향찰은 한문의 어순을 우리말 어순으로 바꾸고, 용언과 어간 같은 실질형태소까지 차자 표기법을 써서 읽는 문자체계다.

한문을 해체해 우리말 표기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면에서, 우리말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보인다.

 

 

2. 한글 표기법의 변천에 대해 설명하시오.(5)

 

한글은 서기 1443, 조선 세종25훈민정음으로 탄생한 문자다. ‘한글이전에는 우리말을 문자로 표기하기 위해 중국의 한문을 사용했으며, 이는 지배계급의 문자였다. 한문을 우리말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이두, 구결, 향찰 같은 문자표기 방식이 있었으나, 이 역시 지배계급 위주의 문자표기였으며, 우리말을 완전하게 표기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한글은 표음문자로, 한문의 표의문자와 근본에서 다르며, 초성 17, 중성 11자 모두 28자의 음소문자로 초, , 종성을 합자해 음절 단위로 합성해 만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다.

한글 창제 이후 표기법은 음소적원리에 따라 적었는데, 이는 실제 발음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형태음소적표기법은 표음주의이며, 초기 한글 표기에 주로 쓰였다. 이와 다르게 형태소의 기본형을 고정시켜 표기하는 방식을 형태음소적표기법이라 하며, 이를 표의주의라고 한다. 이는 현대의 한글 표기에 쓰이고 있다.

훈민정음창제 때 표기법으로 기록된 것은 ‘8종성법으로 받침에 쓰는 자음 ㄱㅇㄷㄴㅂㅁㅅㄹ 만 쓰도록 했다. 또한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를 하도록 규정한 것, 모음은 자음의 오른쪽 또는 아래 쓰라는 규정 역시 지금까지 지켜지는 표기법이다.

16세기 들어서면서 연철 표기(이어 적기)와 분철 표기(끊어 적기)를 구별하고, 중철 표기(거듭 적기)가 나타난다. 중철 표기는 연철 표기가 분철 표기로 옮아가는 과도기적 표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한글맞춤법과 표기법은 정리되지 못한 채 혼란을 겪었으며, 1930년 일제강점기 때 언문철자법이라는 맞춤법 통일안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공포되었다. 이후 1933조선어학회에서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이 해방되고 1948년 정부에 의해 공인되면서 한글맞춤법은 제 자리를 잡았다.

이후 1970년 한글맞춤법 개정안이 시작되었고, 1989년 개정안이 나왔으나 한글맞춤법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3. 한글맞춤법 총칙 제1항은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여기에서의 어법에 맞도록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5)

 

현대 한글 표기법은 음소적 표기법보다는 형태음소적 표기법이 더 어울린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한글을 쓰는 사람 위주로 표기하도록 했으나, 현대에서는 읽는 사람 위주로 표기하기에 형태소의 원형을 가능한 살리면서 표기하는 방식이 어법에 맞도록에 적합하다고 본다.

 

산이 높다는 문장에서 소리나는 대로 쓰면 사니 놉다가 된다. 명사 에 조사 가 붙어 산이지만 조사가 이 되면 사는이 되면서 산은 높다사는 놉다로 바뀐다. , 명사 뒤에 오는 조사에 따라 소리나는 대로 쓰면 읽는 사람은 최초의 단어를 알 수 없게 된다.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단어의 원형을 유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은 고유명사로 정하고, 그 뒤에 오는 조사가 바뀌어도 고유명사는 맞춤법에서 정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산이 높다’, ‘산은 높다처럼 받침이 나오는 단어나 문장에서 형태음소적표기를 유지하는 것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정보의 일관성, 정보의 표준을 지켜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오해의 여지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기보다 효율성, 생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4. 다음 각 예들의 묶음은 동일한 범주의 표기 기준/규칙의 적용을 받는 것들이다. 제시된 모든 예들에 대해 어떤 표기 기준/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하시오.(모든 예들에 대해 빠짐없이 설명해야 하며, 옳은 표기는 왜 옳은지, 잘못된 표기는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할 것.)(15)

 

() 선률(旋律), (), 남존여비(男尊女卑), 쌍용(雙龍), 신녀성(新女性), 역이용(逆利用), 백분률(百分率), 진렬(陳列), 부화뇌동(附和雷同), 파렴치(破廉恥), 알칼리량(---), 폐활양(肺活量), 태릉(泰陵), 신년도(新年度)

 

선률(旋律), -> 선율

단어에서 앞 글자 받침이 ㄴ일 때, 뒤에 이어지는 , , 로 적는 것은 두음법칙의 예외 표기법이다.

 

(), ->

두음법칙에서 의존명사는 예외로 한다는 규칙에 따라 은 그래도 표기한다. 다만 연년생(年年生)’처럼 이 앞으로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으로 쓴다.

 

남존여비(男尊女卑),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음절에만 해당하므로 남존녀비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듯하나, 접두사가 결합한 단어, 합성어 등에서는 단어별로 두음법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남존+여비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이때 녀비는 두음법칙에 따라 여비로 변하고, ‘남존과 결합한다.

 

쌍용(雙龍), -> 쌍룡

두음법칙은 제2음절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규칙에 따라 쌍룡으로 적어야 한다. ‘이 단어의 앞으로 오면 이 된다. ‘룡궁’ -> ‘용궁

 

신녀성(新女性), -> 신여성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음절에만 해당하므로 신녀성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듯하나, 접두사가 결합한 단어, 합성어 등에서는 단어별로 두음법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여성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접두사 녀성에서 녀성은 두음법칙으로 먼저 변하고, 접두사와 결합한다.

 

역이용(逆利用),

신여성의 예처럼, 접두사와 단어가 결합하면 두음법칙이 적용되고, 접두사와 결합한다. ‘역리용에서 역+리용으로 나눠지며, ‘리용은 두음법칙에 따라 이용으로 변하고 접두사 과 결합하여 역이용이 된다.

 

백분률(百分率), -> 백분율

단어에서 앞 글자 받침이 ㄴ일 때, 뒤에 이어지는 , , 로 적는 것은 두음법칙의 예외 표기법이다.

 

진렬(陳列), -> 진열

단어에서 앞 글자 받침이 ㄴ일 때, 뒤에 이어지는 , , 로 적는 것은 두음법칙의 예외 표기법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음절에만 해당하므로 부화뢰동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듯하나, 접두사가 결합한 단어, 합성어 등에서는 단어별로 두음법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부화+뇌동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이때 뢰동은 두음법칙에 따라 뇌동으로 변하고, ‘부화와 결합한다.

 

파렴치(破廉恥),

두음법칙에 따르면 파염치가 맞으나 실제 발음에 가까운 파렴치를 올바른 표기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두음법칙의 예외 표기법이다.

 

알칼리량(---), -> 알칼리양

두음법칙에 따르면 단어별로 두음법칙을 적용해 알칼리양이 올바른 표기이다. 일반인의 인식을 위해 외래어+’, ‘고유어+일 때는 두 개의 단어로 간주해 으로 표기한다.

 

폐활양(肺活量), - 폐활량

두음법칙에 따르면 폐활양이 되어야 하지만, 한자어+량의 경우에는 하나의 단어로 간주해서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태릉(泰陵),

두음법칙의 표기에는 맞으나 실제 발음에서 태릉태능’, ‘선릉선능또는 설릉’, ‘동구릉동구능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두음법칙에 따라 태릉’, ‘선릉’, ‘동구릉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신년도(新年度)

의존명사로 쓰일 때는 년도가 되고, 자립명사로 쓰일 때는 연도가 된다. 2000년도, 졸업 연도처럼 년도연도가 어떤 용도로 쓰이냐에 따라 표기가 달라진다. 이때 신년도신여성에서 보는 신+여성이 아니라 신년+도이기 때문에 신연도가 아니라 신년도가 올바른 표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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