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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188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지난번 책모임에서 단편 한 두편을 읽고 나서, 요즘 며칠 잠자기 전에 침대에서 틈틈히 다 읽었다. 책모임에서 읽은 단편들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은 대개 다 좋았지만, 읽으면서 울컥했던 작품은 '열'이었다. 작가의 삶을 대략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이상'의 삶을 알고 있을 때와 모를 때를 비교하면, 그의 작품에 관한 이해의 폭이 매우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외국 작가라 해도, 그의 삶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작품을 읽거나, 아니면 작품을 읽고 나서라도 작가의 삶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레이먼드 카버가 미국의 '프란츠 카프카'라거나, '안톤 체.. 2022. 11. 24.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두 권의 소설에서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두 권의 소설에서 최근 읽은 소설 가운데 우연히 남편의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다룬 작품 두 편을 읽었다. 미야모토 테루의 과 마리 다리외세크의 이 그것인데, 두 작품 모두 어떤 이유에서든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다. '환상의 빛'은 책읽기 모임에서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작품인데, 20대 중반의 남편은 어느날 기차 선로 위를 걷다 기차에 치어죽는다. 남편의 죽음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자살이었고, 아내이자 주인공 유미코는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어린 아이를 둔 유미코는 남편이 죽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닷가 마을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살고 있는 남자와 재혼한다. 두 사람은 잘 지내지만 유미코는 죽은 전 남편의 '자살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2022. 11. 24.
피가 흐르는 곳에 - 스티븐 킹 피가 흐르는 곳에 - 스티븐 킹 해리건 씨의 전화기 크레이그는 아버지와 함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지만, 그의 마음에 깊은 슬픔이 일렁이고 있다. 스티븐 킹은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줄곧 형과 엄마, 세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 소설에서는 엄마로 바꿨을 뿐, 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레이그는 마을에 이사 온 엄청난 부자로 은퇴한 해리건 씨를 알게 되고, 그의 집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소설이 독특한 점은, 그동안 IT와 관련해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스티븐 킹이 아이폰, 아마존을 비롯한 첨단 정보산업과 미국 투자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리건 씨가 은퇴하기 전 투자.. 2022. 11. 24.
별도 없는 한밤에-스티븐 킹 별도 없는 한밤에-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첫번째 탐정 추리소설이라고 광고한 를 읽고 나서 그의 중편집을 읽기 시작했다. 네 편의 중편이 들어 있는 이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은 . 충격과 공포, 스티븐 킹의 진짜 모습이 바로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가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라면, 는 스티븐 킹이 보여주었던 공포와 기괴함이 뒤섞인 그의 본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러브 크래프트'와 '애드가 앨런 포우'였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 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의 확장판 변주곡이었다. 러브 크래프트의 음울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 분위기와 잔혹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것이 바로 .. 2022. 11. 23.
미스터 메르세데스 미스터 메르세데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스티븐 킹을 매우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한글로 번역된 작품은 거의(약 90% 정도) 다 찾아 읽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외부의 평가가 어떻든 내게는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 그건 스티븐 킹의 잘못이라기 보다-이 작품이 스티븐 킹의 얼굴에 똥칠을 할 정도는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이 책을 팔아먹으려는 출판사-미국과 한국-의 지나친 마케팅 때문이다. 물론 스티븐 킹도 출판사의 홍보문구처럼 '최초의 탐정추리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캐리'를 시작으로 단 한번의 실패 없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의 뛰어난 글솜씨 때문이었으니,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을테다.. 2022. 11. 23.
언더 더 돔 - 스티븐 킹 언더 더 돔 - 스티븐 킹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호러의 대가인 스티븐 킹의 작품 가운데서 비교적 노멀한 수준과 내용의 소설이다. 1976년에 처음 구성했고, 집필을 시작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2007년부터 다시 쓴 장편소설로 한글 번역본이 3권 1,600페이지나 되는 꽤 긴 소설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술술 잘 읽힌다 등장인물이 많긴 하지만, 전체의 흐름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호흡이 길다보니 스티븐 킹 답지 않게 약간의 문제-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도 드러난다. 어느날, '체스터스밀' 마을을 뒤덮은 거대한 돔이 생긴다. 마을은 고립되고, 공포와 두려움과 긴장이 팽배하면서 내부의 분열과 균열이 발생한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상태일 때,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기독교 국가'라고 자타가.. 2022. 11. 23.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스티븐 킹 작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내려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9살 트리샤가 겪는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며칠을 헤매는 상황. 미국의 넓은 땅과 인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원시의 숲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과 두려움, 그리고 고작 아홉살짜리 여자 아이. 스티븐 킹의 입담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스티븐 킹이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실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는 단지 '공포,호러문학'만 하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와 오빠-부모가 이혼을 해서 아빠는 다른 곳에 살고 있다-와 함께 산으로 트레킹을 하러 간 트리샤는 앞서가는 엄마와 오빠가 말다툼을 하는 것도 지겹고, 마침 오줌도 마려워서 길 옆으.. 2022. 11. 23.
스탠바이미 스탠바이미 스티븐 킹 작품. 영어 제목을 한글로 써 놓으니 이상하다. 원래 제목은 'body'. 스티븐 킹의 연작 사계 시리즈 가운데 '가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2살(한국 나이로는 14살-15살 정도) 나이의 소년 네 명이 겪는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어릴 적 추억과 깊은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메인주의 외딴 시골, 인구도 고작 천 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 캐슬록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6학년 고든, 크리스, 테디, 번은 이제 곧 중학교에 진학하게 될 마지막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있다. 가난한 데다 저마다 집안에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으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지어 놓고 그들의 기지로 삼아 날마다 그곳에서 모여 포커 게임을 하거나 철지난 잡지.. 2022. 11. 23.
리시 이야기 - 스티븐 킹 리시 이야기 - 스티븐 킹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소위 삼류 글쟁이라고 자처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특히 현대작가들의 작품은. 예외적으로 몇 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읽기도 하지만, 주로 찾아서 읽는 작품들은 대개 20년대, 30년대 작가들의 작품이다. 30년대와 70년대 작가들 가운데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고, 현대 작가들은 극소수만 읽고 있으니, 내 문학 정보나 지식도 그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건 지극히 편협한 내 문학적 편견임을 인정한다. 소위 '세계문학' 또는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형출판사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고전문학'이 대부분이고, 이제서야 외국의 현대문학이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2022. 11. 23.
11/22/63 11/22/63 오랜만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12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사흘을 꼬박 이 책만 붙들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감동의 눈물이 솟았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주인공 제이크는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아가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다. 그는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슬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가까운 친구로 간이 식당을 하는 앨을 통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알게 된다. 그 통로는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고, 1958년 9월 9일로만 들어갈 수 있으며,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과거의 시간에서 했던 모든 행동은 '리셋'된다. 폐암으로 곧 죽을 것으로 예상하는 앨은, 제이크에게 역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것은 다름.. 2022. 11. 23.
도착 도착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숀 탠의 작품. 2007년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은 작품. 글이나 대사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만 만든 작품. 이 책은 책읽기모임의 도반인 승묘 님이 준 선물이다. 서점에서는 이 책이 저학년 어린이용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어른이 봐도 좋은 작품이다. 저자인 숀 탠은 이 작품을 4년 동안 작업했으며, 많은 증언과 현장 답사를 통해 현실감을 높였다고 한다. 매우 사실적인 그림과 함께, 현실에는 존재하는 않는 환상의 세계를 그림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동화와 환상의 세계를, 어른에게는 현실의 삶과, 마음 속에 담아 둔 오래된 꿈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 낯선 세계에 도착해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 하지만 새.. 2022. 11. 23.
카뮈의 '이방인' 카뮈의 '이방인' 요즘 출판계에서 '이방인'을 둘러싼 번역 논쟁이 한창이다. 논쟁을 시작한 '새움'의 새로운 번역 '이방인'을 읽진 않았지만, 예전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몇 번 읽은 것과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김예령 번역으로 다시 읽은 느낌은 이렇다. 오늘 읽은 '이방인' 이전에 읽은 기억이 벌써 십 수년 전이다. 10대, 20대, 30대에도 '이방인'을 읽었으니 적어도 서너 번은 읽은 셈이다. 이번에 읽은 '이방인'의 느낌이 예전에 읽었을 때와 거의 다르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이방인'에 관한 느낌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번역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당연하다. 김화영 번역본을 비판한 '새움'의 이정서라는 사람의 번역도 당연히 오류가 있을 것이다. 다만, 번.. 2022. 11. 23.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스티븐 킹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은 단편소설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스스로 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오랜 동안 단편소설을 써 왔다. 스티븐 킹이 아니더라도, 단편소설은 세계의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였으며, 문학의 살을 찌우는 역할을 해 왔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은 대개 장편소설들이었다. 장편소설이 갖는 의미는 그 작품 속에 존재하는 인물과 사상과 역사가 인류의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하기 때문이며,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 사상과 철학, 역사를 '미학적'으로 담아내는 도구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장편소설은 중요하고 적정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단편소설은 인간의 중요한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장편소설이 .. 2022. 11. 23.
듀마 키 - 스티븐 킹 듀마 키 - 스티븐 킹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스티븐 킹이 죽음 직전까지 간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이 매우 심했던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사고의 후유증에 따르는 고통-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묘사는 실제 당했던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매우 세밀하고, 감정적이며, 깊이 있는 내용이어서, 읽는 사람마저 그 고통을 느낄 정도로 치열하다.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 에드거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그가 살았던 과거의 삶과, 죽음에서 겨우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아.. 2022. 11. 23.
홍까오량 가족 - 모옌 홍까오량 가족 - 모옌 읽는 내내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도 그렇고, 그 내용을 표현한 문장도 읽는 이의 심장과 영혼을 뜯어내는 듯한 충격과 격렬함 때문에,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했고, 한 번에 오래 읽기도 어려웠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 대륙의 현대사를 자신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 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일반화, 보편화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고통과 끈질긴 생명력에 관한 기록이며, 작게는 자신의 개인사적 사건이자 중국 현대사와 맞물린 거대한 물줄기를 관통하는 중국민중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모두 다섯 편의 중편을 묶은 것으로, 중편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로도 충분히 읽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2022. 11. 23.
개구리 - 모옌 개구리 - 모옌 소설은 화자인 커더우(올챙이라는 뜻)가 스기타니 요시토라는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커더우는 앞으로 편지를 통해 고모에 대해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조카가 일흔이 넘은 고모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고모는 실력 있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살아 있는 보살이자 삼신 할멈’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공군 조종사인 약혼자가 타이완으로 망명하면서 ‘반역자의 약혼녀’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 계획생육 정책을 펴면서 고모는 임신중절수술과 정관수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정부의 인구 억제 노력에도 마을 사람들은 아들 욕심에 ‘불법 임신’을 계속 감행한다. 당에 대한 충성심과 낙태 시술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고모는 점점 폭력에 의.. 2022. 11. 23.
맛 - 로알드 달 맛 - 로알드 달 로알드 달의 소설은 재미있다. 기발하고, 재치있으며 반전의 묘미가 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그의 중단편들 역시 어느 것 하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맛있는 이야기들의 성찬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것은 어느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로알드 달의 작품은 밝은 카페에 앉아서 카푸치노와 달달한 케익을 먹는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오래 읽다보면 왠지 조금 질리는 느낌이다. 너무 단 음식은 많이 먹지 못하고 질린다. 오히려 약간 쓴맛이나 신맛이 오래도록 먹을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도스또예프스키를 보자. 아니 카프카는 어떤가. 에드가 알란 포우는. 그들의 작품은 어둡고 음울하며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읽고 질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도스.. 2022. 11. 23.
환상의 빛 환상의 빛 책읽기 모임에서 중편 '환상의 빛'을 읽었다. 문장마다 스며 있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독후감보다는 직접 작품을 읽어 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 문장들은 '환상의 빛'에서 가져온 것이다. 왜 오쿠노토의 최북단에 있는 쇠락한 어촌으로 시집 갈 마음이 든 것인지, 저는 그때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여덟 살이 되는 딸을 데리고 오쿠노토에서 일부러 맞선을 보기 위해 아마가사키까지 찾아온 세키구치 다미오라는 서른다섯 살의 남자에게 마음이 끌려서도 아니고, 공해에 찌든 연기와 사우나나 카바레의 네온사인이 가난 냄새를 풍기는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는 아마가사키라는 곳이 지겨워져서도 아니며, 아직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러브호텔의 시트를 갈아 까는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었습니.. 2022. 11. 23.
비밀의 계절 비밀의 계절 도나 다트의 소설 「비밀의 계절」 두 권을 모두 읽었다. 28살짜리 여성이 쓴 글로서는 매우 재미있게 쓴 작품이다. 그리스 문학을 하는 소그룹에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사건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 삶이 어떻게 진행되고 변해가는 가를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데서 더욱 빛이 난다. 상권에서는 주인공 리처드가 대학에 천신만고 끝에 들어오는 과정과 그리스문학을 배우는 소모임에 들어가서 그들과 친해지는 과정, 그리고 우연히 그들이 디오니소스적 행사를 갖다가 사람을 죽이고 다시 자신들의 친구인 버니를 살해하는 과정까지가 진행된다. 현대 사회에서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적 제의를 흉내낸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람을 죽이고 그들이 느끼는 갈등의 묘사와 친구인 버.. 2022. 11. 23.
노름꾼 노름꾼 도스또예프스키는 닿을 수 없는 무지개이며, 빛이자 영원한 꿈이다. 10대에 처음 만난 그의 책은 '죄와 벌'이었다. 그것도 완역본이 아닌, 일본어 중역본으로. 그럼에도 내게 있어 도스또예프스키는 그때부터 산맥이었다. 꽤 여러 권의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읽고 나서 정리를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한 작품씩 읽은 다음 메모라도 해 둘 생각이다. 세계의 무수한 작가들이 있지만, 이 시대에 도스또예프스키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시대를 살다가는 행운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빅토르 위고도 있고, 카프카도 있고, 벽초 홍명희도 있으니 그 기쁨이야 몇 배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만일 도스또예프스키가 없었다면, 그래도 이만큼 기뻤을까. 몰랐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안 이상, 아무리 많은 작.. 2022. 11. 23.
1984년 - 조지 오웰 1984년 - 조지 오웰 다시 읽었다. 이 책이 왜 '세계적인 명작'이고 '걸작'인지 새삼 깨닫는다. 1948년에 쓴 이 작품은 당시 쏘련의 정치상황과 스탈린의 철권 통치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깊은 뜻을 갖고 있다. 알다시피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악행, 자본주의 사회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당시 영국 노동자계급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사이비 공산주의 국가였던 쏘련과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빅 브러더'로 상징되는 강력한 통제사회에 대한 예견이다. 그가 바라 본 가까운 미래-불과 36년 뒤-의 사회를 이보다 더 정확하고 날카롭게.. 2022. 11. 23.
조이랜드 - 스티븐 킹 조이랜드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최근 작품. 명불허전. 장편소설이지만 속도감 있게 읽힌다. 쉬운 문장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시퀀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와 에피소드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고, 무엇보다 한 청년의 성장소설이 주는 감동이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스물한 살의 대학생 데빈은 여자 친구 웬디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겸 놀이공원인 ‘조이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 ‘공포의 집’이란 놀이 시설에서 사 년 전 린다 그레이라는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공원에서 함께 일하는 점쟁이인 로지 골드는 데빈의 인생에 한 소년소녀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조이랜드의 마스코트 해피 하운.. 2022. 11. 23.
죄와 벌 죄와 벌 한때 도스또예프스키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스또예프스키의 마력은 쉽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범위도 넓고 깊이도 깊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의 이력도 소설만큼이나 드라마틱하죠. 또스또예프스키는 자신이 직접 처형 직전까지 가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더욱 삶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가 도박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썼다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반체제 인사에서 왕정 옹호주의, 보수주의자로 변신해 가는 것도 충격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인간에게 완벽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죠.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렇더라도,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등 걸작들만을 써낸 작가의.. 2022. 11. 23.
데미안 데미안 같은 책이라도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말씀드리죠.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가 10대 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문고본으로 읽었죠. 다들 읽어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책은 아닙니다. 일종의 성장소설인데, 메타포가 많이 내포된 내용이어서 저같은 경우는 한번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헤르만 헤세가 우리나라에서는 꽤 유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도 않고,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여전한 것이 사실이죠. 하여간, 10대 후반에는 그런 것들을 알 리 없었으니까, 유명하다는 이유.. 2022. 11. 23.
낭비와 욕망 낭비와 욕망 대도시에 가끔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물질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물질이 이제는 필요 이상을 넘어서 사람의 삶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과잉'을 주제로 글을 쓰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 책이 지은이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사회를 읽었다면, 나는 '물질의 과잉'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했다. '물질의 과잉'은 필연으로 '쓰레기'를 발생한다. 즉 '과잉 생산'과 '쓰레기'는 분리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이며, 지금 인류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잉여'의 생산물은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고, 곡물을 재배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 2022. 11. 23.
공학적 역추론과 효용목적 공학적 역추론과 효용목적 *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에덴 밖의 강]에서 가져왔습니다. 공학적 역추론은 다음과 같은 추론기술이다. 어떤 공학자가 처음 보는, 이해하지 못하는 물건 앞에 앉아 있다고 하자. 그는 그 물건이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가정을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어떤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알아 내기 위해 잘게 해부하고 분석한다.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기계를 만든다면 이것처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이것은 이렇고 그렇고 그런 일을 하도록 설계된 기계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나을까?' 계산자를 만드는 일은 최근까지도 기술자들이 선망하는 전문적인 기술이었다. 그 도구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전자기술시대에 그것은 청동기시대의 유물처럼 낡아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22. 11. 23.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노암 촘스키 교수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최고의 지성이며,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자본주의 체제를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지난번 '하류지향'을 읽고 나서, 책장에서 눈에 띤 책이 이 책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이다. 이 책은 따로 독후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책에 있는 문장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 (자본주의에서) 학교는 진리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선동적 주장을 학생들 머릿속에 주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문자 그대로 민주적이라면, 민주주의의 상투적 선전문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민주적으로 행동하고 처신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2022. 11. 23.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사 놓고도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잊고 있다가, 최근에 '하류지향'을 시작으로 노암 촘스키의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 이어 자연스럽게 이 책을 꺼내 들었다. 하워드 진 교수에 관해서는 다만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것과 그가 쓴 '미국민중사'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정도만 알 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나의 무지는 부끄러워도 마땅한 천박한 수준이다. 그것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이었고, 왜 빨리 하워드 진의 저서를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하워드 진은 그 자신이 노동계급의 부모를 두고, 그 역시도 노동자로 자란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가 살던 뉴욕의 빈민가에서 가까이 지내던 .. 2022. 11. 23.
하류지향 하류지향 우치다 타츠루 교수가 쓴 '하류지향'은 일본의 10대, 20대의 교육과 노동 문제의 핵심을 짚은 책이다. '교육으로부터의 도피'와 '노동으로의 도피'가 서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우치다 교수는 일본 사회의 변화에서 근원을 찾는다. 1970년대와 1990년대를 비교하고, 이 시기에 일본에서 본질적으로 바뀐 부분이 바로 현재의 일본 젊은이의 교육과 노동관을 완전히 뒤바꾼 근거라고 주장한다. 즉, 집단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던 80년대 이전의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80년대 이후의 사회 정책이 그 시기의 교육에 반영되면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갖던 자부심과 교육적 효과 등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전제는 있다. 그 이전부터 발달한 일본의 자본.. 2022. 11. 23.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이 책은 알라딘 헌책방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구입했다. 지금은 30% 할인판매를 하고 있긴 하지만, 헌책방에서 싼값에 구입했고,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 마침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어느 정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고 '신화'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 책을 쓴 월터 아이작슨의 글쓰기였다. 한국어 초판이 번역 부실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책(1판 1쇄)에도 그런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번역은 비교적 매끄러웠고, 비록 한국어 번역이긴 하지만,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의 글쓰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이렇게 흥미있고 재미..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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