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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차이나타운

by 똥이아빠 201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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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이나타운

* 스포일러 있습니다.

전혀 정보 없이 본 영화. 그렇기에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한국영화는 아주 가끔 뜬금없이 한 방 터질 때가 있는데,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황해', '괴물' 등 장르에 관계 없이 탁월한 작품들이 등장해서 한국영화의 심장 박동을 강하게 울려주는 영화를 볼 때면, 식상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이 영화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액션영화는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공포는 더더욱 아니고,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하드보일드 하고, 멜로는 등장 조차 하지 않고, 남는 것은 결국 '가족 영화(?)'다.
과연 이 영화가 가족 영화일까.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아이들의 부모 노릇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모성애에 바탕한 '사랑'의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조건 없이 받아들여졌던 '엄마'와 자식 사이의 애틋한 사랑은 단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 '마더'에서 살인 용의자 아들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보호하려는 바로 그 '엄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을 도구로 사용하고, 쓸모가 없으면 버린다. 중세 이후 무수한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사악한 계모와 악녀가 했던 행동이다.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력이 필요해 만들어 낸 도구이며, 매매의 수단이다. 적어도 근대까지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중세 이후 '어린이'의 발견은 과학기술의 발달, 문명의 발달 등으로 인간의 이성이 빠르게 깨어나면서 시작되었고, 높은 생산성으로 '아이'의 노동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아이'를 '어린이'로 인정하고 인권을 존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서 사회는 더 이상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끝없는 착취와 경쟁, 물질만능의 탐욕과 이기심 앞에서 인간은 소모품으로 타락했고, 그 소모품에서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다.
돈 때문에 빚을 진 사람은 자신의 몸뚱아리로 빚을 갚아야 한다. 각막, 신장, 간, 심장 등 인간의 몸은 하나의 부품으로 판매되며, 그것은 철저히 '이윤'의 동기로 작동한다.
이 영화는 그런 신자유주의 사회의 그늘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제 30대 초반의 감독, 그것도 처음 만드는 장편영화의 주제로 이렇게 묵직한 하드보일드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이 감독의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영화는 감상에 젖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경우라도 감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아 남아서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에 쓸모 없는 인간으로 전락해 죽을 것인가 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죽이고 그 자리에 섰다. 마찬가지로 '일영'은 '엄마'를 죽여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엄마 살해' 즉 '부모 살해'는 인류의 발전 단계에서 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공통된 의식이기도 하다.
앞선 세대를 죽여야만 뒷 세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기성 세대로 인해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일컫는 젊은 세대가 질식사를 할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를 보는 듯 하다.
'결정은 한 번이고, 그게 우리 방식이야'라는 '엄마'의 말은, 기성 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에 타협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여, 그대는 기성 세대를 단칼에 끝내야 한다. 그들과 타협할 생각일랑 추호도 가져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질서와 권력을 창출하게 되면서, '일영'은 '엄마'를 닮아간다. 아무렇게나 입던 옷이 깨끗한 제복으로 바뀌는 과정은,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던 위치에서 권력을 획득한 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죽을 때까지 죽지 말라'는 '엄마'의 말은, 스스로 죽지 않아도, 때가 되면 새로운 세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권력의)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즉,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은유를 통해 영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추. 별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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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져 이름이 ‘일영’(김고은)인 아이. 아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김혜수)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엄마는 일영을 비롯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식구를 만들어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가 일영에게는 유일하게 돌아갈 집이었다. 그리고 일영은 엄마에게 없어서는 안될 아이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영은 엄마의 돈을 빌려간 악성채무자의 아들 석현을 만난다. 그는 일영에게 엄마와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세상을 보여준다. 일영은 처음으로 차이나타운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런 일영의 변화를 감지한 엄마는 그녀에게 위험천만한 마지막 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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