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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by 똥이아빠 2017. 3. 17.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나는 늙고 힘없는 사람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황량한 벌판에 있는 낡은 집에서 돼지를 치고,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늙은 내가 죽으면 고아가 되어 이 험악한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게 되겠지.
그나마 돼지도 병이 들어 내다 팔 수도 없어 막막하고, 당장 생활에 필요한 돈도 넉넉치 않아 초조하다. 사람들은 나를 ‘왕년에 잘 나가던 총잡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미 오래 된 이야기가 되었고, 실제로 나는 그리 대단한 총잡이도 아니었다. 내가 총잡이라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감추고 싶었다. 아이들이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의 그날, 그 애송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았을텐데, 그 허풍장이 애송이가 찾아와 현상금 사냥꾼 자리를 제안하면서, 늙은 내 삶에 다시 풍파가 일기 시작했다.
현상금 1천 달러 가운데 절반인 5백 달러를 주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미 오래 전, 다시는 총을 잡지 않겠노라고 맹세했지만, 아이들이 굶주릴 것을 생각하니 내 자신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몫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 결정을 하기 전까지 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결국 나는 현상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애송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범인들을 잡으러 나섰다. 1천 달러의 현상금을 내 건 사람은 읍내에 있는 술집 작부들이었는데, 한 작부가 근처에 사는 목동에게 칼부림을 당해 얼굴과 몸에 칼자국이 수도 없이 나고 말았다. 같은 남자로서, 돈을 떠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라는 것도 현상금 사냥을 떠난 한 가지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린 아들과 딸에게 내가 없는 동안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이웃에 사는 오래 된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도 돈이 필요할 것이고, 내가 받는 돈의 절반을 주면 서로 좋을 듯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읍내에 들어갔을 때, 우리 일행은 그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에게 총을 빼앗기고, 다행히 친구와 애송이는 도망했지만 나는 보안관에게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얻어 맞았다. 마을에 총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나를 치료하고 돌봐 준 것은 주막에 있던 작부들이었다. 그녀들은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치료를 해주었고, 먹을 것과 보안관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내가 며칠 마을 외곽에 있는 빈집에서 몸을 추스리고 작부들을 칼로 난자한 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 짓을 한 놈은 하나였지만, 그 친구도 같은 죄로 현상금이 붙었다.
우리는 목동들이 간 길을 쫓아가 결국 두 놈을 모두 죽이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겠다던 내 친구는 마을 주민들에게 잡혀 그만 죽고 말았다. 그 친구는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마을에서 보안관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놈이 진짜 악당이었다. 마을에 총을 가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가 만든 법 때문에 단지 총을 가졌다는 이유로 나와 내 친구처럼 폭행을 당하거나  결국 죽음을 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 보안관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작부들에게 돈을 받아 애송이에게 돈을 주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내 몫의 돈을, 죽은 내 친구의 아내에게 그 친구의 몫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읍내로 들어갔다. 되먹지 못한 보안관과 그 부하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늙어서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보안관과 그 부하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고,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내 친구의 복수를 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남은 삶이 더 비참할 것 같았다.
나는 주막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거기에는 거만하게 담배를 피우며 술잔을 앞에 둔 보안관과 그 졸개들이 테이블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를 깔봤고, 나는 겁이 나서 몸이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총알이 불을 뿜었고, 나는 침착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사격했다. 내 몸에서 흐르는 피는 오래 전 죄없는 사람들까지 무참히 죽이던 악당, 바로 젊은 날의 내가 다시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듯 했다.
허둥대는 놈들을 보면서 나는 한 놈씩 정확하게 맞췄고, 그들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무서웠고, 공포에 질렸다. 내 몸에 총알이 박히는 생각을 했고, 그것으로 세상과는 끝이라는 느낌이 내 몸을 굳게 만들었다. 다행히 나는 총에 맞지 않았고, 보안관과 그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주막 밖에서 나를 노리는 자들에게 엄포를 놓고 벌벌 떨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며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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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이미 오래 된, 그래서 '클래식'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걸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오른 까닭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한 데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 이전에 서부극 영화의 영웅이었으며, 정의의 심판자였다.
예전의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가차없는 총질로 수 많은 악당을 죽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으며, 총(폭력)이 곧 정의라는 명제를 확고하게 믿는 마초였다. 그런 그가 다 늙어서 자신이 쌓았던 신화를 스스로 허문 것이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해도 좋다. 이제 서부극의 총잡이 신화는 사라졌고, 총이 지배하던 폭력의 시대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는 비록 모든 적들을 죽이고 살아남았지만,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뒷걸음질로 도망쳤으며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한 시대의 장르를 이렇게 완벽하게 종결한 경우는 없었으며, 그것도 영웅이자 전설이었던 주인공이 스스로 신화를 허문 경우는 최초였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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