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장화, 홍련 다시 봤다. 공포의 뿌리에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다. 이 작품에서 슬픔의 근원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엄마와 동생의 죽음-이고,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버지다. 여기서 아버지는 가족 관계를 파탄낸 주범이자, 남성 가부장제의 전형으로, 자기 욕망을 위해 아내와 자식(딸들이다. 아들이었다면 과연 버렸을까)을 버렸다. 이 작품의 비극은 수미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아내와 막내딸을 죽게 하고, 큰딸을 미치게 만든 아버지는 멀쩡한 데 있다. 가해자는 멀쩡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도 않고, 오히려 젊은 여자-제자이자 간호사-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피해자인 수미는 죽음보다 더 큰 공포와 괴로움과 슬픔에 갇혀 질식하고 있다. 이건 잔혹한 부조리극이고, 비틀린 관계와 공간에서 앞으..
2023. 5. 17.
비바리움
비바리움 저예산으로 만든 미스터리, 공포, SF 영화. 매우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여서 등장인물도, 촬영도 최소한의 인물과 공간에서 제작했다. 영화의 주제와도 맞는 설정인데, '비바리움(vivarium)은 라틴어로 '연구나 관찰 목적으로 동물, 식물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어 두고 사육하는 것'을 뜻한다. 제목이 곧 영화의 주제인데, 이 주제를 알고 봐도, 영화가 의미하는 알레고리는 꽤 의심심장하다. 줄거리 역시 매우 단순해서 한 젊은 커플이 집을 구하려다 주택단지를 분양하는 사무실의 직원과 함께 주택단지에 있는 집을 둘러보는데, 분양 사무실 직원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출구를 찾지 못해 갇히고, 그곳에서 살다 결국 죽게 되는 결말이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관객이 읽을 수 있는..
2023. 1. 12.
<영화> The Conjuring
The Conjuring 아이들, 그것도 딸만 다섯이에요. 아이들 방만 세 개가 필요하고, 부부 침실에 거실, 주방, 가족실과 창고가 딸린 집을 도시에서 구하기에는 돈이 너무 부족했어요. 사랑하는 예쁜 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도록 하려고, 집값이 싼 곳으로 이사했어요. 읍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스쿨버스도 다니고, 집 바로 앞에는 호수도 있고, 무엇보다 집이 넓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방이 다섯 개에 가족실, 남편의 서재, 커다란 주방, 화장실이 세 개가 있어서 이제 집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요. 하지만, 이 집을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고, 남편 수입으로는 너무 빠듯해서 늘 돈 때문에 걱정이에요. 아이들은 커가고, 큰 아이는 곧 대학에 진학해서, 입학금이며, 등록금이 몫돈으..
2015.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