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이미 오래 전부터 '좌파'는 상품성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좌파' 따위에 관심이나 가질까.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을 절정으로 좌파는 사라지고, 약간의 학생운동과 약간의 노동운동, 약간의 '진보적' 정당만이 자신을 '좌파'라고 주장하거나, 수구 집단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레토릭으로 '좌파'를 써먹을 뿐이다.
'좌파'는 한국에서 '빨갱이', '공산당', '친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추종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쓰이며, 수구 집단의 공격 무기로 전지전능한 흉기로 작동하고 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할 때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NL, PD 같은 그룹으로 나뉘어 사상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한국에서 '좌파'의 활동이 사라지는 시점과 자본주의가 더욱 강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비슷하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민간 정부로 시작하면서, 군부의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정책도 있었으나 결국 외환위기를 맞으며 침몰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좌파'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거나, 흡수된다. 이후 좌파의 전위여야 할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서 노동계급의 중산층화는 대중의 개혁 의지를 소멸시킨다. 이제 대중은 '개인'의 욕망에 집중할 뿐,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주체인 '노동자' 또는 '민중'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주5일, 최저임금, 의료보험, 각종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건 지배계급이 마음이 좋아서 내려준 시혜가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한다. 오늘같은 세상이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행복은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통해 자기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개인의 '노오오오력'은 지극히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좌파'의 시작과 기본 이념은 지배계급인 왕,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에 맞서 노동자, 농민, 대중의 민주주의 권리와 인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1990년대 쏘련의 붕괴와 동서독 통일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 다수의 결론이다. 여기에 중국도 경제 작동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는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한 경제체제이자 정치경제학적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발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좌파'의 역사라면 딱딱하고 복잡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 정도로 쉽게 설명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16세기 토마스 모어부터 현대까지 공상적 사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태동,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투쟁,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이합집산과 공산당의 발생, 유럽에서 발생한 몇 번의 혁명과 혁명가들의 죽음, 레닌이 일으킨 볼쉐비키의 러시아 혁명, 프랑스 좌파의 여러 그룹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 19세기에 이미 사회주의, 공산주의 활동이 무르익고, 1차 세계전쟁 와중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당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공산주의자 활동과 공산당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론의 무기로 채택되었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대륙의 약소국가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무기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북조선의 김일성 등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가장 먼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쏘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금도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모든 대륙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의 충격파를 통해 전달되었고, 한국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에 이어 1920년 최초의 공산주의자 정당이 탄생한다.
2차 세계전쟁 이후 연합국이었던 쏘련과 미국, 유럽은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한 갈등과 경쟁으로 '냉전'을 시작했으며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은 세계 냉전의 모순이 물리적으로 폭발한 강대국의 대리전 성격이자 한국의 이데올로기 내전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중진국, 후진국을 중심으로 군사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동시다발적 사태는 냉전 이후 체제 경쟁에서 앞서가려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가 경쟁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 반대로, 이 시기에 수 많은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를 중심으로 하는 무장 투쟁도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은 남미 여러 나라에 CIA를 투입해 돈과 무기, 인력을 지원하면서 사회주의 반대 투쟁, 극우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때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역사의 전면에 떠올랐고,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1960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이 발발했고,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지만,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극우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세계의 좌파 역사를 다루지 않고,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좌파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만든 좌파의 시작과 그 발전의 역사를 매우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좌파의 역사를 거대 담론과 함께 사회주의자의 계보, 공산주의자의 계보를 비롯해 유명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와 그들이 만든 수 많은 단체와 정당, 노동조합 등이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고 이합집산하는가를 알 수 있는 쉬운 자료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를 배우려면, 여기서 기본 상식을 이해하고, 보다 구체적인 각 나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좋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는 이미 꽤 많은 책이 출판되어 있으며, 흔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좌파'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가장 기초적인 책으로 이 책 '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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