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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1215

블랙호크 다운 블랙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저녁에 영화가 보고 싶어서 DVD를 뒤적거리다 이 영화를 골랐다. 이미 본 영화지만, 이번에 다시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 명성에 걸맞게 액션 씬이 매우 뛰어나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고, 전투 현장에 있는 듯한 긴박함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마크 보우든이 쓴 같은 제목의 넌픽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 내전에 관해 알아봤다. 소말리아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북부와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던 남부로 갈라져있었다가 1960년에 통일되어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이 탄생했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91년까지 22년간.. 2020. 8. 29.
이브의 모든 것 이브의 모든 것 1950년 작품. 영화 형식으로 보면, 1945년 개봉한 영화 '밀회'와 매우 비슷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같은 장면이며,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나레이션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순환구조를 갖는 영화는 이후에도 가끔 등장한다. 이 영화도 '밀회'처럼 각종 영화상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영화 자체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의회도서관과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등록되었다. 등장인물 역시 쟁쟁해서 주인공 베티 데이비스, 앤 박스터, 마릴린 먼로 등 당대 유명 배우들과 미래의 탑스타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마고 역의 베티 데이비스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이브 역을 한 앤 박스터는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릴린.. 2020. 8. 23.
밀회 - 고전영화 짧은 만남 - 밀회 데이비드 린 감독 작품. 1945년 작품. 원작 희곡인 Still Life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영어 제목은 Brief Encounter로 '짧은 만남'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 개봉할 때는 '밀회'라는 제목이었다. 희곡 제목인 '스틸 라이프'나 영어 제목인 '짧은 만남'은 담백하고 중립적인 느낌인데, '밀회'는 불륜을 연상케 하는 자극적 제목이라는 점에서, 배급사에서 흥행을 노리고 지은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194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당시 유럽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시나리오는 감독 데이비드 린과 원작 희곡 작가인 노엘 코워드가 함께 썼는데, 그래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훌륭하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 점잖.. 2020. 8. 22.
쓰리 몽키스 쓰리 몽키스 '윈터 슬립'을 보고 이 감독이 누구인지,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찾아보았다. 누리 빌제 세일란. 터키 영화감독이다. '윈터 슬립'은 따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마치 영화로 보는 또스또예프스키라고 할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긴장감이 대단했던 영화다. 그것은 오로지 대화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이면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공방이었는데, 이 영화 '쓰리 몽키스'에서도 감독의 철학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부유한 기업가이자 정치가를 꿈꾸는 세르빗은 어느 날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죽인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세르빗은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되므로, 자신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이윱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안는 대신, 감옥에서 나오면 한몫을 주겠다고 회유한다. 가난한 .. 2020. 8. 22.
더 캡틴 더 캡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지만, 비이성, 광기의 시대에서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블랙 코미디. 영화는 매우 역설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입장에서 독일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마치 '세르비안 필름'처럼 세르비아인 감독이 자기 나라에서 저지른 폭력을 포르노에 빗대어 고발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헤롤트가 우연히 발견한 장교복을 입으면서, 제복의 힘에 경도되는 과정과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4월, 헤롤트 일병은 탈영한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 시기에 독일군 탈영병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전쟁 끝무렵이니 완전히 수세에 몰린 독일군이 계속 후퇴하고 있었고, 여기서 죽는 건 그야말로 .. 2020. 8. 18.
더 서치 더 서치 체첸을 침략한 러시아 군인의 만행과 체첸 사람들의 고통, EU 인권위원회 조사원의 이야기를 엮은 영화. 영화의 배경은 2차 체첸전쟁이지만, 이야기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1차 체첸전쟁에 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체첸공화국'은 아직 정식 국가가 아니어서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조지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러시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체첸공화국은 조지아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영토의 작은 부분이다. 인구도 적어서 불과 130만 명 정도이고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들의 종교로 알 수 있듯이, 체첸인은 과거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속했었는데, 1830년 이후 러시아군이 오스만트루크와의 분쟁을 이유로 체첸 지역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18.. 2020. 8. 15.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감독 홍원찬이 낯설어서 영화를 보고 나와 찾아봤다. 이 영화는 세 번째 감독 작품이지만, 이미 '추격자', '작전', '황해'를 각색한 경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검증된 것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목을 끌고 다니는 듯한 격렬한 감정이 이어졌다. 하드보일드 액션 느와르.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단어다. 나중에 봤지만, 포스터에도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이라고 써 있는 걸로 봐서, 감독은 '하드보일드'한 연출에 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것이, 주인공 인남(황정민)과 레이(이정재)는 영화에서 웃지 않는다. 아니, 웃을 수 없다. 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은 결코 웃을 만큼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 2020. 8. 9.
강철비2 : 정상회담 강철비2 : 정상회담 우선, 이 영화는 재미있다. '강철비'(1편)도 매우 재미있게 봤지만, 2편인 이 영화도 1편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영화에서 의외로 잠수함 관련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잠수함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의 U보트가 대표적이고, 크림슨 타이드, 헌터 킬러, U-571, 특전 U보트 등이 있는데, 최근에 본 '그레이하운드'는 독일 잠수함이 등장하지만 구축함 위주의 해전 영화여서 이 영화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의 핵잠수한 백두호는 가상의 잠수함으로, 잠수함에 핵탄두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까지 나온 핵잠수함 가운데 가장 진화한 것으로, 미국과 러시아만 가지고 있는 기술을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에서의 액션.. 2020. 8. 1.
씬 레드 라인 - 테렌스 멜릭 씬 레드 라인 the thin led line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을 연출하고 무려 20년의 시간이 지나서 맬릭 감독은 새로운 영화 '씬 레드 라인'을 공개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후 서너 번을 더 봤다. 처음 보고 쓴 리뷰는 아래 있으니, 이번에 새로 보면서 느낀 부분을 정리해보자. 영화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물은 곧 '생명'이다. 영화의 시작, 중간 부분의 전투, 영화의 끝에서 물이 등장한다.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바다는 만물의 생명이 탄생하는 근원으로 보인다. 평화로운 남태평양의 섬에 주민들이 살아가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물에서 헤엄치며 행복하게 놀고 있다. 이 평화 속에서 군인인 주인공은 주민들이 군인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20. 7. 26.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이미 데뷔작에서 완성되었다. 이후의 작품은 모두 데뷔작의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코엔 스타일’은 처음부터 완벽하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한 사람은 테렌스 멜릭,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쉬, 프랑수아 트뤼포,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장준환 감독 등이 떠오른다. 코엔 형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연한 사건들이 연결된다. 우연과 실수, 난감한 상황 등이 결합하면 드물게 범죄가 발생한다. 그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보인다. 이.. 2020. 7. 26.
천국의 나날들 - 테렌스 맬릭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멜릭 감독은 데뷔작 '황무지'를 연출하고 3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보여준 황량하고 메마른 장면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주이공들 역시 '황무지'에서의 연인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이 영화에서도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번째 봤을 때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쓴 글이 아래에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분석을 떠나, 이 영화는 처연하고 슬픔이 너무 깊어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리차드 기어)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다. 그는 시카고에 살며 영세한 제철소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1916년 무렵이니까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의 배경과 비.. 2020. 7. 21.
황무지 - 테렌스 맬릭 황무지 - 테렌스 맬릭 많은 영화 목록을 들여다보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영화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클라이테리온'에서 배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 단조롭고 물기 없이 메마른 화면의 나열, 미국중북부의 평범한 주, 사우스다코타의 가난한 동네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남한)보다 두 배나 넓은 면적의 땅에 인구는 70여 만 명에 불과한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지역이다. 이른 아침, 쓰레기 청소차가 골목을 지나가면서 두 사람이 집앞마다 쓰레기통을 들어 차에 옮긴다. 청년 키트(마틴 쉰)는 무심한 표정으로 쓰레기통을 옮기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 2020. 7. 20.
사라진 시간 사라진 시간 정진영 배우의 첫 감독 연출작품. 그가 배우를 하기 전에 연출부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배우보다 감독이 되고 싶었고, 30여 년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연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진영의 첫 작품은 기존의 영화 문법을 따르지 않은, 신선한 시도였다. 이 영화를 두고 장자의 '호접몽'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꿈을 꾸는 나와 꿈속의 나, 꿈속에서 꿈을 꾸는 나에 관한 설정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다.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정체성'에 관한 영화로 읽는 것이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최고의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 모두.. 2020. 7. 11.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국체조협회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체조협회 담당 의사인 래리 내서와 체조협회장 스티브 페니가 저지른 성폭행, 성학대, 성추행과 그 사건을 은폐하려는 악의적 시도를 이 영화는 선수들의 인터뷰와 과거 영상을 바탕으로 천천히 풀어나간다. 이미 1997년부터 어린 여자 체조선수들이 래리 내서의 성폭행을 신고했지만, 이 사건들을 은폐한 것은 미국체조협회장 스티브 페니였다. 래리 내서는 20년 넘게 미국체조협회 담당 의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미시간대학병원에서도 일하고 있었다. 내서는 미국체조협회의 담당 의사를 '자원봉사'로 일했다는데, 그 기간이 무려 29년이었다. 더구나 보수도 받지 않고 그렇게 오랜동안 자원봉사를 했다는 것도 의문이다... 2020. 7. 1.
미카엘 하네케 - 피아니스트 미카엘 하네케 - 피아니스트 개인의 뒤틀린 내면과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욕망과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에리카는 경쟁률이 높은 음악대학의 교수로, 그의 실력과 명망은 자타가 인정한다. 겉으로 보이는 에리카는 음대 교수로 번듯하지만, 그의 내면은 황폐하고 메말랐으며, 뒤틀려 있다. 에리카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할퀴고, 헐뜯으며, 비난하면서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이 대목은 매우 상징적인데, 에리카와 그의 엄마는 애증으로 엮인 관계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에리카는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럴 이유도, 경제적 여유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은, 엄마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엄마와 쉽게 분리되지 못하는 정신적 미.. 2020. 6. 30.
켄 로치 -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 미안해요, 리키 영화 시작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이 불편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니, 우리는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불편하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환타지가 아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약자이며,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극악하게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켄 로치 감독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단호하게 발언한다. 리키는 택배회사와 계약을 한다. 자영업자로 트럭도 자기 돈으로 구입해야 하고, 배달 책임도 져야 하지만, 일단 계약을 맺으면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하루 물량을 시간에 .. 2020. 6. 29.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러시아 전쟁영화. 모든 전쟁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을 최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피가 튀고,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서 날아다니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리얼리티를 최대로 끌어올린 전쟁영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지만, 그것 역시 실제 전투 현장과 비교할 수 없다. 특히 헐리우드 전쟁영화는 영웅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전쟁의 참혹함과 잔혹함, 공포를 진지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전쟁영화 가운데 특히 1차, 2차 세계대전 영화는 이후에 나온 영화들과 차별이 있다. 이 세계대전은 근대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쟁으로, 재래식 무기와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갈아 넣은 살육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과.. 2020. 6. 28.
미카엘 하네케 - 히든 미카엘 하네케 - 히든 10년도 더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잊혀지지 않는 장면 두 개가 있었다. 그때는 감독이 누구인지 몰랐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도 영화제목도 몰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한 페친이 쓴 글을 보고 곧바로 찾아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마카엘 하네케 감독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의 작품은 이후에 만든 '퍼니게임'과 '아무르', '하얀리본'을 봤는데, 모든 영화가 다 관객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억에 또렷이 남은 두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면 보이는 길고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응시 화면이다. 프랑스 어느 지역의 도시, 평범한 주택단지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는 이 카메라는 영화가 시작하고, 타이틀이 올라가는 동안 마치 스틸 사진처럼 움직이지.. 2020. 6. 22.
사냥의 시간 사냥의 시간 시나리오가 많이 안타깝다. 명작 '파수꾼'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라면 이보다는 훨씬 나은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는 너무 감상적이고, 감성적이다. 그것이 이 어설픈 세 청년의 수준과 맞는 사실에 가까운 설정이라면, 영화 분위기-아포칼립스-와 괴리가 크다. 따라서 인물과 시대가 동질성을 가지려면 이 영화는 악당에 의한, 악당을 위한 영화가 되어야 한다. 미장센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받쳐주지 못하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미장센은 시나리오의 배경이지 본질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치콕 감독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시나리오, 시나리오, 시나리오'라고 했다. 준석, 장호, 기훈은 조직폭력단이 운영하는 사설도박장을 턴다. 이 장면에서 단 한.. 2020. 4. 25.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주의 : 강력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흥행하지 못한 몹시 안타까운 영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연출도 좋은 이 영화가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감염병 때문이니, 감독과 배우 모두 운이 없었다. 깊은 위로의 말을 드린다.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김용훈 감독이 각본, 연출한 이 작품은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감독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었고, 연출도 좋았다. 다만, 데뷔작을 창작이 아닌, 다른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는 모두 네 부분으로 나뉘고, 각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르거나 중첩한다. 그리고 에피소드는 시간의 흐름대로 배치하지 않고, 뒤섞여 놓음으로써.. 2020. 4. 19.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내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영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밉상이었던 영화배우 커트 러셀이 멋지게 보일 정도였다. 커트 러셀은 쿠엔틴 라탄티노 감독의 영화 '데스 프루프'에서 악당으로 나와 세 명의 여성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아죽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 남성가부장제, 페미니즘 등을 모두 내포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는, 커트 러셀의 집안, 정확히는 아버지 빙 러셀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와 미국 프로야구의 민낯이다. 빙 러셀은 자신의 삶에서 야구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 팬이자 직접 선수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커트 러셀도 한때 아버지가.. 2020. 4. 19.
축구, 계급, 여성 축구, 계급, 여성 잉글리시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영화. 1부 6화. 여성(대부분)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남성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로만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만 가끔 보는 나처럼,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자라도 군대에서 축구를 한 경험이 있으며, 국가대표 선수와 해외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의 성적에 관해 대략은 알고 있다. 축구는 '럭비'에서 갈라져 진화한 새로운 스포츠로, 축구의 원형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을 하나의 '운동'으로 만든 것은 영국이다. 축구공의 재료도 돼지오줌보, 실뭉치, 새끼줄 뭉치, 천(옷)뭉치 등 다양하지.. 2020. 4. 5.
터미널 터미널 이 영화도 내용은 단순하다. 동유럽으로 추정하는 작은 나라에서 미국 뉴욕공항-JFK-에 도착한 빅터 나보르스키는 입국 심사를 받는 시간에 자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비자가 취소되는 황당한 사건을 겪는다. 공항의 입국심사국에서는 이런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없어 범법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적 국가가 승인한 비자가 없는 상태여서 미국 입국을 승인하지 못한다. 결국 국제환승 터미널 라운지에서 머물도록 하는데, 여기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게 발생한다. 빅터는 언제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지만, 나가는 순간 범법자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 '캐스트 어웨이'에서는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터미널'에서는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주인공이 탈출하지 않는다. 그것이 미국이.. 2020. 3. 22.
캐스트 어웨이 캐스트 어웨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흔히 말하듯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정 시간 잃어버린 남자가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덱스(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추락하면서 무인도에 떠밀려 살아난다. 그는 생존을 위해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활동하며 무인도에서 약 4년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뗏목을 묶어 섬을 탈출해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온다. 모두 척 놀랜드가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정작 척 놀랜드가 나타나.. 2020. 3. 21.
가구야 공주 이야기 가구야 공주 이야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지브리 작품을 보다가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발견했다. 언듯 보기에 '이웃의 야마다군'과 비슷한 그림이어서 꽤 오래 전 만든 작품일까, 했지만, 몇 년 전에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문화와 생활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외국사람이 볼 때, 일본에 관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원전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래동화, '타케토리 오키나 모노가타리(竹取翁物語解)'다. '대나무를 파는 노인 이야기'인데, 전래동화와 이 작품의 줄거리는 거의 같다. 다만,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는 '가구야공주'의 탄생과 성장, 생활을 전래동화보.. 2020. 3. 10.
레이디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욕망을 향해 치닫는 광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맥베스는 승리의 자부심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주화입마에 빠진다. 그가 만난 마녀들은 사실, 마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권력의 화신이자, 욕망의 결정체였으며, 자만심의 현현이었다. 맥베스의 아내는 남편에게, 덩컨 왕을 살해하고 그가 왕이 되도록 부추긴다. 피는 남편의 칼에 묻히고, 자신은 왕비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한번 살육을 시작한 맥베스는 광기에 휩싸이고, 권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는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던 동료이자 참모 뱅코의 자손이 왕위를 잇는다는 마녀의 예언을 떠올리며 뱅코와 그의 아들도 암살자를 보내 죽이지만, 뱅코의 아들 플렌스는 탈출한다.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그의 아내 역.. 2020. 3. 7.
라에르치, 나는 혁명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라에르치, 나는 혁명이다 우연히 브라질 관련 연속 다큐멘터리. 브라질의 유명한 만화가 라에르치 코치뉴의 성정체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성전환 여성이 숙명여대에 지원했다가 그 학교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결국 진학을 포기한 사건이 있었다. 숙명여대 학생회와 페미니스트 그룹들은 성전환 여성을 두고 '타고날 때부터 여성의 성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하고 무식한 표현으로 성전환 여성, 성소수자 여성을 혐오했다. 그런 사람에게 묻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라에르치는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라에르치는 태어나서 60년을 남성으로 살았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했으며 세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그러다 60세가.. 2020. 2. 28.
위기의 민주주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질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지구의 정반대 땅에서 벌어진 이 두 사건은 그러나 드라마틱한 희비극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패와 무능 혐의로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에서 한국 최초의 탄핵당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은 촛불을 들고 평화 시위를 통해 역사를 바꿨다. 반면 브라질에서는 노동자당 출신으로, 시민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브라질 첫 여성대통령이 야당과 극우세력, 기업의 합작 음모로 탄핵당하게 된다. 룰라 대통령의 뒤를 이어 노동자당과 연합정당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우마 호세프대통령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1970년대 민주화 투쟁을 벌인 전투적 여성 투.. 2020. 2. 28.
1917 - 전우를 살려야 한다 1917 영화가 시작하면서, 카메라는 서서히 뒤로 빠진다. 넓은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은 계절이 봄임을 알린다. 전쟁의 한 가운데, 짧은 평화의 시간에 낮잠을 자는 병사의 모습이 보이고, 그를 깨우는 무심한 발길. 병사는 명령을 받기 위해 지휘관의 막사로 이동하는데, 카메라는 줄곧 병사의 앞과 옆, 뒤로 움직이며 따라다닌다. 카메라는 두 명의 병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끊기지 않고 전장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촬영의 형식이 어떠한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전투의 참혹함을 보여주지 않아도,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음을 이 영화는 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관객은 마치 주인공이 서 있는 그 전장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2020. 2. 22.
기생충-빈민의 시각 [영화] 기생충-빈민의 시각 1975년으로 기억하고 있는,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꾼 물난리가 있었다. 우리는 마포에 살고 있었는데, 용산에서 서강으로 이어지는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기찻길 아래로 거대한 철둑이 이어지고, 철둑 아래로 개천이 흐르는 굴이 두 개 있었다. 우리집은 하천 바로 옆에 허름하게 지은 무허가 판자집이었고, 이때만해도 서울의 도시빈민들이 사대문 밖에 모여 살았다. 아버지가 시내 나들이를 할 때, '문안 다녀온다'고 말하는 것은, 조선시대식 표현이었다. '진짜' 서울은 사대문 안쪽을 말하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우리는 도시빈민이었지만, 방이 무려 세 개나 되는 집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같은 마을의 빈민들 가운데서도 그나마 괜찮은 편에 속했다. 우리.. 2020.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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