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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851

2004년-거푸집 해체(2층) 2004년 11월 말. 2층 거푸집을 해체했다. 이제 건물의 골격은 완성된 것이다. 노출콘크리트 면. 1층은 다 말랐고, 2층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 정화조를 묻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박스. 몇 년 지나지 않아, 정화조는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시골 마을이지만, 오수종합처리장이 마을 단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2012. 1. 26.
2004년-종남산 송광사 위봉사에서 평지로 내려오면 송광사가 있다. 순천의 유명한 송광사와 이름이 같지만, 이 절은 '종남산 송광사'여서 다른 절이다. 절은 평지에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일주문이 곧 절의 대문인 형태. 경내에 들어서면 이런 조각상이 서 있다. 금강문. 송광사에서 가장 특이하고 신기한 건물인 종루. 이런 모양의 종루는 아마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절 안에, 대나무 담을 두르고 있는 음전한 요사채. 건물이 너무 단아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뿜어져나온다. 세심정. 마음을 씻으라고 한다. 나한전. 다시 봐도 신기한 종루. 2012. 1. 25.
2004년-위봉산성 위봉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위봉산성. 위봉사는 위봉산성 안에 있는 절이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쌓은 석축. 아직도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성문을 출입하는 똥이. 불망비들이 한 곳에 서 있다. '불망비'는 '잊지 못한다'는 뜻이니, 이곳을 다스렸던 관찰사들이 모두 훌륭한 관찰사라는 뜻이겠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였다. 학정을 하는 관찰사도 떠나게 되면 '불망비'를 세웠으니, '불망비'에는 힘없는 백성들의 피눈물이 새겨 있는 것이다. 최근에 다시 쌓은 듯한 석축. 불망비 뒤에 선 똥이. 2012. 1. 25.
2004년-고산 위봉사 고산 여행 가운데 한 곳. 위봉사의 일주문 현판에 '추줄산 위봉사'라고 씌어 있다. 이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어 옮겨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위봉사가 운암사와 함께 주줄산에 있다고 되어 있고 에는 주줄산이 “현의 동쪽 34리에 있다”고 써있다. 원래 지금의 운장산을 주줄산이라 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 기록의 고산 용담 금산 등에도 주줄산이란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묏산(山)’에 ‘오래될 추(酋)’를 붙인 ‘가파를 추’ 자를 쓴 ‘추줄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자어로 볼 때 ‘추줄’이란 뜻은 ‘산이 험준한 모양’ 또는 ‘산이 길고 높은 모양’이라는 것으로 분명하지만 ‘주줄’이란 말은 그 뜻이 애매하다. 그래서 어느 유식한 스님이 ‘추줄산 위봉사’라 쓴 것 같다. 그것은 잘못된.. 2012. 1. 25.
2004년-고산 2004년 11월 말. 고산을 찾아갔다. 고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묵으며 일부러 고산을 내려간 것은, 처음 가보는 곳이기도 하려니와 고산 곶감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하고 2000년인지, 2001년인지, 연초 어느날, 안사장이 자신에게 온 선물을 직원들에게 조금씩 맛보라며 나눠준 곶감이 있었는데, 그 곶감이 바로 고산 곶감이었다. 고산 곶감을 먹은 이후, 어떤 곶감도 고산 곶감보다 맛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올해도 물론-내내 설 전에 고산 곶감을 주문해서 먹고 있다. 고산은 전주하고도 가까운 곳이다. 완주군에 들어가긴 하지만, 완주군이 전주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전주하고도 가깝지만 또 상당히 오지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10년이 넘게 한 분에게만 .. 2012. 1. 25.
2004년-설계도 집 짓기 전에 나온 설계도. 설계도 그대로 집이 된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다. 그래서 설계도의 중요성을 더더욱 절감하게 된다. 정면도. 저기에서 바뀐 건, 보일러실의 문의 위치와 크기다. 보일러실은 보일러가 들어가야 하므로, 저 문보다 두 배 이상 커야 했다. 그리고 문의 위치는 왼쪽으로 바뀌었다. 집의 뒷면. 완공한 건물과 달라진 것이 없다. 1층 평면도. 보일러실 문과 위치가 바뀐 것이 보인다. 안방 드레스룸과 안방을 가로 막았던 주름문이 강화불투명 유리문으로 바뀐 것, 규혁이 방문의 위치가 바뀐 것이 보인다. 2층 평면도. 주방과 복도를 가로 막은 벽을 우리가 없애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저기에 벽을 만들었다면 답답했을 것이다. 단면도. 단면도. 현관쪽으로 본.. 2012. 1. 24.
2004년-정배리 2004년 11월 중순. 정배리의 가을 풍경. 추수가 끝난 논은 조금 쓸쓸하다. 사진 가운데, 우리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서후리로 넘어가는 도로. 느티나무. 마을 주민들이 여름에 나무 그늘에 앉아 잡담을 하는 자리. 나중에는 이 자리가 많이 바뀌게 된다. 느티나무 낙엽. 느티나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가을에 빨갛게 변하는 느티나무 잎의 단풍 역시 아름답다. 어느 집에서 김장을 마치고, 무청을 내걸었다. 겨우내 잘 말리면 맛있는 시레기국을 먹을 수 있겠다. 마을 가운데 자리한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마을을 지키는 나무이자,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2012. 1. 24.
2004년-거푸집 해체 2004년 11월 중순. 1층 거푸집을 떼어냈다. 1층 안방이 될 공간. 안방에서 바라 본 1층 복도와 계단이 놓일 공간. 지금 규혁이 방으로 쓰는 작은 방. 거푸집을 떼어내니 집의 형태를 갖춰가는 듯 하다. 2012. 1. 24.
2004년-시위 2004년 11월 중순. 민주노총에서 대규모 시위를 했다. 단위 노조에서도 빠짐없이 참가했는데, 규혁이 엄마 회사의 노조도 민주노총 산하에 있어서 이날 가족이 함께 시위에 참가했다. 이렇게 질서 있게 앉아서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무수한 깃발과 구호, 민중가요들. 밤이 되었고, 큰 충돌없이 시위는 마무리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야경.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상당부분 순치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존재론적 운명이다. 한국노총처럼 어용인 경우는, 명백하게 노동자의 적이지만, 민주노총도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체제 내에서 타협하고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의 존재 이유가 이상하게 보인다. 2012. 1. 24.
2004년-해경이네 2004년 11월 중순. 해경이네가 집들이를 했다. 아파트를 장만해 가족의 걱정을 덜어 준 것이 퍽 대견하다. 가족들이 다같이 방문해 집들이를 축하했다.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012. 1. 23.
2004년-2층 거푸집 2004년 11월 중순. 1층 노출콘크리트 작업이 끝나서 외벽의 거푸집을 떼어내고, 2층 거푸집을 세우는 과정. 겉으로 드러나는 곳은 노출콘크리트이고, 흙으로 묻히거나, 바깥에 나무 판넬을 대는 곳은 일반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노출콘크리트는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데, 콘크리트 믹서의 농도와 강도를 확실하게 알아보고 주문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런 부분들은 전문가들이나 알기 때문에, 건축주는 노출콘크리트다 다 똑같은 줄 알지만, 집짓기 전에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우리가 그런 케이스였다. 물론, 노출콘크리트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시공 경험이 없는 업자에게 맡긴 경우에는 낭패를 볼 수 있다. 2012. 1. 23.
2004년-1층 거푸집 2004년 11월 초. 기초 위에 1층 거푸집을 세우다. 거푸집이 올라가면서, 진짜 집을 짓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노출콘크리트용 거푸집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판넬을 써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일반 콘크리트 타설하는 것보다 2배 반 이상 비싸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출콘크리트를 선택했는데, 건축디자인에서 노출콘크리트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2012. 1. 23.
2004년-진원이 돐잔치 2004년 11월 초. 진원이 돐잔치. 가족들의 축하 속에 즐겁고 행복한 돌잔치가 열렸다. 규혁이도 동생의 돐을 축하하는 글을 남기고... 식후경도 금강산이라고, 형이 일단 먹고 보는 거다. '어, 내가 불어야 하는데, 왜 아빠가 촛불을 끄냐'고 쳐다보는 진원이. 두 분 할머니와 삼촌까지 한 컷. 2012. 1. 23.
2004년-회사MT 2004년 11월 초. 회사 팀에서 MT를 갔다. 서해안 어느 곳의 펜션이었는데, 가보니, 멀리 바다만 있고 주변은 쓸쓸했다. 이때는 양평에 살 때여서, 집에서 차를 가지고 갔다. 일박이일을 동료들과 함께 보내고,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돌아왔다. 서해안의 얕은 바닷가. 펜션에서 준비한 아침식사. 좀 부실했다. 2012. 1. 23.
2004년-강릉여행-오대산 월정사 2004년 10월 말. 오대산 월정사에 들르다. http://www.woljeongsa.org/ 월정사 홈페이지 대웅전 앞에 있는 9층 석탑. 단풍나무 앞에선 똥이. 2012. 1. 22.
2004년-강릉여행-선교장 강릉에 가면 선교장을 빼놓을 수 없다. http://www.knsgj.net/ 선교장은 매우 유명하므로 홈페이지를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다만, 선교장 주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장되었지만, 오히려 예전의 그 소박한 아름다움은 사라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2. 1. 22.
2004년-강릉 오죽헌 2004년 10월 말. 강릉에서 유명한 곳들을 둘러보았다. 예전에도 몇 번 갔었던 오죽헌을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예전의 그 소박한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거대한 인공물들이 주변 경관을 다 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공무원들이 더 잘 해보려고 한 결과겠지만, 공무원들의 수준이 그들의 문화수준임을 모르는 듯 하다. 그저 돈만 들여서 화려하게 치장하면 되는 줄 아는 이런 천박함이 바로 공무원의 수준이며, 지역문화의 수준이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돈도 적게 들이면서 문화적 가치와 자연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의 토호, 개발업자들과의 결탁과도 관련이 있다. 지역에서 공사를 하는 업체들은 관청과 긴밀한 관계를 .. 2012. 1. 20.
2004년-기초 2004년 10월 말. 기초 콘크리트를 쳤다. 저 기초 안에는 화장실과 주방의 배수 파이프와 전기 배선용 파이프가 들어갔다. 기초콘크리트 바닥을 보면, 면적이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다. 벽을 쌓지 않아서인데, 벽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가장 단순한 평태의 평면. 2012. 1. 20.
2004년-강릉 테라로사 2004년 10월 말. 강릉 테라로사에서 멋진 공연이 있어 찾아갔다. 테라로사의 사장님도 꼼방 회원이어서, 이날도 역시 꼼방 가족들이 많이 모였다. 멋진 재즈연주. 각지에서 모인 꼼방 가족들의 기념사진. 지금은 강릉이 커피축제도 하고, 테라로사도 커피공장으로 더욱 명성을 드높이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숨겨진 보석같은 곳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와인도 마시고-커피는 기본이고-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2012. 1. 19.
2004년-여의도공원 2004년 10월 말. 여의도공원 앞에 회사가 있어서, 점심 때면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도시에서 이렇게 공원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했다. 가을볕이 기울어가는 점심 무렵. 긴 그림자를 보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인적도 드물고... 잔디도 시들고... 텅 빈 듯한 공간... 내가 일하던 회사가 저 빌딩 안에 있었다. 도심 속의 자연. 가을, 단풍이 곱다. 도시에도 단풍은 물들고... 마치 시골의 한옥이 있는 풍경같은... 2012. 1. 19.
2004년-버림기초 2004년 10월 말. 땅을 파내고, 바닥에 잡석을 깐 다음,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기초 콘크리트를 하기 전에 버림콘크리트라고 해서, 기초의 기초가 되는 셈이다. 반대편 방향에서 본 버림기초. 바닥면이 그리 넓어보이지 않지만, 30평이 넘는다. 이때만 해도, 마을에 신축건물이 거의 없었다. 우리집이 이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새로 짓는 집이 되었다. 2012. 1. 19.
2004년-꼼방동호회 2004년 10월 말. 같은 마을에 사는 선배댁에서 꼼방동호회 모임을 가졌다. 김선배와는 우연한 인연이 있다. 꼼방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고, 꼼방게시판에 김선배가 집짓기 과정을 연재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도 집짓기 전이라, 집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찾고 있었는데, 그때 발견한 것이다. 그후, 우리가 정배리에 땅을 구입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면서, 김선배의 집이 정배리에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염치불구하고 초면인 분들을 찾아뵈었고, 이후 선후배가 되었다. 한 곳에 모이신 사모님들. 우리는 남녀가 유별해서(^^) 이렇게 내외를 한다,는 과장이고, 도대체 만나서 진공관이니, 다이오드니, 저항값이니 하는 이상한 단어만 떠들어대는 남자들을 사모님들께서는 전혀 이해할 .. 2012. 1. 19.
2004년-고사 2004년 10월 말. 드디어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공사를 앞두고 집지을 땅 위에서 고사를 지냈다. 자연과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공사를 하는 과정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사를 지내는데, 이런 과정은 생략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고사 지내는 과정을 통해 마을 주민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고사를 지내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떡과 술을 나누며, 인사도 하고, 집짓기 공사를 할 때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일이 있을테니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이때 할 수 있어서 이후 공사를 하는 동안 많이 시달리지 않았다. 어차피 시골 마을에서 공사를 하게 되면, 크고 작은 민원들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모두 착한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의도적으로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도 있다보니,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마음으로 일을.. 2012. 1. 19.
2004년-외식과 공연 2004년 10월 중순. 대학로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 식전 빵과 샐러드. 식사는 스파게티. 공연보고 배우들과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규혁이 표정을 보니, 재미있게 본 듯. 2012. 1. 18.
2004년-2차 모형 집짓기를 위한 준비과정에서 두 번째 설계가 나왔고, 그 설계를 바탕으로 설계사무실에서 모형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똑같다. 왼쪽 계단 끝부분만 다르게 처리되었는데, 지금은 축대를 쌓았고, 최초의 땅 모양에서 높아진 상황.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우리는 이런 단순함이 좋아서 선택했다. 2012. 1. 18.
2004년-꼼방동호회 2004년 10월 초. 수지에 있는 꼼방동호회 회원의 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진공관앰프 자작동호회인 꼼방은 여성이 한 명도 없는, 순수한 남성들의 취미모임인데,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구성원이 다양하다보니, 이러저러한 모임이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나오는 곳이다. 중장년층이 중심이고, 경제적으로도 조금은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 자칫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이 되고 말 수도 있다. 모두 좋은 분들이고, 배울 점이 많아서 동호회원이 되었지만, 자주 만나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끔 모이면 즐겁고 반갑다. 2012. 1. 18.
2004년-충남-안면도,고건축박물관,추사고택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바다가 시원하다. 규혁이는 조개를 캤다. 바위 틈에도 조개들이 사나? 수덕사 근처에 있는 고건축박물관. 대목장 박흥수 씨의 호가 '거암'이어서 거암박물관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이곳에 있는 많은 도구들이 마음을 끌었다. 조선 건축방식을 작은 건물로 재현한 모습. 추사, 또는 완당 김정희 선생의 묘. 완당 선생 생가에 있는 우물. 완당 고택의 입구. 점잖은 기운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건물과 집터다. 양반집 특유의 솟을대문. 집안에서 입구를 바라본 모습. 완당 선생이 기거하셨을 사랑채. 완당 선생의 부인이 거주하셨던 안채. 안채 건물의 디자인과 위치가 독특하다. 안채의 작지만 깔끔한 안마당. 아름다운 한옥의 처마선.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2012. 1. 18.
2004년-남당리 2004년 10월 초. 남당리로 대하를 먹으러 갔다. 대하 먹는 것도 연중 행사. 규혁 엄마가 대하며 꽃게 등 해산물과 갑각류를 매우 좋아해서, 해마다 찾아간다. 바닥에 소금을 깔고, 그 위에 살아 있는 대하-아, 정학하게 '흰다리새우'가 정식 명칭이다-를 쏟아붓고 뚜껑을 닫는다. 흰다리새우는 뜨거운 솥 안에서 펄떡거리다 빨갛게 익는다. 새우가 빨갛게 익으면 껍질을 까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달콤한 맛이 난다. 하지만, 나는 새우 알러지가 있어서, 먹을 때마다 두드러기 약(항히스타민제)을 먹어야 한다. 2012. 1. 18.
2004년-에버랜드 음식 2004년 10월 초. 에버랜드에서 음식을 사 먹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인데, 그건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대체 놀이동산에서는 왜 모든 먹을 것, 상품 등의 가격이 특별히 비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 가격을 더 싸게 판매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몹시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놀러나와서 인상만 쓸 수는 없어서, 가끔 음식을 사 먹기도 한다. 도시의 식당에서 파는 것에 비하면 50% 정도 비싼 값이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음식을 사 먹는다. 놀러 나왔기 때문에. 2012. 1. 18.
2004년-에버랜드 2004년 10월 초. 에버랜드. 에버랜드 가면 꼭 타게 되는 '아마존 익스프레스'. 뒤에서 코끼리가 쫓아오고 있다. 카메라는 다급하게 흔들리고...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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