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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경계선 이란계 스웨덴 감독인 알리 아바시의 작품. 원작은 스웨덴 소설가 욘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렛미인'이 유명하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좀 불쾌할 수 있다. 그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등장인물의 외모, 이들이 먹는 음식, 이들이 나누는 섹스 등이 '평범한 인간'과는 사뭇 다르다. '경계선'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가르는 선이다. 이때 경계선 안과 밖에 존재하는가에 따라 정체성, 삶의 본질 등이 달라진다. 칸트가 말하는 '경계선에 선 인간'과는 다른, 실존적 의미에서의 '경계'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출입국 세관에서 일하는 '티나'는 외모가 조금 특이하다. 물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주위의 어떤 사람도 티나의 외모를 두고 '평가'하지 .. 2022. 1. 21.
일리야 나이슐러의 두 작품 일리야 나이슐러의 두 작품 -'하드코어 헨리', '노바디' 우연히 유튜브에서 '노바디(Nobody)' 클립을 하나 봤다. 버스를 타고 가던 주인공 하치(밥 오덴커크)는 버스에 올라탄 불량배들과 격투를 벌이는데, 1대 5의 싸움은 좁은 공간에서 온몸으로, 격렬하게, 실제 싸우는 것처럼 감정을 담아 타격하는 장면을 보고, 곧바로 유튜브에서 영화를 구매했다. 주인공 하치는 미국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에 등장하는 '사울 굿맨'으로 처음 알게 된 배우다. '브레이킹 배드'에서는 조연으로, 그리 큰 비중은 없었지만 타락한 변호사로 흥미로운 인물이었고, '브레이킹 배드'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자연스럽게 프리퀄 스핀오프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그 주인공으로 '브레이킹 배드'에서 변호사 역이었던 .. 2022. 1. 21.
카프카 - 스티븐 소더버그 카프카 - 스티븐 소더버그 1919년. 프라하. 흑백영화. 안개 낀 거리. 거대한 성. 한 남성이 두려움에 떨며 골목을 질주한다. 남성 앞에 나타나는 신사. 한센병자가 두려움에 떠는 남성을 살해하고 신사에게 보상으로 약물을 받는다. 사무실. 주인공의 독백.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 지극히 정상으로 살고 있으며, 퇴근하고 시간이 조금 있을 때 글을 쓴다고 말한다. 보험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는 카프카. 매니저 버글과 갈등이 있는 카프카. 버글, 직원 로스먼에게 추근댄다. 카프카, 로스먼에게 말을 건다. 에두아르 라방을 아느냐고. 버글과 회사 임원은 카프카를 주시하고 있다. 퇴근하고 라방의 집을 찾아가는 카프카. 집주인에게 부탁해 집안을 둘러본다. 주막에서도 라방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약혼녀 안나를 만나.. 2022. 1. 9.
컨테이젼 - 스티븐 소더버그 컨테이젼 - 스티븐 소더버그 '사이드 이펙트'의 시나리오를 쓴 스캇 Z 번스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했다. 2011년 작품이니 거의 10년 전에 이미 '코로나19'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 작품이다. 전염병의 근원지를 홍콩으로 설정한 것과 박쥐와 돼지의 변이 바이러스로 시작한 것도 실제 상황과 비슷하다. '코로나19'는 중국 내륙에서 시작했고, 박쥐의 바이러스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퍼지기 훨씬 전, 2012년에 중국에서 한 폐광 안에 있던 박쥐 배설물을 치우러 들어갔던 인부들이 중증 폐렴에 걸린 일이 있었는데,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와 96% 일치하는 걸로 알려졌다. 이 영화를 보면 현재의 팬데믹 상황과 .. 2022. 1. 9.
트래픽 - 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 스티븐 소더버그 미국의 마약 문제를 입체감 있게 다룬 작품. 영화는 좌충우돌,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무작위로 뒤섞이며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보인다. 게다가 서로 다른 지역의 풍경은 사뭇 다른 필터를 써서, 분위기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영화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효과다. 마치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카메라는 흔들리며 인물의 뒤를 쫓는다. 짧은 장면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고, 인물들의 관계가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은 자칫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복잡한 이야기를, 같은 그룹으로만 묶어서 풀어보면 이렇다. 처음 시작할 때, 사막의 모래바람이 부는 것처럼, 갈색의 풍경으로 나오는 지역은 멕시코다. 멕시코의 주 .. 2022. 1. 8.
사이드 이펙트 사이드 이펙트 스티븐 소더버그 작품. 네번 째 보다. 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 기분을 좀 바꾸고 싶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을 때, 시원하고 통쾌한 결말을 즐기고 싶을 때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화려하고 통쾌한 액션도 아니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 영화도 아닌, 평범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일 뿐인데, 그래서 오히려 감정이 쉽게 전이되고, 마치 내게 벌어진 일처럼 실감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결말처럼 허무하지도 않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잔혹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피엔드]의 서민기처럼, 정신과 의사 뱅크스는 자신에게 닥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작은 창문이 많은 단조로운 빌딩으로 다가간다. 음악은 어둡고 우울하다. 카메라.. 2022. 1. 6.
돈 룩 업(Don,t look up) 돈 룩 업(Don,t look up) 인류가 맞닥뜨린 어쩔 수 없는 절멸 상황을 다룬 영화는 여러 편이다. 특히 우주에서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면서, 충돌하기까지 지구에 사는 인류의 대응을 담은 내용은 액션, 공포, 코미디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가설은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개연성 높은 이론이며, 낮은 확률이긴 해도 혜성이 실제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가 상당 부분 파괴되거나 거의 대부분의 생물종이 멸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류의 멸종을 두고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인류가 초래한 심각한 환경문제와 핵전쟁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혜성 충돌이다. 어느 쪽이 더 빠르게 다가올 지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변수가 없.. 2021. 12. 26.
이키루 - 구로사와 아키라 이키루 - 구로사와 아키라 일본의 '위대한'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현대물. 1952년 발표한 작품이니 70년 전 영화다. 이 시기에 한국은 남북한이 세계 냉전의 극단적 대결의 전장터가 되어 온나라가 쑥대밭으로 변하고, 민중의 주검이 들판과 산등성이에 쌓여가던 때였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고, 미군정의 통치를 받은지 7년이 지났을 때고, 1952년, 이 영화가 발표되던 해에 미군정이 종료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당시 기성세대가 바라본 일본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결과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주인공 와타나베 겐지는 시청의 시민과 과장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가 과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최소 30년 이상 공무원으로 근무한 것을 알 수 있고, 그가 태어난 것이 1900년 전후일테니,.. 2021. 11. 27.
로스트 인 더스트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Hell or High Water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세번 째 다시 봤다. 멋진 영화. 오랜만에 훌륭한 영화를 봤다. 그것도 개봉하는 날. 별 네 개 반.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데이비드 메켄지는 그리 유명한 감독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쉐리단은 바로 전작이 '시카리오'였다. 현재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사람의 작품이다. 훌륭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뛰어난 배우들의 조합은 의외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어서, 이렇게 멋진 영화가 나오기 드문 것이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이미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무비썸'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언.. 2021. 10. 28.
위대한 레보스키 위대한 레보스키 - 코엔형제 주말 저녁, 아무 일도 없는 휴일이 기다리고, 느긋하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마음이 잘 맞는 친구 두세 명과 맥주를 마시며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다. 코엔 형제가 던지는 농담을 낄낄거리며 듣다보면 영화는 어느새 끝나 있다. 코엔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주 작은 역을 맡은 인물이라도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라는 점이 독특하다. 보통은 '이야기' 즉 '서사'를 미리 구축하고 서사에 맞는 캐릭터를 생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엔 영화의 특징은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단역으로 나오는 존 터투로를 예로 보자. 이 작품에는 코엔 형제들과 함께.. 2021. 10. 25.
파이트 클럽 파이트 클럽 잭(나레이터)의 분열적 상황은 '개인적 기질'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가 살아가는 사회 - 현대 자본주의 체제 - 가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은 개인의 존재를 왜곡한다. 평범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임금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꿈과 재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우리는 잭이 바라는 그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현재 잭은 보험회사의 사고심사관으로 일하고 있고, 그는 이 일로 월급을 받으며 먹고 산다. 그의 삶은 매우 불규칙해서, 낮과 밤이 바뀌고, 공간이 몇 시간마다 달라진다. 공간 이동으로 시간은 뒤죽박죽 되고, 그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은 매우 카프카적이다. 카프카는 결국.. 2021. 10. 13.
도그빌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이 작품 역시 감독 특유의 특징이자 장점인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물리적 공간의 미장센과 서사의 구조가 알레고리로 통합,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처음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낯선 풍경에 우선 당황한다. 형해화(形骸化)된 마을은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고, 역사 속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무대는 주로 연극에서 좁은 무대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은 영화를 연극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영화의 내적 서사를 위한 필연적 장치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형해화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개인'이 아니라 실존했었던 무수한 '인간'의 대표이자 평균인 아.. 2021. 10. 2.
코미디의 왕 코미디의 왕 마틴 스코시지 감독 작품. 오래 전 이 영화를 보고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영화를 읽는 총체적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만 마틴 스코시지 감독 작품인 '택시 드라이버'와 '성난 황소'를 봤고, 이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코미디의 왕'도 내가 잘 모르지만 뭔가 훌륭한 작품일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코미디의 왕'은 역시 뛰어난 감독의 훌륭한 작품이었다.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연출은 정통 드라마 방식이라서 오히려 이 영화의 비극성과 블랙코미디를 돋보이게 만든다. 루퍼드 펍킨은 백수다. 그는 이제 서른 한 살이 되었고, 변변한 직업이 없으며, 돈을 벌지도 못하고 있지만, 반듯한 슈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방송국 .. 2021. 9. 30.
코코랩 한끼 리뷰 올해 초, 건강 검진을 하다 간 초음파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동네 내과에서 '간경변' 진단을 받았다. 동네 내과에서는 상급 의료기관을 추천해 주었고, 상급 의료기관에서 다시 정밀하게 검사를 한 다음, 최종 '간경변' 진단을 받았다. 잠깐 동안 많이 놀랐고, 당황했는데, 의사선생님의 진단에 따라 4월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고, 6월부터 체중 감량을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약 7kg 감량을 했고, 지금도 꾸준히 운동과 체중 감량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체중 감량은 이론적으로 매우 단순하다. 입으로 들어가는 열량(음식)보다 빠져나가는 열량이 많으면 된다.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은 저절로 빠지는 것이다. 다만, 이걸 꾸준히 지키면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2021. 9. 28.
파고 Fargo 파고 Fargo 코엔 형제 작품.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보게 되지 않는다.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의 특징이 그렇듯,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장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명작', '명화', '걸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 작품의 알레고리를 한 번만 보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는 훌륭한 작품에 모두 들어 있기 마련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은 '명작', '걸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이상 다시 보게 된다. 데뷔작인 '블러드 .. 2021. 9. 26.
시리어스 맨 시리어스 맨 코엔 형제 작품.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설파했던 것은 지혜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멀리서 바라보는 산과 자연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숲으로 들어가면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우글대는 위험한 곳이라는 말과도 같다. 즉, 미시적으로 접근할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 굴곡은 있을 지라도, 대체로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제3자가 보기에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심한 삶이란 어떤 경우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인트로는 아주 짧은 우화를 보여준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는 .. 2021. 9. 25.
안티 크라이스트 안티 크라이스트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들은 서사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서사에 내재되어 있는 알레고리를 해석하는 것이 그의 작품을 보는 이유인데,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서사보다는 알레고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1) 아기의 죽음, 2) 에덴의 숲, 3) 아내가 연구하던 주제인 중세의 마녀, 4) 남편을 폭행하는 아내, 5) 사슴, 여우, 까마귀의 등장, 6) 클리토리스, 7)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 8) 산딸기 같은 키워드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논란이 되는 장면은 아내가 스스로 자기의 클리토리스를 가위로 자르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부부의 정사 장면이 많은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데, 인트로에서 눈이 내리는 바깥 풍.. 2021. 9. 24.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영화가 시작되고 절반 가까이 지나서야 야첵이 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첵과 택시운전수 레콥스키가 만날 때까지, 그리고 야첵을 변호하는 변호사 포트르가 그의 첫번째 수임 사건이자, 자신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믿게 된 상황까지, 세 명의 개인이 우연의 인과를 거쳐 만나게 된다. 야첵이 택시운전수 레콥스키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은 방황과 우울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가방에 끈과 몽둥이를 준비하고 있다. 즉,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우연히' 해수욕장에서 아랍인과 만나 시비가 붙게 되고,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자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상황과 연결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2021. 9. 22.
마카엘 하네케 - 하얀리본 마카엘 하네케 - 하얀리본 의사가 탄 말이 줄에 걸려 넘어지고, 의사는 쇄골이 부러져 큰 병원으로 후송된다. 쓰러진 말도 일어나지 못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는 나레이터인 학교 선생의 시각을 따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독일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유럽의 정세에 관해 잘 모르고 있지만, 유럽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불안한 상황이다. 이 작은 마을을 운영하는 건 '남작'이고, 그는 마을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을 직간접으로 고용하거나 부리고 있다. 남작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소작농 펜더의 아내가 제재소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펜더 부부에게는 여덟 명의 자식이 있는데, 20대 청년부터 네.. 2021. 9. 22.
데쓰 프루프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B급 정서가 화려하게 폭발한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함께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든다. 그들이 어려서 봤던, 극장에서 동시상영을 할 때 보던 바로 그 영화. 저예산으로 만들었고 화려하지만 어설픈 액션이 폭발하는 B급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플래닛 테러'를 만들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데쓰 프루프'를 만든다. 저예산으로 만들고, 형식은 세련하지 않지만, 과거 B급 영화가 보여주었던 흥이 폭발하는 정서를 담아보자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과거 B급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 조악한 품질과 폭력, 섹스가 난무하면서 마초적이고 남성우월주의, 가부장 질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B급 영화의 정서와 형식을 그대로 가.. 2021. 9. 20.
범죄의 요소 범죄의 요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장편 데뷔 작품. 영화감독의 데뷔작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다. 데뷔작이 곧 마지막 작품이 되는 감독이 많은 것도 영화만의 특이한 경우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데뷔작은 흥행 여부보다는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감독에게는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물론 흥행과 작품성이 동시에 인정받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영화 제작은 많은 돈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산업'이므로, 감독은 자기를 믿고 투자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데뷔작이다. 데뷔작이 성공했다고 해서 이후의 작품이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고, 반대로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했어도 오히려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감독도 있다. 한국에서는 .. 2021. 9. 18.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가이 리치의 데뷰작.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광고업계에서 광고를 만드는 감독으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돈도 많이 벌어서 그의 이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1998년, 이 영화로 데뷔하면서, 가이 리치 스타일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하는 작품이 되었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매우 복잡하게 뒤얽힌 스토리라인,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 화려한 액션과 독특한 슬로우모션, 최소한 두 번 이상의 복선과 반전 등이며 연출이 깔끔하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훌륭하게 만들었다는 건, 이미 내공이 상당하다는 증거이며, 이 작품 이후 그의 여러 영화들 가운데 더러 처지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대중성으로는 흥행이 보장된 감독이기도 하다. 이 영화 제목 'Lock, Stock An.. 2021. 8. 21.
재키 브라운 재키 브라운 Jackie Brown 영화는 한 여성의 옆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인물이 움직이지 않고, 배경이 움직이도록 하면서 인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관객은 그의 옆모습만 보게 되는 이 장면은 관객이 주인공을 강렬하게 인식하는 시간이다. '재키' 역을 맡은 팸 그리어는 '미스 콜로라도'로 선출된 공인된 미인이었으며, 70년대 헐리우드에서 여러 영화에 출연해 흑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한때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그뒤로는 인기가 시들해졌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팸 그리어의 연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자기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만한 시나리오를 썼다. 이 작품 '재키 브라운'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창작이 아닌, 엘모어 레너드의 원작 소설 '럼 펀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 2021. 8. 20.
세이빙 미스터 우 세이빙 미스터 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2004년 영화배우 오약보가 납치범에게 납치된다. 오약보는 이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에서 형사 조강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을 쫓는 형사로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시간을 앞뒤로 복잡하게 배치하면서, 납치범과 인질, 경찰 사이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계속 흔들리며 인물을 따라가고,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화면에 보여준다. 즉, 사건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짧은 시간에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경찰의 긴박하면서도 현명한 대응을 실감하게 되는 영화다. 영화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를 복잡하게 뒤섞어서 관객이 편하게 관람.. 2021. 8. 17.
모가디슈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창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다. 이전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로 '베를린'이 있었으니 이 작품은 남북관계를 다룬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한국형 액션'을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데뷔작부터 '모가디슈'까지 류승완 스타일은 핵심을 유지하면서 보다 세련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류승완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살펴보자. 기시감, 낯익은 장면들 영화는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소말리아 민중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시위할 때, 몽둥이를 든 경찰과 군인들이 소말리아 시민을 마.. 2021. 8. 14.
구타유발자들 구타유발자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블랙코미디로만 생각했고, 리뷰 쓸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품으로는 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oody aria'다. 한글 제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지극히 평범한 공간,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2021. 8. 12.
세 자매 세 자매 훌륭한 작품. 저마다 기구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여기 세 자매의 삶도 만만찮다. 세 자매는 서로 사뭇 다른 삶을 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것도 가벼운 억울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이들 세 자매의 영혼 깊은 곳에 꾹꾹 눌리며 쌓인 트라우마가 이들의 삶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시공간은 이들 세 자매가 눌려 있던 트라우마를 폭발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절제된 대사와 행동이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증폭하고 관객에게 뜻밖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 공포는 비틀린 시간이 만든 것으로, 그 시간을 견뎌온 세 자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기 모습을 마.. 2021. 7. 15.
놀면 뭐하니? - 유본부장 놀면 뭐하니? - 유본부장 '무한도전'이 종영한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본 적이 없다. 집에 TV 없이 생활한 것도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무한도전'을 할 때도 VOD로 봤다. 그나마 유일하게 재미있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던 - 종영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사라졌다. 김태호 PD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문이 들렸고, 유재석과 함께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한도전' 같은 독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기에 관심을 끊었다. 그 뒤로 유튜브에 올라온 '무한도전'의 수많은 클립들을 다시 보면서 '무한도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제는 지나간 과거 10년의 시간 속에서, 아들과 함께 '무.. 2021. 5. 31.
정선군 도시재생, 마을호텔 방문 2021년 5월 25일. 양평은 오전에 비가 내렸다. 먹구름 아래 쏟아지는 비를 뚫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양평에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까지 두 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했다. 5월 말의 날씨로는 선선했고, 양평에서 강원도 경계를 넘어서면서 비가 그치고 햇볕이 환하게 드리웠다. 강원도에서도 내륙 깊은 곳에 있는 정선군은 서울시 면적보다 두 배 넓은 곳이지만 인구는 불과 3만6천여 명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북읍과 고한읍은 정선군의 가장 남쪽 끄트머리에 있어서 태백시와 인접해 있다. 사북, 고한은 과거 탄광이 유명한 지역으로, 한때 탄광업이 발달하던 시기에는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경제가 크게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도 시들해졌고, 인구도 많.. 2021. 5. 25.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태인은 말을 하지 못(안)한다. 창복은 다리를 전다. 두 사람은 달걀 장사를 하면서 부업을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조폭들이 납치해 고문, 살해한 사람을 산에 암매장하는 일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는다. 트럭에 달걀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조폭이 일을 맡기면 그때마다 부업을 하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두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창복은 교회에도 열심으로 다니는데, 태인에게도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열심히 들으라고 말한다. 창복은 다리를 저는 장애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태인처럼 처음부터 고아였을 수도 있다. 가족도 없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창복은 중늙은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태인을 만나게 되는데, 태인을 데려와 ..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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